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일본 요코하마/김창훈기자] 도시재생에서 공공기관의 역할은 중요하다.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원활한 재생을 위해 주민들과 협의하며 사업을 총감독하는 것이 공공의 임무다. 공공이 명확한 목표 설정과 함께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부을 때 도시의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는 증거는 옆 나라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 항구의 미래, 요코하마
한때는 요코하마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노래 '블루나이트 요코하마' 정도 밖에 없었다.
일본의 수도 도쿄와 딱 붙어있어 항상 2인자일 수밖에 없는 도시. 인구는 도쿄에 이어 일본 도시 중 2위지만 요코하마는 언제나 도쿄의 그늘이었다.
도시 자체가 도쿄에서 밀려난 이들이 하나 둘 몰려들며 확대, 일본내에서도 도쿄의 위성도시쯤으로 여겨졌던 낙후한 곳이었다.
그래서 요코하마는 더욱 인천시와 닮은 꼴이다. 요코하마는 인천보다 앞선 지난 1859년 개항, 올해로 개항 150주년을 맞은 개항장이자 근대 건축물의 보고다.
이런 요코하마가 이제는 아시아, 아니 전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매력적인 도시로 부상했다.
요코하마의 독특한 개성은 중심부인 간나이지구 및 항구와 접한 야마시타공원, 그리고 미나토미라이(みなとみらい) 지구에서 절정을 이룬다.
'항구의 미래'로 해석 가능한 미나토미라이는 요코하마시의 '미나토미라이21' 마스터플랜에 의해 체계적으로 개발된 지역이다.
요코하마는 도시 전체의 스카이라인이 바다쪽으로 갈수록 단계적으로 낮아지도록 유도했고, 이는 미나토미라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국제여객터미널은 건물 지붕이 거대한 해상공원으로 설계된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물이다.
요코하마시는 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디자인 모티브로 바다와 항구를 채용했다.
다리와 항만·도로같은 토목시설부터 표지판·벤치·가로등·맨홀뚜껑 등 작은 시설물들까지 모두 공공디자인의 영역에서 다뤘다.
깨끗한 미관을 위해 항구 근처의 건물들은 간판이 항구를 향하지 않게 설치하도록 했다. 항구 주변은 지구별로 구분해 각각 다른 색을 사용하게 했고, 항구와 접한 건축물들에는 흰색 등 밝은 톤의 색을 쓰게 했다. 건축선을 후퇴시켜서 화단과 보행자 공간을 넓혔고, 시 전체 안내판에는 그림과 메시지가 혼합된 '픽토그램(Pictogram)'과 영어를 병기했다.
여기에 과거의 현대적인 해석도 공공디자인의 범주다. 미나토미라이 랜드마크빌딩 옆의 독(Dock)도 그렇다.
행정기관이 협정을 맺어 민간 참여를 유도한 것도 요코하마 공공디자인의 특징이다. 간나이지구의 마차도(馬車道)는 민간 주도로 건물과 조형물 등을 갈색과 검정색, 흰색으로 통일했다.
마차도 가로등은 지금도 개항 당시 사용했던 일본 최초의 가스등이다. 가스 요금은 주변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디자인 도시로 우뚝 선 요코하마에는 연간 4천50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 문화예술의 힘, 가나자와(金澤)
이시카와현에는 전통 유물을 전시하는 현립박물관이 이미 존재, 21세기 미술관은 철저하게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 작품들에 승부를 걸었다.
결과는 대성공. 인구 45만명에 불과한 가나자와지만 21세기 미술관에만 연간 150만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몰려들고 있다.
이시카와현의 주도인 가나자와는 이전까지 전통 공예와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 정도로만 알려졌었다.
현대미술의 성공을 점치기 힘든 상황에서 21세기 미술관은 가나자와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여기에 앞서 세워진 '가나자와 시민예술촌'과 '창작의 숲'까지 더해지며 가나자와는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창조도시(The Creative City)'로 거듭났다.
오바 요시이 가나자와학원대학 교수는 "외국의 선진 예술이 가나자와로 직접 들어오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고, 그 고민의 산물이 바로 21세기 미술관"이라며 "일본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지만 관은 재정을 보조하고, 운영은 민간이 하는 것이 가나자와의 특징이다. 문화예술로 도시를 부흥시키겠다는 야마데 시장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 인터뷰 / 쿠니요시 나오유키 요코하마 디자인 담당
그리고 그 뒤에는 별 볼일 없는 항구도시를 공공디자인 '메카'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한 공무원의 의지가 있었다. 쿠니요시 나오유키가 그 주인공. 쿠니요시씨는 지난 1971년부터 올해까지 무려 38년간 다른 부서 이동없이 오로지 디자인만 맡고 있다. 시장이 4명이나 바뀌었지만 그의 소속은 변하지 않고 계속 도시정비국이다.
쿠니요시씨는 "원래는 건축을 했지만 뛰어난 건물이 도시 전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며 도시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공무원이어도 승진같은 것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우리나라를 7차례나 방문해 요코하마의 사례를 발표, 국내에서도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유명인사다. 우리의 도시재생에 대해 그는 "원래 가지고 있던 특수성을 살리는 것이 관건이다. 모든 지역에서 똑같이 유럽이나 일본 스타일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면서 "요코하마의 경우 도시디자인 목표가 '올드 앤 뉴(Old & New)', 즉 역사와 미래의 공존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적인 정서가 분출되는 도시재생을 기대한다"며 "중요한 것은 행정기관의 일방적인 추진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