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에 등장하는 음식을 정리한 책이 '금병매 음식보(飮食譜)'라는 책인데, 거기 실린 메뉴 가운데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고우영 화백이 그린 만화 '금병매'에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천하장사 무송의 형이면서 사람 좋은 무대가 파는 떡의 이름이 췌이빙(炊餠)인데, 본디 그 떡의 이름은 쩡빙(蒸餠)이었다. 이름이 바뀐 이유는 송나라 인종의 본명이 쩡(楨)으로 그 임금의 이름자와 발음이 같다고 해서 이른바 피휘(避諱 - 임금의 이름에 포함된 한자 혹은 발음이 같은 한자를 피하도록 하는 관례)를 하느라 췌이빙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금병매 음식보'가 소개하는 음식, 곧 '금병매'에 수록된 메뉴는 100여 종을 넘어 헤아린다. 그 안에는 정식 요리가 40종, 밀가루로 만든 주식 혹은 간식류 32종, 과일류 19종, 술 10종, 차(茶) 7종 등이다. 이들 음식은 당시 주인공 서문경(西門慶) 일가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이 평소 즐긴 메뉴다. '금병매'는 비록 서문경의 호사스럽고 황음한 생활을 그렸다고 해서 천박한 '에로소설'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적도 있지만, 소설이 쓰인 명나라 당시 도시 상인의 생활상을 핍진하게 묘사했다고 해서 거꾸로 '리얼리즘의 높은 봉우리'라는 평판도 동시에 얻고 있는 작품이다.
금병매의 배경을 이루는 도시는 린칭(臨淸). 이번 산둥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다. 그렇다면 왜 린칭을 가야 하는가. 작가인 소소생(笑笑生)이 '금병매'를 세상에 내놓을 무렵인 17세기 초반 무렵의 린칭은 인구가 '근백만'에 가까운, 당시로서는 이른바 메갈로폴리스 수준의 도시였다. 베이징(北京)과 항저우(杭州)를 잇는 거대한 물길인 경항대운하의 주요한 중간 경유지로, 경항운하에 설치된 다섯 군데의 차오관(金少關 - 운송되는 물품의 세금을 걷는 관서) 가운데서 조정에 바치는 조세 수입이 제일 많은 곳이었다. 서문경은 그 운하를 통해 전국 각지의 약재와 비단 등을 거래하는 장사꾼이었고 린칭은 경항운하 최대의 물류 중심지였다. 물류가 모이는 대도회라면 당연히 음식도 그리로 몰려드는 법. 내륙 수로는 각 지방의 메뉴를 그리로 실어 날라 전파하는 경로였다. 린칭에 자장면의 뿌리를 이루는 단서가 과연 있는가.
아울러 마오쩌뚱(毛澤東)도 혀를 내두른 중국의 괴짜 사상가 량수밍(梁漱溟)이 서(序)를 붙일 정도로 평판이 높은 음식 이야기책인 '노자미'(老滋味 - 옛맛을 찾아서)라는 책 가운데 '린칭과 금병매'라는 짤막한 글 속에서 저자인 저우지엔뚜안(周簡段)은 '금병매'의 여러 판본 가운데 '사화본'(詞話本)이라는 판본에 등장하는 면식(국수와 빵) 종류만도 55종으로, 그 중 자장면과 온면이야말로 당시의 린칭 사람들이 즐겨 먹던 면식이었다는 구절이 눈을 찔러왔기 때문이다. 만일 '금병매'에 자장면이 등장한다면, 자장면의 뿌리치고는 제법 오래지 않은가. '사화본'이 세상에 빛을 본 것이 17세기 초반이니 한국에서 자장면 100주년 운운하는 시점으로부터 200여 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금병매'에 실려 있다면 그 자장면을 자장면의 원조라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르거나 위험하지만 그래도 먼 조상이 될 자격은 얼마든지 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화본'을 검색해보니 '炸醬麵'(자장면)이라는 단어는 찾아지지 않는 게다. 이건 어인 영문인가. 당시 린칭 사람들이 자장면을 즐겨 먹었다는 저우지엔뚜안이 날조거나 허구란 말인가. 서문을 적어준 량수밍이라고 하면 중국철학사에서 '한 사상'하는 인물인데, 그가 서문을 적은 '노자미'마저 허언을 늘어놓았단 말인가. 자장면과 나란히 금병매에 등장한다는 그 온면, 우리가 냉면집에 가서 냉면 대신 먹은 그 국수는 '금병매' 제96회에 그 이름을 이렇게 올리고 있다.
"이리하여 그들은 구수한 음식냄새가 풍기는 자그마한 술집으로 들어가 상에 마주앉더니 심부름꾼을 불렀다.(중략)주전자에는 감람주를 부어왔다. 그들은 작은 잔은 쓰지 않고 사기 옹배기에 부어 마셔댔다. 후림아가 묻는다. '경제아우, 자넨 국수를 들겠나 아니면 밥을 들겠나?' 그러자 심부름꾼이 '국수는 온도(溫淘)이고, 밥은 쌀밥입니다'하니 진경제가, '전 국수를 들겠어요' 라고 한다. 이윽고 국수 세 사발이 올라왔다. 후림아가 한 그릇을 들고 진경제가 두 그릇을 먹었다."
진경제는 서문경의 사위로 서문경이 죽고 집안은 몰락하여 신세가 말이 아닌 형편이고, 후림아는 진경제와 한때 거지굴에서 지내던 사내. 심부름꾼이 온도라고 한 구절은 무엇인가. 淘라는 글자는 우리로 치면 쌀을 일다는 뜻. 모래에서 사금을 일어낼 때도 쓰는 한자다. 말하자면 온도란 국수를 뜨거운 물에 헹구어 건져낸 국수인 것이다. 아니면 삶은 국수를 뜨거운 국물에 말아내면 그것이 온면인 것이고. 그런데 그 주변에 자장면이라는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검색의 '수사선상'에 올라온 것이 이름도 기괴한 음식이었다. '금병매' 제79회에 등장하는 '스시앙티엔장과지아'(十香甛醬瓜茄)라는 발음하기 영 거추장스런 짠지류의 메뉴다. 뜻을 대강 풀면 오이(瓜)와 가지(茄)를 춘장에 담가 지를 만든, 우리로 치면 밑반찬쯤 되는 게다. 한 가지 망외의 소득을 건진 것은, 어쨌든 '금병매'에 춘장이 등장한다는 점. 거기에 더하여, 린칭의 지메이장위안(濟美醬園)이라는 간장 공장은 지금부터 200여 년 전 청나라 건륭제가 린칭에 들렀을 때 그 집에서 만든 푸루(腐乳 - 발효 두부의 일종)의 맛을 보고 반했다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거기서 '티엔장과'(甛醬瓜 - 오이 따위를 춘장에 담가 절인 짠지)를 만든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뒤져낸 것이다. 티엔장과를 만들면 티엔장(춘장)을 만들 수밖에 없을 터. 그렇다면 웨이하이의 스하이 춘장 공장보다 100여 년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번 산둥행에 오르면서 린칭을 행선지에 집어넣은 까닭은 과연 거기서 200년 된 춘장의 본포를 혹시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때 떠오른 말이 '못 먹어도 고(go)'였다. 스톱할 수 없지…. 암! 일천 킬로 떨어진 지난(濟南)까지 왔는데 거기서 일백오십 킬로밖에 안 떨어진 린칭에 아니 가보면 어떡하리. 하여 다음 호에는 린칭으로 '고' 한 이야기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