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촌 문화의거리 야경.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상징·조형물만이 이곳이 문화의 거리임을 말해 준다. 이상고온의 봄날씨속에 많은 시민들이 화려한 네온간판아래 저녁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 알뜰시장이라는 이름의 정기시장

평촌의 아파트 숲을 헤매다가 초원부영3차아파트단지에 천막이 늘어선 모습이 보이기에 그곳으로 가보았다. 금요일마다 서는, 규모가 꽤 큰 아파트 알뜰시장이었다. 아파트 알뜰시장은 매주 정해진 요일에 개설
▲ 신라아파트 알뜰시장.
되는데, 평촌 신도시처럼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많은 곳에서 주로 나타나는 시장이다. 이러한 형태의 시장은 아파트단지 주민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저런 문제점으로 인해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주민들은 알뜰시장을 이용하여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시장 개설로 얻은 수익을 아파트내 공동체 활동의 주요 재원으로 사용한다.

이 아파트의 알뜰시장에서는 단지 안쪽을 향해서 뻥튀기·이불·과일·옥수수빵·보석·상·분식·어물·채소·잡화·도넛·젓갈·액세서리·화훼를 파는 천막과 좌판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에 학습지 판매사원도 자리잡고 있었다. 적지않은 주민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중간쯤 자리 잡은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천막에 손님이 가장 많았다.

필자도 출출하던 참이라 그곳에 가서 떡볶이를 시켜서 한 입 가득 넣고, 함께 딸려나온 어묵 국물을 마셨다. 온몸 가득 퍼지는 온기를 느끼며 장터를 보니 몇몇 품목에는 손님이 꽤 드나들었다. 흔히 알뜰시장의 기본 품목이라는 채소·어물·과일·분식이 그러했는데, 이들 품목이 모두 있어야 구색을 갖춘 알뜰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서 다른 품목에는 손님이 가물에 콩나듯 했다. 그중 머리띠와 핀 등의 액세서리를 파는 점포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상인이 앉아있기에 말을 걸어 보았다. 이름은 윤종갑. 거주지는 안양인 그 상인은 도넛과 꽈배기를 만들어 파는데, 액세서리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장사도 봐줄 겸 쉴 겸해서 앉 아있다고 했다.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파트들을 옮겨가며 장사를 한다. 월요일에는 의왕, 화요일에는 수원, 목요일에는 인천, 금요일에는 안양, 토요일에는 의왕에 있는 아파트단지에서 장사를 하고 수요일에는 장소를 정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 안양시청.
시장은 실물경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를 비롯한 몇몇 상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전반적인 경기침체의 여파가 아파트 알뜰시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알뜰시장에는 경기가 좋을때면 천막만 30개 이상이 들어섰으나 그 수가 계속 줄어드는 상태라고 한다. 그날 이 아파트 외에 목련우성3단지아파트, 목련두산6단지아파트 등에도 장이 섰는데, 그곳에서도 출시하는 상인의 수가 점차 줄어든다고 한다. 하루종일 있어 봐야 오고가는 자동차 기름값조차 벌지 못하는 날이 많다보니 차라리 쉬는 편이 낫다고 여겨서란다. 그리고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정치인들이 아래의 삶을 너무 모른다", "아래는 죽어가는데, 위만 살리려 한다"는 말이다. 아래와 위가 무엇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현실을 높은 곳에 있는 그네들은 너무나 모른다는 울분섞인 한탄이었다.

 
 
▲ 평촌 문화의거리 상징조형물.
# 허허벌판에 자리잡은 마을이어서 평촌


지금부터 20여년 전,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난 해결을 위해 대규모 주택 건설 사업이 추진됐다.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 사업의 결과, 다섯 곳에 신도시가 건설됐다. 분당·일산·산본·중동 신도시, 그리고 이번 회에서 다루는 평촌 신도시가 그 곳이다.

▲ 평촌신도시 전경. 이십여년전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난을 해결하고자 건설됐던 다섯 신도시중 하나였던 평촌신도시. 지금은 안양시청과 농수산물시장이 자리해 어엿한 안양시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건설 당시 작은 동산 하나없이 허허벌판 농경지에 건설된 관계로 주거생태 환경이 썩 좋지못하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지금은 생태환경이 복원된 학의천과 안양천 덕에 주거환경에 보탬이 되고 있다.
흔히 1기 수도권 신도시로 불리는 이들 다섯 곳은 이전에 개발된 신도시들, 예를 들어 1960년대에 산업도시로 개발된 울산과 포항, 서울시의 철거민 수용을 위해 개발된 성남, 1980년대에 행정신도시로 개발된 과천 등이 행정적·물리적으로 독립된 도시 형태를 갖춘 것과 달리 기존 도시 안에 조성된 신시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속한 성남·고양·군포·부천 그리고 안양과는 전혀 다른 도시인양 인식되기도 한다.

평촌은 1기 수도권 신도시 중 네 번째 규모인 510.6㏊ 면적으로 조성됐다. 그런데 신도시 조성 전에는 이곳이 작은 동산 하나 없이 농경지로 가득한 벌판이었고, 그 가운데에 마을만이 하나 있었다. 그 마을의 이름은 '벌말'이었다. 벌말이란 산이 없는 허허벌판에 자리잡은 마을이라는 뜻인데, 신도시 건설 초기에 벌말이라는 이름이 어감상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한자어 '평촌(坪村)'으로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 신도시에 부는 리모델링 바람

평촌 신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면 아파트 벽면에 큰 현수막이 걸린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건설업체나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에서 내건 현수막이 대부분인데, 거기에는 '리모델링 시공사 선정' 혹은 '○○아파트 리모델링 추진'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2~3년 전부터 서서히 불던 리모델링 바람이 한껏 거세진 모양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머지 신도시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현행법으로 아파트 준공 후 15년이 경과하면 증축과 리모델링이 가능하다. 1기 수도권 신도시 다섯 곳에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는 1990년대 초반에 완공됐다. 그때부터 15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현행법에 따라 아파트 리모델링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열기가 고조되는 실정인데, 이제는 이들 도시에 신도시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가 무색하다고 하겠다.

 
 
▲ 학의천 징검다리.
# 평촌을 돋보이게 하는 학의천과 안양천


아파트 알뜰시장을 돌아본 후에 평촌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중앙공원을 거쳐 문화의거리로 가보았다. 문화의거리에 문화예술은 없고 음주문화만 넘쳐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데,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닌 듯했다. 이름이 무색할 만큼 온갖 음식점과 술집, 그리고 유흥업소가 가득했다. '문화의거리에 언제쯤 문화예술이 넘쳐날까?'하는 생각을 하며 안양천과 만나는 학의천변으로 가 보았다. 인근의 과천시가 관악산과 청계산, 군포시의 산본 신도시가 수리산 품에 안긴 것과 달리 평촌은 벌판 위에 건설됨으로써 환경이 좋다는 평가를 듣지는 못한다. 그래도 신도시 외곽을 감싸 돌며 안양천에 합류하는 학의천이 평촌의 주거환경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어 다행이다. 학의천과 안양천은 수년 전만 해도 오염된 하천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으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 이제는 생태하천 복원의 성공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 1980년대 평촌 모습.
학의천변의 생태탐방로와 가로공원에서는 두 손을 잡은 아버지와 아들, 연인을 비롯해서 적지않은 주민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매우 밝아 보였다. 그리고 두 명의 남자가 색소폰을 연습하는 모습이 보였고, 스케치북을 들고 걸어가는 모자의 모습도 보였다. 실생활에서 살아있는 문화예술이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서도 이런 산책길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봄 향기 가득한 학의천변을 기분좋게 거닐어 보았다.

글/이상열 군포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 yol68@hanmail.net
사진/조형기 편집위원 hyungphot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