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일본 도쿄/김창훈기자] 뉴타운사업을 포함한 도시재생은 21세기 개발사업의 핵심 키워드다. 낙후한 구도심들이 즐비한 경기도와 인천시에도 도시재생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막중한 과제다. 하지만 주거환경 개선과 경제활성화란 도시 재생의 이상 뒤에는 지난 1월 발생한 '용산참사'가 나타내듯 세입자 문제같은 갈등 요인도 도사리고 있다.
경인일보는 한국언론재단 광주사무소가 지난 6월 14일부터 21일까지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진행한 '문화예술에 의한 도시재생과 공공디자인' 연수를 통해 일본의 도시재생 노하우를 소개한다. 도시재생 선진국 일본이 수확한 열매는 비슷한 양상으로 도시재생을 추진중인 우리에게도 교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최대 도시였던 도쿄도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20세기 후반 홍콩과 상하이·베이징 등이 무섭게 발전하는 동안 찬란했던 도쿄의 도심은 낙후됐고, 도시재생의 필요성은 커져갔다.
■ 시간과의 승부, 롯폰기힐스
여섯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있어 롯폰기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곳은 도쿄의 전형적인 고급 주택가였다.
1980년대 중반 이 롯폰기 재생에 부동산개발회사인 모리빌딩(주)가 뛰어들었고, 2003년 롯폰기는 '롯폰기힐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업부지 8만4천여㎡에는 53층인 모리빌딩 본사를 중심으로 공동주택과 호텔, 문화·상업시설, 방송국 등이 들어섰다.
사업계획 수립 당시 롯폰기힐스 연간 예상 방문객은 2천만명이었지만 이보다 두 배 많은 약 4천만명이 롯폰기힐스로 몰려들었고, 완성 뒤 6년이 지난 현재도 이 숫자가 유지되고 있다. 롯폰기힐스에서 일·주거·쇼핑·문화·여가·연애 등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롯폰기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시공 기간은 3년에 불과했어도 원주민 300여가구를 설득하는데 14년이 걸렸다. 14년의 마지막 1년은 끝까지 재개발을 거부한 한 가구와의 소송으로 지나갔다.
오랜 협의를 거치며 모리빌딩은 롯폰기힐스에 노인들을 위한 저층 아파트를 지어야 했다. 아파트를 원하지 않는 토지 소유주에게는 오피스빌딩의 일부를 떼어주는 방법도 썼다. 오피스를 분양하지 않고 모두 임대하는 롯폰기힐스 사업 방식과 비교하면 대단한 혜택이다. 또한 자영업을 했던 세입자들에게는 공사 중에 임시로 영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사업이 끝난 뒤에는 생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전철역 옆 상점가로 입점을 유도했다.
■ 협의의 결정체, 마루노우치
지난 1894년 미쓰비시가 개발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비즈니스 지역으로, 일본 전체 GDP의 약 2%가 이곳에서 창출된다.
마루노우치 재생은 1988년 이 지역 건물주 104명이 재개발협의회를 구성하며 시작됐다. 협의회는 근무자와 관광객 등 모두가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각 건물들의 재개발 초기부터 관여했다. 그 결과 신축된 건물들의 지하공간이 전부 연결됐다. 일본 최초로 지하주차장도 모두 이어져 각 건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설계 단계부터 건물 높이를 서로서로 맞춰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여기에 공개공지가 확실하게 보장됐고, 재개발시 건축선을 후퇴시켜 보행자들의 공간이 넓어졌다. 보존가치가 있는 근대 건축물들은 그대로 두고 그 위로 새 건물들이 세워졌다. 제2차 세계대전때 훼손된 도쿄역 복원과 역광장 조성 비용도 정부가 아닌 협의회가 낸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얻는 대신 막대한 사업비를 대신 부담하기로 협의했기 때문이다.
마루노우치는 단시간에 후딱 해치운 도시재생이 아니다. 협의회가 노후 건물 재건축 때마다 자신들만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며 조금씩 바꿔간 점진적인 재생이다.
재개발협의회 사무국 긴조 차장은 "행정권한이 없는 민간 기업들이 협의회를 만들자 처음에는 관심을 주지 않던 도쿄도(道)와 치요타구(區) 등이 동참, 10년전부터는 민관협력 체계가 구축됐다"며 "최고의 도시를 만들기 위한 협의회의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 토지수용은 ?
개발사업시 우리나라와 일본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토지수용이다. 우리에게는 흔하디 흔한 토지 수용이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우리의 토지 강제수용 근거인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같은 법도 없다. 공익사업이라도 개인의 소유권은 철저하게 보장해 주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곳이 바로 일본이다.
따라서 재개발·재건축 등을 포함한 모든 도시재생사업의 전제는 토지주들과의 합의다. 이들이 '노(No)'하면 사업 자체를 할 수 없다.
한 예가 도쿄의 관문인 나리타 국제공항이다. 활주로가 포화상태라 오래전부터 확장공사를 계획했지만 공사 구간에 살던 노부부때문에 진척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도쿄권 3천400만명이 고생을 해도 노부부의 땅을 강제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롯폰기힐스와 역시 재개발지구인 시오도메를 연결하는 도시계획도로도 그렇다. 약 50년전 결정된 도로지만 도로 구간 사유지 소유자가 땅을 팔지 않아 아직도 개통이 안된 상태다. 이 도로는 최근에야 착공이 결정됐다. 사업자가 20년간 땅 주인과 협의한 끝에 드디어 합의에 도달했다고 한다.
토지 수용이 없는 일본이기에 도쿄같은 대도시에는 이런 도시계획 도로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일본의 사례가 정답은 아니다. 협의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용산참사를 겪은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인터뷰 / 박희윤 모리빌딩(주) 기획부장
박희윤(42) 모리빌딩(주) 기획부장은 회사 안에서 몇 안되는 한국인 중 한 명이다. 일본 사회에서 '부장'이 갖는 무게에 걸맞게 그는 도시재생 전문가로 통한다. 박 부장은 도시재생의 핵심을 '자석이론'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거점시설이 자석의 극과 같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즉, 거점시설인 N극과 S극을 잘 만들면 둘이 서로 끌어당기면서 사람들을 모아 효과적인 도시재생, 나아가 침체된 지역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부장은 "어디에 어떤 N극과 S극을 만드느냐가 관건"이라며 "실패한 많은 도시들은 극을 하나밖에 만들지 못했거나 두 개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이를 산 속같은 외곽에 만들어 자장효과를 일으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롯폰기힐스와 또다른 대규모 도시재생지역인 '도쿄미드타운', 그리고 인근의 '신 국립미술관'을 '아트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면서 "이런 세 극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도쿄 구도심의 활성화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N극과 S극은 만드는 것만큼 관리도 중요하다"며 "도시재생에서 개발의 끝은 동시에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한다. 도시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지속적인 관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