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의 길(박근우 作)'. 시골의 정감있는 돌담길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경기문화재단이 공공미술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한 '새로운 주문자 사업' 지원대상 작품이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 단오제로 사라진 세시풍속 되살려

단오하면 언뜻 떠오르는 정경이 있다. 녹음이 짙은 바위 계곡을 타고 흐르는 시냇가에서 저고리를 벗어부친 농염한 여인네들이 물맞이를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젊은 미인 하나가 고혹적인 자태로 그네를 타고 있고, 삼단같은 검은 머리채를 땋고 있는 여인의 모습도 보인다. 혜원의 유명한 그림 속의 풍경이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수릿날, 중오절, 천중절이라고도 하여 팔월한가위,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명절 중 하나였다. 혜원의 풍속도처럼 이날은 특히 여인네들이 두터운 인습과 고된 가사노동의 굴레에서 모처럼 벗어나는 날이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밖에 나가 그네를 뛰고, 음식을 장만해 물가를 찾아서 물맞이로 하루를 즐기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단오절 풍속이 지금은 농촌에서조차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혜원 신윤복作 '단오풍정'의 일부

단오는 원래가 중국에서 시작된 명절이었다. 그것이 우리나라를 거쳐 섬으로 건너가서는 오늘의 어린이날 풍습으로 굳어지게 됐다. 일본의 어린이날은 우리처럼 양력 5월 5일이다. 그런데 명칭은 어린이날이지만 이날은 남자아이들을 위한 날이고 여자아이들을 위한 날이 별도로 있다. 어린이날이 가까워지면 일본의 가정에서는 잉어 모양을 한 깃발을 높은 장대 끝에 매달아서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데 이것을 '고이노보리(鯉のぼり)'라 부른다. 이날 창포잎을 넣은 창포탕에 목욕하는 풍습도 단오절 풍습이 전해진 것이다.

이천시 설성면 금당2리 당전골에서도 옛날에는 해마다 빠짐없이 단오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마을 뒤에 있는 성호저수지 옆에 부락민들이 모여 물고기랑 민물새우를 잡아서 천렵으로 하루를 즐겼던 것인데, 술취한 마을 남자들 몇이서 뱃놀이를 하다가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그후로는 중단되고 말았다.

20여년 동안 중단됐던 단오절 마을잔치가 올해부터 '당전골 단오제'란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당전골 단오제는 원래 단오날인 5월 28일에 열기로 하고 홍보물을 만들고 초청장을 돌리는 등 모든 준비를 끝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국민장이 시행되는 바람에 5월 30일로 날짜를 연기해 개최하게 됐다. 이날 마을 사람들은 20년 전처럼 모처럼 일손을 놓고 아침부터 마을회관 옆 공터에 모여 왁자지껄한 잔치판으로 하루를 보냈다.

연만들기와 윷놀이, 투호, 제기차기, 그네뛰기, 창포머리감기 등 민속행사 외에도 노래잔치와 팔씨름 대회가 마련되고, 방문객들에게 단오부채를 나눠 주기도 했다. 저녁 무렵에는 마을회관 앞에서 단오풍농제를 올리고,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밟기로 복을 빌어주었다.

# 노성산이 굽어보는 전원마을 금당리

설성면의 면소재지인 금당리(金堂里)는 3개의 행정리로 나눠지는데 1리는 금성골, 2리는 당전과 송삼, 3리는 문화촌이다. 금당이란 부처를 모시는 집을 뜻하므로 사찰에서도 중심이 되는 귀한 공간이다. 그런데 금당리란 이름은 예부터 그렇게 불린 것이 아니고 일제강점기 초 일본이 조선 팔도의 행정구역을 멋대로 뜯어고칠 때 금성골과 당전에서 첫글자를 따다가 지은 이름이다. 그 이전에는 음죽군 서면에 속했고 마을 이름을 송삼동(松三洞)이라 했다.

금당2리는 면소재지이긴 하지만 노성산이 건너다보이는 조용한 전원마을에 가깝다. 당전(堂前)이란 마을 이름은 글자 그대로 당집 앞 마을이란 뜻이지만 어디에 어떤 당집이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송삼은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세 개의 성씨가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역시 뚜렷한 유래는 알 수 없다. 금당리는 인접한 장릉리와 함께 함안 이씨들의 집성촌이다.

현재 금당2리의 가구 수는 130호 정도, 인구는 유동인구까지 포함해서 200명 남짓이다. 12~13년 전 통계(86호, 304명)와 비교하면 가구 수는 불어났지만 인구는 오히려 100여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일반적인 농촌마을처럼 이농현상에 따른 인구 고령화와 소가족화가 이 마을 역시 심각한 수준인 것이다. 농촌마을이면서도 전업농은 많지 않으며 과수와 축산업, 상업, 자영업 등으로 주민들의 직업 구성이 다양한 편이다. 금당리 뒤에는 이천시 관내에서 가장 큰 성호저수지가 있다. 물이 깨끗한 탓에 낚시터로도 유명한 호수 주변으로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연꽃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당전골의 김재기(55) 이장은 확실히 보통의 시골 이장들과는 다른 유별난 인물이었다. 당전골 단오제가 그렇고, 정월대보름 당전골대동제와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 모두 그가 경기문화재단으로, 시청으로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부지런을 떨어서 힘들게 얻어 낸 결과물이다. 김 이장의 고향은 멀리 바다가 있는 경상남도 남해이다. 몸이 허약한 부인을 위해 도시생활을 접고 이곳으로 이주,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이십년 동안을 살다 보니 당전골이 제2의 고향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김 이장은 자꾸만 사라져가는 마을의 옛 정취와 변해만 가는 인심이 가슴 아팠다고 한다. 사라져 가는 세시풍속과 전래의 민속놀이를 되살리는 일은 정감 있고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이리 저리 궁리하고 이곳 저곳 발품을 팔아가며 쫓아다닌 성과가 지난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 이장은 지금은 대학생이 된 두 아이가 어렸을 적에 이미 가족 사물놀이팀을 구성하여 활동한 경험이 있다. 문화원 문화학교에 등록을 하고 승용차로 왕복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매주 오가면서 온 가족이 함께 사물놀이를 배웠다. 두 아이는 지금도 학교에서 사물놀이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이번 단오제 때도 지신밟기와 가족연주회 등으로 부친의 일을 돕고 있다.

▲ 금당2리 전경. 이천시 설성면 금당2리 당전골은 면소재지라기보다는 조용한 전원마을이다. 면소재지인 덕에 전업농보다는 상업과 자영업 등 직업구성이 다양한 편인데 20여년 전 중단됐던 마을 단오제가 되살아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 빛으로 밝히는 당전골의 미래

문화유산도, 역사적인 유명인물도 뚜렷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당전골에 지난해부터 새로운 명물이 등장하게 되었다. '빛의 나무'와 '빛의 길'이라 명명한 조형물들이 그것이다.

지난해 경기문화재단에서 추진한 '새로운 주문자 사업'은 지금까지 공공미술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새로운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일반 대중들이 단순한 수동적 관객이 아니라 공공미술의 실질적인 주문자가 되어, 주문자-매개자-작가가 서로 긴밀한 소통을 통해 작품제작에 참여하고 체험하는 그런 사업인 것이다. 금당리 프로젝트 '빛으로 밝히다'가 경기문화재단 사업공모에 채택되면서 새로운 마을의 명물이 탄생하게 됐다.

박근우 작가가 제작한 '빛의 나무'는 당전골 입구인 삼거리에 있다. 화강암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료로 해 대지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이고 서 있는 나무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린 건강한 나무처럼 풍요롭기를 바라는 마을의 새로운 얼굴이자 상징물인 것이다. 야간에는 몸체와 가지 부분에서 밝은 빛을 투사함으로써 어둡고 단조로운 주변 풍경에 생동감을 줄 수 있도록 했다.

'빛의 길'은 시골의 정감있는 돌담길을 형상화한 설치작품이다. 마을 안길로 길게 이어진 나지막한 돌담을 층층이 쌓은 화강석으로 나타냈으며, 중간 중간에 원과 마름모꼴, 장방형 등 공간구성을 통해 유쾌한 변화를 주었다. 역시 밤중에는 영롱한 빛이 새어나오도록 되어 있다. 빛의 나무와 빛의 길 제작에는 문화재단 지원금 4천만원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경기문화재단의 새로운 시도는 적어도 당전골의 경우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당전골에서는 앞으로 연꽃단지와 연계한 농촌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구상 중이기도 하다. 당전골의 작지만 보람있는 시도들이 꼭 결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이인수 이천문화원 사무국장
사진/조형기 편집위원 hyungphot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