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설악의 꽃 등선대와 점봉산의 깊은 골짜기

20여년동안 사람들의 손을 피해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흘림골은 1985년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2004년 비로소 일반인에게 모습을 공개했지만 2006년 폭우에 많은 것을 잃었다.

하늘로 솟은 금강송의 위용과 제각각의 형태로 멋진 암봉이 그 멋을 더해주던 곳이었지만 나무는 뿌리째 뽑혀나갔고 계곡은 토사와 함께 굴러온 바위로 메워져 버렸다. 결국 복구를 거듭한 끝에 등산로는 재정비됐지만 그 간의 길과는 다른 인공미넘치는 길이 됐다.

최근에는 등산로가 편하게 이어져 있어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몰리고 있다.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는 설악산 흘림골로 불리지만 엄연히 점봉산 자락에 속한 골짜기여서 언제쯤에야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설악산 국립공원에 속한 탓에 이름마저 바뀐 흘림골~주전골은 누구나 산행하기 좋은데다 경관마저 빼어나 꼭 한번쯤 다녀가 보자.

■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여심폭포

한계령에서 오색약수 방향으로 2㎞ 정도 내려오면 오른편으로 흘림골 탐방지원센터가 보이고 그 뒤 계곡가로 오르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계곡의 어수선함이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하지만 이내 산길로 접어들면 시선과 마음을 뺏기고 만다. 쉬엄쉬엄 걸어야 그만큼 잘 보이기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간다. 마라톤대회를 나왔는지 일부 등산객들이 분초를 다투려는 듯 앞서 가고 그들의 뒷모습을 씁쓸히 바라보며 20여분을 걷자 오른편으로 부끄러운듯 숨은 여심폭포의 모습이 발걸음을 잡는다. "허허허. 얼굴 들고 보기가 조금 민망하기만 하군요." 서울 서초동에서 왔다는 김일현(54)씨가 곁눈질로 바라보며 쑥스러운듯 말조차 더듬거린다. 폭포의 형태가 마치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닮았기 때문인데 오히려 여성 등산객들이 재밌다며 깔깔거린다. 여심폭포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등선대 고개까지는 20여 남짓 소요된다.


■ 신선이 올라 세상을 굽어 본다는 등선대

등선대에선 안개로 인해 제대로 된 경관을 본지가 꽤나 오래됐던 것 같다. 올때마다 "오늘만큼은 제대로 된 하늘과 풍경을 보겠지" 라는 기대를 가져보지만 대개 이러한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결과에 그저 산행자체에 만족을 해야했다.

능선을 가로질러 넘는 고개에서 왼편으로 약간의 발품이 필요한 자리에 우뚝 솟은 등선대에 서면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릿지등반으로 인기가 좋은 칠형제봉이 줄줄이 능선을 이어가고 있고, 그 아래로 넘실대는 구름속으로 소나무가 바위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선경(仙境)이란 단어 외에 다른 무엇을 생각해보기가 어렵다. 흘림골은 등선대에서 내려서면 용소폭포와 십이폭포가 만나는 지점까지이고 십이폭포부터 오색마을까지의 계곡을 주전골이라 부른다.


■ 가을단풍의 명소로 손꼽히는 주전골

주전(鑄錢)이란 이름은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 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옛날 이 계곡에서 승려로 위장한 도둑 무리들이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주전골은 설악을 통틀어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따라서 단풍철이면 수 많은 사람들로 인해 줄을 지어 오르내리기에 매년 교통 체증을 겪고 있다. 한편 용소폭포로 쏟아져 내린 물과 나란히 걷는 길은 목재데크로 인해 평탄하게 이어져 있어 어렵지 않게 물줄기와 함께 오색지구로 향한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등선대와 닿은 하늘이 파랗게 열렸다. 하늘바라기로 잠시 앉아 물 한 모금에 행복해하는 사이 어느새 계곡을 타고 한줄기 바람이 지나가며 하늘의 푸르름을 가슴에 담아주고 간다.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탄산약수인 오색약수

망대암산 너머로 하루가 저물기 때문이었을까 붉은 빛으로 물든 계곡을 유심히 바라보니 제2 오색약수터다. 위치상으로는 온정골과 주전골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 곳은 사람들로부터 주전골로 개방돼 새로이 인기를 얻었던 곳이었지만 지난 수해로 인해 자취마저 감춘 듯하다.

약수터에서 10여분을 더 내려가자 하늘이 탁 트인 성국사의 앞마당이 보이고 보물 제497호인 오색리 삼층석탑이 절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성국사의 본디 이름은 오색석사로 신라말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하였던 절이다. 오색석사의 한 승려가 우연히 반석 위로 솟는 물맛을 본 뒤 신비하다 하여 절의 이름을 따라 오색약수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그 앞마당에서 솟는 샘물을 한 모금 들이키자 맑은 기운과 함께 역사의 향기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단출한 산행이 끝나가고 있는 오색지구로 나서자 오색약수터가 보인다. 여기서 얻어낸 탄산약수를 한 모금 들이켜니 쇠못을 여러 달 바가지에 담가놨다 먹는 기분이랄까, 입맛에는 영 맞질 않는다. 입안 가득 느껴지는 쇳물 맛을 어쩌지 못해 배낭을 뒤적여 두어달 묵은 사탕 한 개를 입에 물으니 그나마 달달한 것이 입맛을 돋워준다.

※ 산행 안내

■ 교통

양양~오색약수 (오색약수에서 흘림골 입구까지 택시 1인당 1만원)

■ 등산로

흘림골~등선대~십이폭포~제2약수터~성국사~오색지구 (3시간30분)

오색약수~성국사~용소폭포~44번 지방도 (3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