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모양이 대망(이무기) 모양처럼 곶이 되었다고 해서 대망고지·대명꾸지·대명곶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지금은 해안선 제방 축조로 인해 땅 모양은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지지자료의 포구편에 보면 '전막(全幕)이 대명촌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이 이 마을의 이름으로는 처음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전막(全幕)은 점막(店幕)이다. 즉 예전에 음식을 팔고 나그네를 유숙시키는 집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식사하는 곳을 '한바'라 하고 이것이 '한정(寒停)'이 되었다가 '한정(寒井)'으로 쓰인 것이 아닌가 한다.

김포사람들에게는 '대명항'이라는 말보다는 '대명포구'라는 말을 더욱 정스럽게 느끼고 있다.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심적으로는 왜 '포구'를 '항'으로 바꾸게 되었는지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다. 예전 대명나루는 강화도 초지리와 인천을 왕래하던 도선이 있어서 여객의 왕래가 빈번한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명항에 여객선이 없다. 뿐만 아니라 바닷가를 들어가려면 군인 초소의 허락을 받아야한다. 등록된 어부만 출입할 수 있다. 김포지역 3면(김포는 3면이 강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전체가 철조망으로 담이 쳐져있는 이유가 북한의 간첩이 뭍으로 넘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철책선으로 둘러싸여 있은지 40여년의 세월이 강과 바다의 문화를 간직해왔던 김포사람들의 일상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말았다.
# 새롭게 관광지로 태어난 대명항
5~6월이 되면 대명항에는 사람들이 떠들썩하다. 어촌계가 그 어느 때보다 바빠지는 시기로 '밴댕이철'이기 때문이다. 작은 어항이지만 고기잡는 배가 80여척이 되고 어부는 300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어판정은 43개나 된다. 물때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에 5t의 밴댕이 어획고를 올린다. 또한 대명항은 꽃게가 이름이 나있다. 9~11월께 이르면 하루 5t 규모의 꽃게를 수확한다. 어촌계장에 의하면 '환경변화의 영향이 심해진 탓인지 점점 어획고가 줄어들고 있다'고 걱정이란다. 그 걱정은 매년 풍어와 안녕을 비는 풍어제로 이어진다. 천지신명께 기도드리는 정성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인 서해안 풍어제로서 대동굿과 배연신굿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라만신 김금화씨가 주재한다.

대명항은 2000년 9월 '포구'에서 '2종어항'으로 승격된 후로는 김포시가 대대적인 어항 개발에 나서 지금은 어엿한 항구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더욱이 김포시의 대표적인 관광어항으로 발전시켜가고 있어 조만간 수도권의 유일한 항구로서 큰 인기를 끌 전망이다. 새로 단장한 어시장과 어판장에서는 밴댕이와 꽃게뿐만 아니라 대하·망둥어·주꾸미·농어·숭어를 비롯해 김장용 새우젓·멸치젓 등을 살 수 있다. 병어와 밴댕이 한접시가 어판정에서 1㎏에 1만원에서 1만5천원 정도 한다. 이곳에서 고기를 싸게 구입해서 주변 횟집에 가지고 가면 저렴한 가격으로 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방파제에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바다와 고깃배를 바라보며 회를 먹는 기회는 더없이 운치가 있다.

김포시는 52년간 바다를 지켜온 해군함정을 해군본부로부터 무상 대여받아 국민안보교육과 관광객 유치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 함정을 이용한 수도권 최초의 함상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함정내부를 전시ㆍ영상관, 홍보관, 함상체험장 등으로 꾸미고 상반기 공모를 통해 설계를 완료, 하반기부터 내부공사를 착공해 2010년 상반기 함상공원을 개장할 예정이어서 볼거리와 체험할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 '대명항'은 주변이 더 매력이 있는 곳이다
대명항은 다른 어항보다 색다른 재미를 곁들일 수 있는 곳이다. 즐비한 횟집에서 횟감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5분거리에 역사의 현장인 덕포진과 덕포진교육박물관, 천연 미네랄 라듐천인 약암온천 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강화를 잇는 김포가도인 48번 국도를 타고 누산 삼거리에서 양촌면과 대곶면 소재지를 지나 석정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대명항이 나오고, 우회전하면 덕포진과 덕포진교육박물관으로 갈 수 있다. 덕포진은 대명포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덕포진에 오르면 마주보는 강화도와 초지대교, 서해안이 한 눈에 펼쳐져 장관이다.

덕포진포대는 1980년 포좌 15개소와 대포 6문이 발굴돼 사적 제292호로 지정됐다. 이곳의 전투는 고종3년 병인양요때 별군관 이기조의 지휘로 철수하는 프랑스군을 요격한 것과 신미양요때인 1871년 미군해병대가 기함 콜로라도 등 5척의 전함, 대포 80문, 병력 1천230명으로 통상을 거절한 조선조정을 공격하려 한강어귀로 향하는 것을 이곳 포대와 강화의 광성보, 덕진에서 발포해 퇴각시킨 역사적인 곳이다.


글/김진수 김포문화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