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나라가 음식문화의 대국으로 알려져 있음은 상식에 속하지만, 그 음식 가운데서도 국수의 종류로 치면 가히 대국이라 일컬을 만하다. 각 지방의 국수류로 1천200종을 헤아린다니 말이다. 그 지방 특색 맛을 대표하는 국수의 대표선수로 꼽히는 것이 이른바 베이징의 라오베이징 자장면을 위시하여 상하이의 양춘면(陽春麵), 산시의 다오샤오면(刀削麵) 및 우리 동포인 조선족이 많이 사는 옌지의 개고기 냉면 등 그 수가 적지 않다.

옌타이 사람들은 자기네 고향의 국수인 '푸산라면'(福山拉麵)을 중국 북방의 4대 국수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명나라의 한 문인이 남긴 '면식행(麵食行)'이라는 시는 지금으로 치자면 국수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적은 시인데, 그 가운데 "대대로 전해져 온 국수의 내공을 말할라치면/국수 만드는 기술이야 산둥 동쪽을 쳐야 하리/달콤한 맛에 색도 눈부셔라/입에 넣으면 몸과 마음이 녹아든다네."(傳家麵食天下功, 製法來自東山東. 美如甘色瑩雪, 一匙入口心神融)이라는 구절에서 그 증빙을 찾기도 한다. 이 구절에서 국수 만드는 기술을 거론하는 산둥 동쪽이라면 지금의 쟈오둥(膠東) 지방, 곧 옌타이와 펑라이 등 이른바 푸산채(福山菜)의 고장이다.

연구년을 맞아 내가 거처를 정한 서산의 해미 읍성 옆에 해물짬뽕으로 유명한 영성각이 바로 펑라이(蓬萊) 출신 화교요, 재직하고 있는 연세대 일원의 연남동 연희동 화교 음식점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옌타이 무핑 출신이며, 대구 약전 골목에 지금도 남아 있는 화교 음식점 두 군데도 옌타이 무핑 출신이다. 아울러 국수로 치면 '푸산라면'을 운위하면서 펑라이 소면을 거론하지 않으면 펑라이 사람들은 섭섭해 하는 그런, 말하자면 옌타이 그 일대가 국수의 고장인 것이다. 우리가 이번 산둥행에서 옌타이를 찾은 것도 바로 이 푸산 일대 라면의 정체를 살피기 위함임은 물론.

옌타이 화교 호텔에서 화교 업무를 맡고 있는 츠루오웨이(遲若維) 과장과 면담을 마치고 푸산의 또 다른 화교호텔을 찾은 것은 4월20일 오후 5시 무렵. 푸산의 화교 호텔은 이번이 세 번째인지라 왕량 요리협회장을 비롯해서 장지순 요리사 그리고 전 회장인 장쩐용 선생과도 구면이다. 그날 저녁의 주메뉴는 뭐니 뭐니 해도 '푸산라면'. 우리가 흔히 수타면이라 부르는 그 기술이 바로 이 '푸산라면'과 연관이 있다. 라면(拉麵)의 '라'는 사전적 풀이에 의하면 끌다 혹은 당긴다는 뜻. 밀가루 반죽을 양손으로 길게 늘여 꼬고 늘이고 다시 꼬고 늘이고 하여 국수로 가닥을 나누어 길게 뽑아내는 기술이 바로 '라면'이다. 우리가 지금 인스턴트로 먹는 라면이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기원한 것이라 보면 틀리지 않다.

예전 청나라의 황제 가운데 강희제는 후식으로 룽쉬면(龍鬚麵·용의 수염처럼 면발이 가는 국수)을 즐겨먹었다고 한다. 국수 가닥을 양손으로 둘로 나누기를 거듭하다보면 국수 면발이 가늘어지기 마련이고 그 횟수가 13에서 14를 거치노라면 대단히 가는 국수 면발이 된다. 날씨가 받쳐주는 경우 최고 15회로 국수 가닥을 나눈 것이 기록이란다. 더운 날씨에는 국수 반죽이 늘어져 끊어지기 때문. 그러면 이런 계산이 나온다. 2의 열서너 제곱으로 되면 그 수가 얼마인가. 그 수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가늘어진다는 것. 그 가는 국수를 물에 삶으면 그건 아니올시다다. 국수의 면발이 가늘어 끓는 물에 들어가는 순간 녹아버리기 마련. 하여 그 국수의 가는 가닥을 그대로 보존하는 조리법이 바로 순간적으로 기름에 튀겨 거기에 설탕을 살짝 뿌려 먹는 것. 말하자면 후식치고는 그럴 듯한 발상이다. 그리고 이 룽쉬면을 개발한 주방장이 바로 산둥의 동쪽, 곧 지금의 옌타이 출신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 옌타이의 서구 영사관 건물들. 옌타이의 개항은 인천보다 20여 년 앞선다.

이 국수 뽑는 기술을 오늘날로 이어준 것은 청나라 함풍 2년(1851) 옌타이에서 문을 연 음식점 지성관(吉升館)이다. 그 집을 출발로 동순관 싱순관 등이 연달아 문을 연 시점이 때마침 옌타이의 개항(1862)과 겹쳐진다. 영·미·독·불 등 서구 열강 16개국이 옌타이에 영사관을 열었고, 그에 따라 푸지엔 상하이 등의 화교들이 옌타이로 몰려들면서 푸산라면의 제작방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 푸산 요리협회의 설명이다.

그런데 라면을 비롯한 푸산요리는 또 다른 행로를 개척하는데 그것이 바로 베이징이다. 그리하여 베이징의 팔대루 팔대거 십대당이니 하는 유명 청요릿집들을 이들 푸산 출신 주방장과 '장궤'(掌櫃, 사장)들이 '점령'한 것이다. 이를테면 베이징에 1902년 문을 연 동싱루(東興樓)는 당시 요리사만도 140명에 건물면적만 2천500㎡였단다. 문제는 이 동싱루라는 청요릿집 이름이 인천에도 그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자료에 있는 1924년 인천의 청요릿집 과세 표준(말하자면 1년 매출액)에 의하면 중화루 3만원, 동싱루 2만원, 공동춘(공화춘의 잘못된 표기인듯) 9천원 등이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동싱루는 뉴욕의 식당가에서 목하 성업중인 중화요리점이다. 이들 셋의 이름이 우연히 일치한 것인가 아니면 역사와 인물들에 서로 이어지는 연결선, 다시 말해 화교를 운위할 때 늘 쓰는 언어인 네트워크가 감추어져 있는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뉴욕의 동싱루 홈 페이지에 옌타이의 유명한 요리인 자오리우위피엔(糟溜魚片)을 메뉴로 올려놓았으니 옌타이 출신임은 거의 분명한 게다.

▲ 푸산라면. 오이채 마늘쫑 등을 담은 왼편의 작은 접시들에 담긴 것들이 우리식으로 치면 꾸미이고, 가운데 큰 그릇이 울면 국물 같은 루즈(鹵汁)이며, 그 옆에 복무원이 들고 있는 접시가 파와 돼지고기를 춘장으로 볶은 짜장이다.

물론 그날 저녁자리도 그냥 평화로운 자리일 수가 없었으니 푸산의 요리 계통 달인들의 술 공세를 우리가 막아내야 했기 때문. 술 공방이 끝나고 마지막 메뉴인 주식으로 푸산라면이 올라오는데 국수가 담긴 그릇 그리고 볶은 짜장이 담긴 그릇 옆으로 뭔가 걸쭉한 수프가 담긴 그릇이 술 취한 눈을 찌른다. 이게 뭔가 하고 물으니 푸산라면은 본시 한 종류의 국수가 아니란다. 국수에 얹어 먹는 수프를 루즈(鹵汁)라 부르는데, 그 루즈만도 20여 종류이며, 그 가운데 하나가 자장이라는 것이다. 장지순 요리사가 옆에서, 우리로 치면 걸쭉한 국물을 내 그릇에 국자로 얹어주면서 이름을 말하는 데 술이 취해 잘 들리지 않는다. 하여 수첩에 적어달라고 하니 '溫鹵'라고 적는다. 우리발음으로는 웬루, 웬루면인 것이다. 웬루면 웬루면을 술 취한 혀로 뇌까리노라면 우리의 울면으로 발음이 되는 것은 술이 취해서인가. 그러다가 퍼뜩 든 생각. 그 웬루면에 볶은 자장을 넣으면 우리식 자장면이 되지 않는가. '울면'에 자장 고명을 넣고 비벼 먹는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장지순 요리사가 빙긋이 웃으며 설명을 이어준다. 그 녹말가루 국물이야말로 기름으로 조리할 때 우러나오는 육즙을 요리와 하나로 결합시켜주는 비결이란다. 말하자면 한국 자장면이야말로 그 결합의 소산이 아닌가. 이렇게 보자면 푸산라면의 라면이라는 기술은 그야말로 국수를 뽑는 기술에 지나지 않는 건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 있는가.

그 날 밤 나는 꿈자리에서 '라면'이라는 말을 자꾸 이렇게 되뇌고 있었으니….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라면' 그리고 향후 세계 소비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로서 미국의 위상이 21세기에 심상치 않게 될 것이'라면', 아울러 그 미국을 뒤로 하고 중국이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면', 나아가 내수시장으로서의 중국의 면면은 곧바로 한국의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 글로벌의 1번지가 이곳 황해 바다 일대 혹은 동북아로 옮겨올 것이'라면'….

글/유중하 연세대 중문학과 교수
일러스트/박성현기자·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