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들이 중동 원정에서 거친 모랫바람을 뚫고 아시아축구 역사를 새롭게 썼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중동의 `복병' 아랍에미리트(UAE)를 제물로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 쾌거를 이뤘다.

   한국은 7일(한국시간) 오전 UAE 두바이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UAE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6차전 원정경기에서 박주영의 선제골과 기성용의 추가골로 2-0 승리를 낚았다.

   이로써 한국은 4승2무(승점 14)로 이날 이란과 비긴 북한(승점 11)을 승점 3점차로 따돌리고 남은 두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최소 조 2위를 확보해 남아공행 직행 티켓을 얻었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지난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7회 연속이자 1954년 스위스 대회를 포함해 통산 여덟 번째다.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은 이날 우즈베키스탄을 제물 삼아 가장 먼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각각 4회 연속을 크게 넘어서는 아시아 최고 기록이다.

   한국은 UAE와 역대 상대전적에서도 9승5무2패의 압도적 우위를 유지했다.

   또 지난 2007년 12월 출범한 허정무호는 첫 경기였던 칠레와 평가전 패배 이후 22경기 연속 무패(11승11무) 행진을 이어갔다.

   본선행을 확정한 한국은 10일 사우디아라비아, 17일 이란과 최종예선 7, 8차전 홈경기를 치른다.

   불굴의 투지로 무장한 태극전사들이 경기장을 찾은 한국 교민 2천여명의 뜨거운 응원 속에 일궈낸 가슴 후련한 승리였다.

   허정무 감독은 UAE 골문을 열 투톱으로 이근호와 박주영을 배치하고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청용(서울)을 좌우 날개로 폈다. 베테랑 김정우(성남)와 기성용(서울)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뒤를 받쳤다. 지난 3일 오만과 평가전 때 선발로 나섰던 최태욱(전북)과 조원희(위건)를 대신해 서울의 `쌍용' 이청용과 기성용이 그 자리를 채웠다.

   또 4-4-2 전형의 포백 수비라인은 왼쪽부터 이영표(도르트문트)-이정수(교토)-조용형(제주)-오범석(사마라)이 차례로 늘어섰고 골키퍼 장갑은 `거미손' 이운재(수원)가 꼈다.

   UAE는 간판 스트라이커인 이스마일 마타르와 파이살 칼릴이 부상으로 빠졌지만 이스마일 살렘이 공격 선봉장으로 나섰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6위인 한국과 122위인 UAE 대결에서 한국이 초반 공세로 주도권을 잡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된 UAE는 안방에서 패배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밀집수비로 맞섰다.

   하지만 전날 밤 열린 북한-이란 경기 0-0 무승부 소식에 고무된 태극전사들이 UAE를 제물 삼아 남아공행 직행 티켓을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강한 의지로 기선을 잡았다.

   한국은 경기 시작 6분 만에 이청용이 오른쪽 측면을 돌파하고 나서 크로스를 띄웠지만 이근호의 헤딩슛이 골포스트를 넘어갔다.

   초반 공세로 UAE의 골문을 위협하던 한국이 기다리던 첫 골은 `중동 킬러' 박주영의 발끝에서 터져 나왔다.

   A매치에서 4골을 중동팀과 경기에서만 뽑았던 박주영은 전반 8분 이청용이 오른쪽 측면에서 살짝 찍어 차 공을 올려주자 골지역 정면에서 가슴 트래핑으로 속도를 늦춘 뒤 넘어지면서 오른발로 차 넣어 골망을 흔들었다. 박주영은 발이 엉키면서 스텝이 맞지 않았음에도 공에 대한 끈질긴 집중력과 빼어난 골 감각으로 귀중한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박주영의 A매치 통산 11호골.

   빠른 측면 돌파에 이은 천금 같은 패스 연결로 어시스트를 배달한 이청용의 활약도 빛을 발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김정우의 안정적인 볼배급과 좌우 측면을 활용한 빠른 공격 전개로 UAE의 골문을 노렸다.

   전반 35분 이근호가 뒤로 살짝 빼준 공을 왼발로 강하게 찼지만 골키퍼 마제드 나세르의 선방에 걸려 아쉬움을 남겼던 기성용이 한국의 두 번째 골 사냥의 주인공이 됐다.

   2분 뒤인 전반 37분 박지성이 후방에서 높게 올려준 공을 상대 수비수가 가슴으로 백패스한 것을 골키퍼가 몸을 던져 잡으려다 공이 그대로 흘렀다. 기성용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골지역 왼쪽으로 달려들며 공을 가로챈 뒤 가볍게 오른발로 차 넣어 골문을 갈랐다. 골키퍼 실책을 놓치지 않은 기성용의 재치있는 플레이가 돋보인 득점포였다.

   0-2로 끌려가던 UAE는 전반 막판 나와프 무바라크가 강한 오른발 슈팅을 날렸지만 골키퍼 이운재의 선방에 걸렸다.

   한국은 후반 들어서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지만 김정우가 4분 만에 휘슬이 울린 상황에서 불필요한 공 터치로 두 번째 경고를 받으면서 퇴장을 당했다.

   허정무 감독은 10대 11의 수적 열세에 놓이자 공격수 이근호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 조원희를 기용해 김정우 공백을 메웠고 옐로카드 1개를 받은 이영표를 빼고 김동진(제니트)을 투입해 변화를 줬다.

   한국은 후반 15분 오른쪽 코너킥 찬스에서 기성용이 공을 올려주자 이정수가 돌고래처럼 솟구쳐올라 헤딩을 꽂았지만 공이 골대를 살짝 벗어나 아쉬움을 남겼다.

   골 점유율을 높여가며 역습을 시도하던 UAE는 1분 뒤 마흐무드 카미스가 위협적인 슈팅을 날렸지만 다행히 오범석의 끈질긴 수비 덕에 실점 위기를 넘겼다.

   한국은 수적 열세에도 강한 압박으로 상대 공세를 차단했고 후반 27분에는 박지성이 후방에서 패스를 찔러주자 이청용이 골키퍼와 1대 1로 마주하는 찬스를 잡았지만 이청용의 오른발 슈팅이 골키퍼를 맞고 나가 추가 득점 기회를 놓쳤다.

   이어 31분 기성용의 대포알 같은 슈팅도 골키퍼가 쳐냈다. 한국은 후반 막판 선제골 주인공인 박주영을 빼고 배기종(수원)을 투입해 기회를 줬다.

   UAE는 후반 39분 히랄 사예드가 박지성에게 거친 태클로 하다 퇴장을 당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에 모하메드 알셰히의 슈팅을 이운재의 선방으로 잘 막아내며 끝까지 2점차 리드를 지켜 남아공으로 가는 기분 좋은 팡파르를 울렸다.

   한편 최종예선 A조에서는 일본과 호주가 나란히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일본은 우즈베키스탄과 원정경기에서 전반 9분 터진 오카자키 신지의 결승골을 끝까지 지키면서 1-0으로 이겨 4승2무(승점 14)로 3위 바레인(승점 7)과 승점 차를 7점으로 벌려 개최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하고 월드컵 본선 진출 1호 국가가 됐다.

   또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호주도 카타르와 원정경기에서 득점 없이 비기며 4승2무(승점 14.골 득실+8)를 기록, 일본(골 득실+6)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 득실에서 앞서며 조 1위를 지켜 남아공행 티켓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