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릉은 한국인의 자연경관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산의 능선들이 겹겹이 둘러 싸여 능역의 중층성을 갖게 하고 있으며 폐쇄성과 안정성을 확보한 공간속에 외부와 유리된 곳에 입지 했다 (사진은 동구릉중 원릉).
[경인일보=글/이창환 상지영서대학 조경과 교수 55hansong@naver.com]

# 도성 십리밖 백리 안에 조성된 조선왕릉

우리나라의 왕릉은 통일신라시대에 기본 틀이 갖춰지면서 고려·조선시대로 이어졌으나 그 독창적인 모습은 조선시대 왕릉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조선왕릉은 도성을 중심으로 10리(4㎞) 밖 100리(40㎞) 이내의 길지(吉地)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나라의 능제가 일정한 곳에 족분릉(族墳陵)형식을 취하는 패턴과 달리 조선왕릉은 수도권 주변 길지에 흩어져 경기도 일원에 수 백만㎡에 달하는 천연 숲과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 정자각.

조선왕릉은 일반인들의 무덤과 달리 신성시 여겨졌기에 그 주변은 깨끗한 숲이 됐고 성스러운 녹지공간이 됐다. 우리가 잘 아는 광릉수목원, 고양의 서오릉, 화성의 융건릉, 여주의 영릉 등이 좋은 예이다. 이제 경기도는 세계인이 함께 가꾸고 보전해야할 역사경관림을 확보했다. 물론 일제강점기와 국가적 혼란기에 훼손된 능역이 원래대로 보존됐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녹지가 조성됐을 것이다.

조선왕릉은 산의 능선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강한 폐쇄성과 안정성, 중층성을 확보한 공간, 외부와 유리된 공간에 입지해 있다. 그러나 왕릉의 능침(봉분)만은 능역 앞의 시계가 넓게 확보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즉 주종산(主宗山)을 뒤로하고 좌우가 주종산 보다 낮은 산록으로 둘러싸이며, 앞이 트이고 주종산의 능선이 내려오는 끝부분 약간의 요(凸)한 곳에 능침이 있는 것이다.

▲ 왕릉 난간석과 병풍석.

# 자연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능침공간

조선왕릉은 자연환경의 일부로 여겨지는 풍수사상과 한국인의 자연관에 따라 이루어졌다. 따라서 조선의 왕릉은 그 형식이 단릉, 쌍릉, 합장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릉, 삼연릉 등 많은 형식으로 나타난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단독으로 조성한 것을 단릉(單陵)이라 하며, 대표적 릉은 태조의 건원릉이다. 한 언덕의 평평하게 조성한 곳에 하나의 곡장(曲墻)으로 둘러 왕과 왕비의 봉분을 우왕좌비(右王左妃:우측에 왕, 좌측에 왕비)의 원칙에 의해 쌍분으로 한 것을 쌍릉(雙陵)이라한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헌릉(獻陵)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것을 합장릉(合葬陵)이라 하는데 세종과 소헌왕후의 영릉(英陵)이 대표적이다. 하나의 정자각 뒤로 한줄기의 용맥에서 나누어진 다른 줄기의 언덕에 별도의 봉분과 상설(석물)을 배치한 형태를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라 하며,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光陵)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때도 우왕좌비의 원칙에 따라 우측 언덕에 왕의 능침을, 좌측에 왕비의 능침을 조성했다.

▲ 정자각 동계중 신계(神階)와 어계(御階).

또한 왕과 왕비의 능이 같은 언덕에 위아래로 왕상하비(王上下妃) 형태로 조성한 것은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 한다. 이것은 효종과 인선왕후의 영릉(寧陵)이 대표적이다. 한 언덕에 왕과 왕비 그리고 계비의 봉분을 나란히 배치하고 곡장을 두른 형태를 삼연릉(三緣陵)이라 하며, 동구릉 내에 있는 현종과 효현왕후 그리고 효정왕후의 경릉(景陵)이 유일하다. 끝으로 왕과 왕비 그리고 계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것을 동봉삼실릉(同封三室陵)이라 하는데 순종과 원비 순명황후, 계비 순정황후의 유릉(裕陵)이 그것이다.

▲ 능침 공간중 문인공간(오른쪽)과 무인공간.

# 유교의 예법에 따른 공간구성

조선시대 능역의 공간구성은 제향시 돌아가신 선조와 참배자와의 만남의 공간인 정자각을 중심으로 3단계 공간으로 구분되는 바, 참배객을 위한 속세의 공간인 진입공간, 죽은자와 참배자가 만나서 예(禮)를 올리는 만남의 공간인 제향공간, 위쪽으로 선왕의 공간인 성역공간으로 대별된다. 즉 '진입공간-제례(향)공간-(전이공간)-능침공간'이라는 기본적인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입공간에는 외홍살문, 재실, 연지, 화소(火巢), 금천교 등이 있으며,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참도, 수복방, 수라간, 정자각 등이 있다. 전이공간에는 예감, 소전대, 비각, 산신석, 신도(神道) 등이 배치돼 있다. 이중 소전대는 조선초기의 능인 건원릉과 헌릉에만 있다. 그리고 능역의 중심공간으로 신성시되는 능침공간에는 봉분을 중심으로 양석(羊石)과 호석(虎石)이 배치돼 있으며, 봉분 전면에는 혼유석(魂遊石), 망주석, 장명등, 문·무인석, 마석(馬石), 곡장 등이 있다. 이밖에 향탄산(香炭山), 능원사찰 등이 능역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능역의 공간구성요소는 능을 향하여 진입하는 동선을 중심축으로 하여 배치돼 있다.

▲ 장명등
■ 진입공간=외금천교-연지-외홍살문-재실(齋室)-금천교(禁川橋)-홍살문(紅箭門)을 잇는 능역의 참배로 형태는 능역내의 명당수가 흐르는 개천을 따라 구불구불한 곡선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참배객이 능원에 진입시 성스러운 공간인 능침공간이 직선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며 능원공간의 신성함과 엄숙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 제향공간=참배를 위한 주공간이며, 사자와 생자가 제례의식때 만나는 공간으로 반속세의 공간이다. 정자각과 홍살문을 잇는 선을 따라 참배로가 2~3단으로 구분돼 있다. 제례의 시작인 판위(板位)를 지나 참도(參道)의 양옆에는 수라방, 수복방이 설치돼 있다. 참도의 구성 형태는 종묘, 사직과 더불어 직선의 형태를 이루며, 제의식은 동남쪽에서 시작해 서북쪽에서 끝나게 돼 있는데 동남에서의 시작은 탄생의 의미를 나타내며 서북쪽은 끝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방위적 질서체계이다.

제향공간의 중심시설인 정자각은 정청과 배위청으로 나누어지며 이 두 건물의 합치된 모습이 한문의 정(丁)자 형태를 갖추었다 하여 '정자각(丁字閣)'이라 한다. 정자각은 일반적으로 맞배지붕이다. 수복방과 수라간은 참도를 향해 서로 마주하여 배치됐으며 정면 3간, 측면 1간의 규모이다.


■ 능침공간=왕릉의 핵심으로 봉분의 좌우 뒷면 3면에 곡담이 둘러져 있으며, 그 주변에는 소나무(도래솔)가 둘러싸여 있어 능의 위요성(圍繞性)을 강조하고 있다. 능침공간의 주요시설은 봉분이다. 봉분은 원형이며, 방위를 나타내는 12병풍석 또는 12지간의 그림과 글자 등이 표시되어 있다. 능침공간은 가로방향으로 장대석을 설치해 공간을 3단으로 나누고 있다. 봉분이 가장 위쪽에 있으며 죽은 자의 침전기능을 한다. 능상(陵上)이라고도 한다. 다음 단은 중계(中階)라 하며 문인의 공간으로 문인석(文人石)과 마석이 있다. 중계의 가운데는 장명등이 배치돼 있다. 철종의 예릉은 장명등이 하계의 앞으로 배치된 것이 특이하다. 3번째 공간은 하계로 무인석(武人石)이 마석과 함께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이 능침공간은 오직 선왕의 공간이며 산자의 접근이 엄격히 제한됐다.

▲ 능역의 참배로는 참배객이 진입시 성스러운 능침공간이 직선적으로 보이지않게 하였으며 이는 능원공간의 신성함과 엄숙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사진은 목릉입구).

또한 능원에서의 시설물 배치축은 유교의 위계성에 따라 능침(봉분)→장명등→정자각→홍살문의 순서로 능상과 능하로 이어지며 직선 축을 이루고 있다. 만약 능역의 규모가 적합지 않은 곳은 조영방식을 달리 하며 자연지형에 적합한 구부러진 축을 이루기도 한다.



사진/조형기 편집위원hyungphot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