"제가 4살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아버지와 주변사람들로부터 할아버지께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의 함장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신용석씨는 "할아버지께서는 한일합방이 되면서 광제호 군함기를 자신의 침실에 숨겨둔채 일제 36년간을 고히 간직했었다"며 "아버지께서는 이 태그기를 1945년 해방되던 해 한국 기선취항식에서 일장기와 바꿔달라고 요구했었다"고 밝혔다.

   신씨는 "할아버지께서는 한일합방 뒤에도 광제호를 잊지 못해 1917년 서울에서 지내던 가족들을 이끌고 광제호의 모항인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며 아버지와 자신이 인천사랑에 남다른 배경을 설명했다.

"의사로 명성을 얻었던 아버지께서 나중에는 인천의 역사를 조명하는 향토사 집필에 심혈을 기울였다"며 "이와함께 할아버지의 행적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는 등 많은 일들을 이루셨다"고 밝혔다.

   신태범 박사의 5남중 장남인 신씨는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강요없이 자유스럽게 자식들의 뜻에 맡기는 교육을 시켰다"며 할아버지께서 자식들에게 자율적인 교육을 시켰던 가풍이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에서 태어난 토박이답게 신씨는 아버지에 이어 현재 지인들과 함께 인천의 향토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등 인천사랑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신씨는 현재 한국인권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조선일보 파리특파원과 사회부장, 논설위원,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