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잡지에 실린 미술자료를 모아 관장님께 보여드렸죠. 저를 보더니 '허허'하고 웃으시더라구요."

   석남 이경성이 수양아들이라고 자랑하듯 얘기하는 김달진(50·김달진미술연구소장)씨. 그는 1977년 석남과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석남은 홍익대박물관 관장을 맡고 있었고, 김 소장은 스물 한살의 청년이었다.

   "어려서부터 우표, 깡통 등 닥치는대로 모으는 수집광이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주부생활', '여원'과 같은 잡지에 실린 명화 한 장씩을 뜯어서 모아 미술자료집을 만들었어요."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경복궁에서 열렸던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을 보고 미술자료 수집을 직업으로 삼시로 결힘했다고 했다. "일간지와 월간지 기자, 각급 박물관 관장에게 나를 소개하는 글을 보냈는데 관장님만이 '홍대 박물관으로 한 번 오라'고 연락해주셨죠. 뛸듯이 기뻤어요." 이 인연으로 석남이 초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1981)에 오르자 그는 미술관 자료실 임시직으로 특채됐다.

   지금은 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더 끈끈한 부자지간이 됐다. 김 소장은 요즘도 일요일 마다 부인과 아들, 딸을 데리고 석남이 머물고 있는 서울 평창동의 노인간호센터를 찾는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잘 따르고, 부인도 며느리 노릇을 톡톡히 한다고 했다.

   김소장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 죄송할 따름이죠. 세월이 흐르면서 관장님이 사람을 더 그리워하시는 것 같은데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우성기자·wsl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