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영(30·여)씨는 요즘 '가톨릭 신자가 되는 법'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는 한편 성당 다니는 친구들에게 문의하느라 바쁘다. 개신교 신자였던 그녀는 지난 2월, 고(故)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선종과 추모행렬을 보고 가톨릭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송씨는 "김 추기경의 선종으로, 추기경의 삶을 새삼 돌아보게 됐고,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며 "명동성당에 끝없이 이어진 조문행렬을 보며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끌었나를 숙고해보게 됐고, 그 숙고의 결과는 가톨릭으로의 입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수환 추기경은 이승을 떠나서도 여전히 우리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대교구 독산동 성당 강사집(요셉) 신부는 "요한복음 12장24절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씀이 있듯, 김 추기경님은 정녕 이 성경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계신다"며 "김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후 헌금도 늘고 냉담자(세례를 받았으나 성당에 안나오던 교우)도 많이 돌아왔고, 독산동 성당만 해도 예비신자 모집을 했는데 25명이나 신청해 세례준비를 마쳤다"며 '고무적인 반응'이라고 전했다.

■ 어마어마한 '김수환 추기경 효과'

천주교에 대한 이같은 뜨거운 관심은 김 추기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본당, '명동 대성당'에서 더욱 피부로 감지할 수 있다. 명동성당은 천주교 신자가 되려는 '예비신자'를 위해 6개월 과정으로 교리반을 운영하는데 3월 교리반의 경우 개강 첫 날인 지난달 1일 신청자가 117명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예년에 비해 20% 넘는 수치인 셈. 2007년 3월 한 달간 신청한 예비신자 수가 96명, 작년 같은 달은 91명이었던 점과 비교할 때 개강 첫날에 한 달 신청 인원을 초과한 것이다. 하루 7차례 열리는 일요일 미사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김 추기경이 잠든 용인공원묘지의 성직자 묘역에도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 한달이 더 지난 지금에도 평일에는 500~600명, 주말에는 1천여명이 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국민 10명 중 9명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존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은 지난달 21일 하룻동안 만 19세 이상 전국 남녀 814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김 추기경을 존경한다는 응답이 87.7%에 이르렀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응답은 가톨릭 신자(97.4%)에만 그치지 않고, 개신교(86.4%)와 불교(90.8%) 등 다른 종교를 믿거나 무교(83.9%)인 경우에도 김 추기경에 대한 존경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더불어 김 추기경이 사후 두 눈의 각막을 기증해 시각장애인 두 명에게 새 빛을 선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 장기기증운동을 펴고 있는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따르면 김 추기경 사후 등록한 장기기증 희망자는 이미 9천명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까지 한해평균 3천명 수준이던 등록자수를 불과 한 달 만에 넘어선 것이다.


■ '그 사랑을 따라서…' 각계각층 추모 움직임

김 추기경이 남긴 뜻과 사랑을 잘 이어받기 위한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김 추기경의 유지인 감사와 사랑의 뜻을 담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쓴 지름 9㎝ 크기의 원형 스티커를 배포한 것. 이 스티커는 빨간색을 바탕으로 김 추기경이 그린 자화상 '바보야'를 중앙에 새겼고 차량 뒷유리창이나 사무실 출입문 등에 붙여 쓸 수 있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스티커 뒷면에 감사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5가지 실천사항(만나는 사람에게 "고맙습니다" 나의 삶에 "감사합니다" 내 곁에 있는 이를 "사랑합니다" 내 손이 필요할 때 "도와줍니다" 나의 삶을 "반성합니다")과 어려운 이웃과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연락처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의 정신을 이어갈 자선단체 '옹기장학회'를 더욱 확대·육성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옹기장학회'는 그동안 북방지역 선교를 위한 사제 양성 장학회였으나 확대 개편해 김 추기경 공식장학재단으로 발전시킨다는 방침인 것. 이와 관련해 가톨릭출판사도 스티커를 비롯한 김수환 추기경 관련 기념품 제작·판매에 전담해 그 수익금을 옹기장학회에 환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추모움직임은 문화계에도 이어지고 있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는 김 추기경 추모 스티커를 자신의 미니음반 '마이 히어로(My Hero)'에 붙여 앨범에 수록된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김 추기경을 위한 헌정곡임을 밝혔으며, 지난달 말에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리빙 디자인페어'에서도 김 추기경을 추모하는 안상수 작가의 설치작품 '카디날 가든(Cardinal Garden·추기경의 정원이란 뜻)'이 선보였다.

소설가 최인호 씨는 월간 '샘터'에 연재 중인 연작소설 '가족'을 통해 김 추기경과의 추억을 회고하며 추모의 움직임에 동참했다.

한편 김 추기경의 추모 티셔츠도 선보였다. 김 추기경의 사목 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처럼 김 추기경이 평생 걸어온 길을 기리고 나눔과 사랑의 메시지를 알리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티셔츠는 김 추기경의 얼굴 스케치를 기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하트 속에 '사랑하라'는 추기경의 뜻이 담긴 타이포그라피(typography)로 디자인해 사랑의 메시지를 더욱 강조했다. 티셔츠 판매 수익의 일부는 국제구호단체 유니세프에 기부된다.


■ 오는 5일 김 추기경을 기릴 마지막 기회

5일은 공식적으로 김 추기경의 추모가 종료되는 날. 우연하게도 우리 민족 고유명절인 한식과, 세상을 떠난지 49일째 되는 날과 겹친다. 따라서 이날 오전 10시30분 용인시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의 성직자 묘역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추모미사가 봉헌될 예정이다. 이날 미사는 일반 신도의 추모미사와 차이가 없이 치러진다.

추모미사 다음날인 6일 오후 8시 명동대성당에서는 장례기간에 봉사해준 자원봉사자와 조문객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했던 전·의경, 명동 주변 상인 등을 초대한 가운데 'Memory of Him-김수환 추기경 추모의 밤' 행사도 열릴 계획이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가톨릭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김 추기경을 위한 기도, 추모 노래, 추모 시와 글 낭독, 추기경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 상영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 왜 우리는 김 추기경을 사랑하나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1987년 6월 13일 밤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했다는 김 추기경의 발언이다.

왜 우리는 김 추기경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세상을 떠난지 한달이 넘어서도 추모의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김 추기경의 앞선 발언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있다. 그는 현실 참여적인 종교인이었다. 철거민, 노점상, 구속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함께 하고 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또 힘이 없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 앞일수록 언제나 자기 자신을 낮췄다. '바보야'라는 자화상은 이같은 김 추기경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각막기증, 고인의 마지막 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는 세상 사람들이 차이와 차별을 극복해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화합할 것을 부탁하는 메아리로 다가왔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는 겸손하고 소탈한 동네 할아버지였다.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을 형제처럼 대함으로써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각 분야 지도자들의 모습만 보던 국민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너희와 모든 이를 향하여' 살다 간 김수환 추기경.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故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지상의 보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한 달 반가량 지났지만, 추모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이같은 열기는 출판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추기경의 선종 이후에도 김 추기경의 사랑과 감사의 정신을 기리는 책이 새로 출간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 김 추기경의 잠언묶음, 평전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는 고 김수환 추기경을 다룬 새책들을 모았다.

정채봉 작가가 들려주는 추기경의 성장기

■ 바보 별님(동화작가 정채봉이 쓴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1993년 5월부터 8월까지 '소년한국일보'에 '저 산 너머'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작품으로, 추기경의 뜻에 따라 선종 후 출간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자신의 성장시절 이야기를 정채봉 작가에게 들려주고, 정채봉 작가가 그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냈다. 1부는 3인칭 시점으로,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하신 추기경 할아버지 때부터 군위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며, 2부에서는 1인칭 시점으로 성 유스티노 신학교 시절부터 구술하는 시점, 즉 1993년까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솔출판사刊, 192쪽, 9천500원.

바보가 바보들에게 전하는 희망메시지

■ 바보가 바보들에게(우리시대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 우리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잠언들)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집. 이 책은 '거룩한 바보 김수환 추기경'이 '겉으론 잘난 척 하지만 외로운 바보들', '매일매일 정신없이 달리고 있지만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미련한 바보들'인 우리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채워져 있다. 또한 이 잠언집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감사하고 사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알퐁소(장혜민) 엮음, 산호와진주刊, 199쪽, 9천800원.

실천하는 신앙인의 삶·신념 재조명

■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김수환 추기경 평전)

김수환 추기경은 세계 가톨릭 교단에서 한국 가톨릭의 위상을 크게 높였으며,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대한민국 민주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책은 그의 삶을 되짚어보는 의미 있는 책이다. 저자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김수환 추기경의 사회참여를 정치적인 의도로 해석하는 등 오해하는 예가 있으므로 이 책에서 김 추기경의 신앙에서 비롯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실례를 들어 객관적인 입장에서 밝히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구중서 지음, 책만드는집刊, 208쪽, 1만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