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서 텐트밖으로 빠져나와 하늘을 보니 별빛만 가득한 하늘이지만 안나푸르나의 정상부근은 여전히 구름에 가려있다. 아마도 많은 눈이 내렸고 내리고 있으리라.
정상으로 출발하기 위해 평소보다 빨리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스텝들의 움직임에 많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 식당텐트 주변으로 모여들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이지만 각자 해야할 일에 집중하기 위해 벌써부터 분주하기 시작하는데 KBS 촬영팀은 비상체제에 돌입한 모양이다. 카메라를 점검하고 오은선대장의 출발전 모습을 담기 위해 오대장의 텐트앞에 미리 카메라를 설치하고 대기하는 중이다.
이미 밝아진 안나푸르나의 정상을 바라보던 오대장이 "아마도 많은 눈으로 인해 눈을 헤쳐나가는 것도 큰일이 될 듯해요. 힘이 많이 들겠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안나푸르나를 봤을때 깜짝 놀랐을 정도니까요."라며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섰다. "동민아 기상청 예보는 확인해 뒀니?" 오대장의 말에 백동민씨가 "네! 어제의 예보대로 4일 이후에 기후변화가 예상된대요" 백동민씨가 미리 확인해둔 기상예보에 대해 말한다.
그사이 라마제단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베이스캠프를 감싼다. 출발하기 전 향을 피우고 쌀가루를 뿌리는 의식을 준비하는 듯 하다.
이윽고 셀파들도 자신들의 장비를 배낭에 넣으며 출발준비를 서두르며 산소통과 레귤레이터를 점검한다. 오은선 대장이 "셀파들은 산소를 마시면서 등반을 하기 때문에 저를 기다리지 않고 가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무산소다 보니 숨이 차서 힘든데도 자기들만 간다니까요."라고 말했던 때가 생각이 나는 부분이다.
어젯밤에도 등반과 관련한 회의가 열렸다. 기후변화로 일정 또한 바꿀 수 밖에 없기 때문인데 기존의 캠프1, 2, 3를 차례로 밟고 오르는 순서를 상황에 따라 배제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결론이 났다.
결국 셀파와 오대장의 단독등반으로 결정이 난 것으로 등반루트상의 변수 여부에 따라 일정의 변화를 줄 모양이다. 원정등반은 이런저런 일들로 변수가 많은 것이 등반만큼이나 힘들다. 자신만 잘해서도 안되며 한팀이 조화롭게 움직여야 즐겁고 완성도 높은 등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봤을때 오대장의 스타일은 여러사람과 함께 움직이기 보단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등반스타일이 14좌를 완성하게 한 원동력이란 생각이 든다. 기존의 캠프를 무시하고 변형으로 오를 수 있는 자신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인 등반노선을 추구하는 그녀만의 스타일이 금번의 안나푸르나 원정등반에서도 빛을 발하여 여성최초 히말라야14좌 완등이란 위업을 무탈하게 이루어 질것으로 기대한다.
오은선 대장의 대학산악연맹 동기인 이영주(44)씨가 캠프1까지 동행하기로 하여 함께 출발한 시각은 오전 7시 5분. 보도국의 카메라가 메모리얼힐까지 따라가며 그녀가 출발하는 모습을 담고 그 이후 전진캠프인 ABC까지는 영상제작국의 홍성준(40) 감독과 기획제작국의 김형운(45) PD가 동행하기로 한다. 정화영(44) 영상제작국 PD는 미리 ABC에서 하루를 보내고 캠프1에서 합류한 뒤 이후 일정을 함께 하기로 한다. 베이스캠프엔 방송송출 준비와 기사전송을 위해 남은 취재진이 이후의 일정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상황을 주시중이다.
후발대도 내일과 모레에 걸쳐 전진캠프를 거쳐 캠프 1,2로 진출할 예정인지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북면의 등반로에는 한국인 원정대원들로 북적일 것이다. 안나푸르나에 도전장을 내민 4팀 모두 좋은 결과로 하산을 마칠 수 있도록 기원해본다.
안나푸르나 원정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두명의 셀파
1. 다와 옹추 (37)
고향인 마칼루를 떠나 히말라야의 산군을 두루 돌아다니며 9년째 셀파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14좌 완등자인 한왕용대장과 오은선대장을 좋아하며 함께 등반한 것이 여러번 있었을 정도로 한국원정대와는 각별하다. 현재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의 산 중금번 안나푸르나 까지 포함하면 10개 를 등정하게 되어 14좌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다.
네팔인 최초의 14좌 완등의 셀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안나푸르나 정상에도 꼭 서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으며 16세의 나이에 해외원정대의 키친 보이로 산행을 시작하여 텐징 노르게이 등산학교를 거쳤으나 글자를 읽거나 쓰는 것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다.
셀파중의 최고 리더인 '사다' 역할을 맡고 있으며 지난주 코오롱 김재수 원정대의 카메라맨이 다쳤을 때에도 셀파들을 이끌고 구조작업을 진두지휘 하는 등 셀파들 간에도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다.
2. 페마 체링 (39)
다와 옹추와는 동서지간으로 다와 옹추의 손아래 동서다. 다와 옹추와 마찬가지로 마칼루에서 태어나 10여년째 셀파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8,000미터 봉우리 16번 올랐으며 7개의 8,000미터 이상의 산을 올랐다 한다. 말 없이 순진한 미소가 일품인 페마는 키친보이들이 해야할 일도 손수 거들며 원정대원들과 친화력을 높인다. 산을 오르는 행위가 돈벌이로 이용되는것에 대해 현재 네팔이란 나라가 내세울 만한 것이 그것뿐이어서 신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산행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 한다. 또한 다와 옹추와 함께 14좌의 꿈을 이뤘으면 한다고 앞으로 많은 도움을 부탁한다며 수줍게 미소를 짓는다.
현재 네팔에는 수 없는 등반셀파들이 존재를 하고 해외에서 오는 원정대를 도와 정상으로 가는 길에 앞장을 선다. 하지만 체계화 되지않은 등산교육으로 인해 기술부족으로 사고를 당하거나 기상악화 등 등반상황에 따른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네팔에서 셀파라는 직업은 위험하지만 고소득을 보장 받는 직종이다. 현재 네팔의 물가를 비교해 보았을때 이들의 소득수준은 상위계층에 속한다. 그러나 등반이 사시사철 내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몸시즌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소득이 없어 고향마을로 가 있거나 트레킹 가이드를 하는 것으로 소득의 일정부분을 메운다.
국내의 원정대도 이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한국으로 초청하여 관광을 시켜 주기도 하였으며 셀파가정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임금을 주지 않거나 폭언, 폭행을 하였던 사례도 있었으니 사람 만나기 나름이란 말이 그대로 적용된 경우다.
또한 셀파라고 하여 다 같은 셀파가 아니어서 등반에 도움이 못되거나 심지어 등반에 방해가 되는 셀파도 있어서 원정대에게 있어서 셀파라는 존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되는 셈이다.
어찌 되었건 고산등반을 위해서는 함께해야할 동반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원정대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 8,000 미터의 고봉들을 넘나들었던 덕에 좋은 추억과 자신의 이력에 도움이 되었다면 한 번쯤 돌다보며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우리에게 그들의 손길이 필요하였듯이 이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줄 차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