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개시에는 '바람도 노랗게 물들인다'는 노란 산수유꽃이 장관을 이루는 산수유꽃 축제에는 많은 상춘객들이 붐빈다. 원적산을 병풍삼아 백년에서 오백년에 이르는 산수유가 군락을 이룬 가운데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경사리, 송말리에서 개최한 '제10회 산수유 축제'도 성황리에 치러졌다. 조선시대에는 선비의 꽃으로 불리고 열매는 약재로도 쓰이는 산수유꽃을 벗삼아 마을 주민들은 봄들녘을 가꾸고 있다.
# 원적산 너른 품에 안긴 오붓한 마을 셋
이천의 북쪽은 원적산과 정개산이 서로 이어져서 병풍을 두른다. 이 산줄기는 북쪽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모아서 신둔면과 백사면, 그리고 여주군 흥천면의 평야를 적시며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또 산줄기는 이웃한 여주와 광주의 경계가 되므로 고갯마루는 이천의 관문이 되기도 한다. 산에 오르면 남한강의 이포나루와 이천 시내가 모두 보여서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천년 고찰이라는 영원사가 원적산의 주인처럼 들어앉았는데 산중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터전이 넓다. 계곡을 따라 영원사에 이르는 길도 완만한 경사에 거의 직선으로 길이 났으므로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이 영원사를 산행 출발지로 삼는다. 주차장이 넓어서 주말이면 대형버스도 여러 대씩 주차한다. 이곳에서 만난 이천시민 주공규(51)씨는 "원적산과 정개산을 거쳐 넋고개 주변의 동원대학 앞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산길을 되돌아오면 8시간 정도 걸린다"며 "산행을 꾸준히 해서 씨름선수 같았던 몸집이 이젠 유도선수처럼 되었다"고 하고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 봄의 전령 샛노란 산수유 꽃
원적산 영원사에서 보았을 때 왼쪽은 송말리이고 오른쪽은 도립리와 경사리가 이웃한다. 이 세 마을이 봄마다 분주하다. 바로 '이천백사산수유축제'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벌써 열 번째의 축제를 치러냈으니 그 성숙도가 무르익었다. 전봇대마다 걸린 현수막이 축제 분위기를 한껏 띄웠는데 산수유 꽃처럼 노란색 바탕에 글을 썼다. 가로수 또한 아직은 어리지만 죄다 산수유나무로 심어서 듬성듬성 노란 꽃을 피워냈다. '산수유 꽃 필 때는 바람도 노랗게 물든다'고 한 시인의 정서가 그대로 전달된다.
▲ 작업중인 마을농부.
매화며 산수유,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목련 등 봄꽃은 모두 이파리보다 꽃을 먼저 내민다. 긴 겨울의 썰렁한 뒤끝을 한 번에 채우려는 욕심이 앞서서 그런가 보다. 산수유는 매화보다는 늦지만 강렬한 노란색으로 자신의 존재를 한껏 드러낸다. 두 번 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꽃받침이 벌어져 그 속에서 꽃망울이 나오고 이내 꽃망울이 터지면서 더 노란 꽃술이 나타난다. 꽃술은 대개 12~15개인데 다른 꽃들과 달리 꽃술마다 열매를 맺는다. 즉 꽃봉오리 하나에 그 꽃술 개수만큼 주렁주렁 열매를 다는 것이다. 꽃이 필 때는 줄기가 노란 색이었다면 열매를 맺을 때는 잎이 푸르러 보조를 맞추고 열매가 익어 가면 또 잎도 열매를 닮아 붉게 물든다. 이런 가을의 풍경도 봄 풍경 못지않게 볼만 하다.
# 우리 몸에 이로운 산수유 열매
▲ 산수유 촬영에 열중인 사진작가들.
'약성은 온화하고 독이 없으며 맛이 시고 달다. 신장기능과 생식기능의 감퇴로 소변을 자주 보거나, 야뇨ㆍ두훈, 이명과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은근히 통증을 느낄 때 복용하면 효과가 좋다. 또 유정ㆍ몽정이 심하고 하체에 힘이 약하여 보행장애가 생기거나 성신경의 기능 허약으로 발기가 잘 안되거나 조루 등에 장복하면 큰 효과를 본다. 이밖에 잠자리에서 자고 난 뒤에 땀을 많이 흘리거나 팔ㆍ다리가 찬 사람에게 사용해도 좋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봄에는 꽃으로 사람을 즐겁게 하고 열매는 약리작용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니 더없이 좋은 나무가 아닌가?
백사면의 송말리, 도립리, 경사리 등 세 마을에는 500여 년 묵은 나무부터 100여 년의 나이를 지닌 산수유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살아간다. 허름한 농가의 뒤란에서도 자라나고 개울가에서도 줄지어 자란다. 주민들은 봄에는 축제로 분주하고 가을에는 열매를 따서 말리느라 또 바쁘다.
# 육괴정의 선비정신을 도립서당이 이어가고
▲ 육괴정.
세 마을 모두 원적산의 너른 품에 자리를 잡아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가장 많다. 최근에는 전원주택이 들어서서 다소 이국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하고 많지는 않지만 도자기 공방이나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가운데 마을인 도립리에서는 육괴정(六槐亭)에 한 번 들러볼만 하다.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때 난을 피해 낙향한 남당 엄용순이 건립했다는 정자이다. 엄용순과 모재 김안국, 강은, 오경, 임내신, 성담령 등 여섯 선비가 하나씩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 태평성세를 바랐을 것이다. 이는 세종 때의 명재상이었던 고불 맹사성과 두 명의 정승들이 충남 아산 고불의 집 근처에 세 그루씩 심어 '구괴정'이라고 이름 붙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산수유나무 또한 육괴정의 선비들이 처음 심었다고 하여 산수유 꽃을 '선비꽃'이라고도 한다.
그 선비의 꿈이 다시 자라나는 곳도 역시 도립리이다. 한재홍(47), 재근, 재훈 세 형제가 이끌어가는 도립서당이 그것인데 도립(道立)이 아니라 사립(私立)이며 한학을 통한 전통문화와 예절까지도 가르친다.
# 두 그루의 소나무도 원적산 품에서 자라난다
▲ 반룡송.
도립리 벌판 밭 가운데는 납작 엎드린 소나무가 자란다. 원적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매서워서 그런지 소나무는 용틀임하듯 줄기와 가지가 이리저리 휘어지고 꺾여 돌아갔다. 심지어 180도 돌아간 부분도 보여서 정말 승천하기 전 용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이름도 용이 서린 듯한 모습이라고 반룡송(蟠龍松)이라고 붙였다. 누군가 일부러 만들었어도 힘들 것 같은 자태에 넋이 나간다. 더구나 나무의 키는 4m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길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고 표지판을 따라 100여 m를 들어가서야 만나게 된다. 자연의 섭리인가? 아니면 특이 유전자를 지닌 이 소나무만의 특징인가?
경사리 인근의 신대리에도 또한 특이한 소나무가 자란다. 반룡송이 벌판에서 낮게 살아간다면 신대리의 백송은 언덕에서 큰 키를 자랑하며 자태를 뽐낸다. 게다가 이름대로 하얀 껍질로 고고한 모습마저 띤다. 백송은 우리나라에는 8그루만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 이천 백송이다. 자생하지는 않고 대부분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들이 옮겨 심었으므로 가치가 높다. 두 그루의 소나무 모두 마을의 수호신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제는 나라에서 보호하는 나무가 되었다.
▲ 산수유마을 전경.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산수유꽃축제가 열렸던 도립리, 경사리, 송말리는 축제 전부터 차들과 인파로 넘쳐나고 축제가 끝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주민들은 농사 같은 생업을 잠시 미뤄놓고 힘을 모아 대청소를 하는 등 손님맞이를 했고, 주차관리와 교통 통제, 마을 안내와 산수유 등 특산물 판매에도 열심이었다. 이 축제가 앞으로도 결실이 좋기를 바란다. 산수유 노란 꽃이 활짝 피어나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