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체 문화를 지켜온 사람들
이 마을의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능성구씨라는 단일 집성촌으로서 공동체문화를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마을 입구의 보호수는 500년 넘은 수령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신앙을 담은 당산목이자 주민의 쉼터로서 구심점 역할을 해 왔고, 건너편 산은 '거무래산'이라 하는데 산에 올라가 땔나무조차 베지 않을 정도로 신령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 마을을 세우고 노래하고 빛낸 인물
하열미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이자 유명 인사는 능성부원군 구치관(具致寬)일 것이다. 구치관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이율(而栗), 목사를 지낸 구양(具揚)의 아들이다. 그의 후손(충렬공파에서 다양하게 분화)들이 500년 넘게 마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마을을 세운 실제 입향조에 해당한다. 그는 1434년(세종 16)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른 뒤 예문관검열에서 우의정 등을 거쳐 1466년(세조 12) 영의정에 이르렀다. 사후 충렬(忠烈)이란 시호를 하사받았다. 마을 앞 곤지암천 절벽에 백인대(百인臺)라는 정자가 있는데, 하열미 출신으로 조선중기 인물인 구문찬(具文粲)이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강론을 나누던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의 빼어난 풍광을 읊조린 인사로는 구한말 문인으로 이름을 날린 구학서(具學書)를 꼽을 수 있다. 그가 남긴 '열미의 십육경가(十六景歌)'에서 '호덕청풍 불어오고 정봉위에 꽃이 피니 이때좋다 벗님네야 거주속객(擧酒屬客) 놀러가세…/찬우물에 버들곱고 승주골에 잎이되어 천우교목 꾀꼬리는 벗을불러 노래하고…/백인고대 높이올라 예계단풍 바라보니 형형색색 붉은잎은 가을경치 자랑하네…"라며 마을의 풍광을 노래했다.
# 마을 안과 밖에 똬리를 튼 도시화의 상징물
개발과 도시화의 바람은 마을 안과 밖을 크게 바꾸었다. 좁았던 도로는 넓어졌고, 흙먼지 길은 포장되고, 중소공장의 건립에다 마을 안쪽까지 5층 규모의 연립주택과 대형 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거기에 2000년대 들어 산업폐기물 소각장은 물론 각종 공장도 마을 한 자리를 차지하며 연기를 내뿜는다. 마을 인근에는 골프장이 사방팔방으로 둘러싸고 있다. 곤지암리의 중부컨트리클럽, 상오향리의 경기CC, 이선리의 남촌CC와 그린힐CC, 건업리의 이스트밸리클럽 등 반경 3~5㎞ 안에 5개의 골프장이 그 위세를 과시한다. 수도권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주말이면 부킹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 까닭인지 마을 앞 쪽 길은 계속 넓어지고 고급 승용차들의 행렬은 계속 이어진다.
하열미 마을의 자랑거리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마을 앞쪽 산자락에 있는 백인대와 인근의 빼어난 경관이었다. 정자 밑의 강가는 여름에서 가을철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되던 휴식처였다. 지금은 바로 앞에 돼지 도축장이 들어서고 악취가 심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지역으로 바뀐지 오래이다. 마을 앞 도로변을 끼고 건립된 소각장 운영과 관련하여 마을주민들과 크고 작은 갈등이 그치지 않고 있다. 2007년 5월경에 소각장에서 쓰는 화공약품이 빗물 등과 섞이면서 마을 전체를 뒤덮는 연기와 악취가 발생하여 공중파 뉴스에도 보도될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 문제와 관련해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마을 도로변을 끼고 공사 중이던 아파트 건립 공사는 건설회사의 부도로 중단된 채 타워크레인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만간 공사는 재개되고 언젠가 수십 층의 위세를 드러내며 새롭게 안주인을 맞이할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지하수로 생활하던 곳이었지만, 상수도의 전면적 보급은 물론 도로망 확충에다 앞서 언급한 골프장도 지천에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전원 주거지로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 조상신이시여!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십시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이곳은 고즈넉한 농촌 풍경을 간직한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개발과 도시화라는 광풍에 몸살을 앓고 있다.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마을의 외관이 크게 바뀌는 과정에서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던 구치관의 신도비가 2008년 8월, 현재의 묘역 아래쪽으로 이전한 바 있다.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조용하고 넉넉한 인심을 자랑했던 하열미 마을에서는 2009년들어 불상사가 잇따라 일어났다. 이에 능성구씨 종중에서는 마을 입구 당산목(보호수)에 제수를 마련하여 10월경에 고유제를 지낼 예정이다. 조상의 은덕과 뿌리를 향한 경외감을 드러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로움을 바라는 지극한 정성으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마을을 만들고 가꾸면서 삶을 영위해 왔다. 그 삶은 각 지역마다 문화라는 그릇에 다양한 정서를 담아 생성, 축적, 변화, 발전, 소멸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각 마을의 삶을 비추는 망원경과 현미경은 이제 경인일보 지면상에서 잠시 그 작동을 멈출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삶의 역동성은 여전히 진행형일 것이고.
글/주혁 광주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 jooh44@dreamwiz.com
사진/조형기 편집위원 hyungphot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