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공 사당 정문 입구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마을 노인네들.
[경인일보=글·사진/유중하 연세대 중문학과 교수]제갈량고리기념관을 뒤로 하고 먼지를 피우며 다시 시골길을 달려 되돌아 나가는데 손 회장이 차를 세운다. "어이, 왕뽀. 차 좀 세워봐. 저거를 찍어야겠네"하면서 가리키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길가에 서 있는 연자방아다. 차에서 내려 디카에 담는데 곡물 가루가 방아 위에 묻어있는 폼이 지금도 사용하는 연자방아인 게다. 옳다. 제갈량 고향의 연자방아. 그거 말이 되지 않는가. 자장면의 麵이라는 한자가 무슨 뜻인가. 麵은 麥+面이지만 그 面의 본 한자는 실은 이다. 그리고 그 은 다시 +人, 곧 사람의 얼굴을 가린다는 뜻이다. 우리가 밀가루라고 할때 그 본 한자는 면이다. 그 면이 麵으로 되었다가 다시 간체자로 面이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밀을 빻아 가루를 내서 만들어내는 국수는 미엔탸오(面條)라 부르고 국수와 만두 등 밀가루 음식을 통틀어 면식(面食) 혹은 그냥 면(面)으로 표기한다.

연자방아를 담은 한 장의 사진으로 만두 이야기의 위안을 삼고 진짜로 본바닥 만두를 먹기 위해 찾은 곳은 이난(沂南)의 한 식당. 점심때를 약간 넘긴 시각인데도 홀 안은 제법 손님들로 왁자한 걸로 미루어 음식 맛은 그럴 듯한가 보다. 화장실에 들러 볼 일을 보고 손을 씻고 나오니 왕뽀 씨가 이미 바이지우(白酒·고량주)의 병마개를 따놓았다. 말 그대로 '대낮부터 시작'이다. '량차이'(凉菜·찬 요리, 곧 우리 식으로 하면 마른안주)가 두어 접시 식탁에 올라온다. 무청을 말린 것을 두부와 섞어 양념으로 무친, 말하자면 그 동네 향토 량차이는 맛이 그야말로 '부추오'(不錯·정말 괜찮다). 입에 한 젓가락 넣고 맛을 보면서 내가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자, 식당을 잘 골랐다고 손 회장이 아우인 왕뽀를 칭찬한다.

▲ 지엔빙을 싸서 먹는 과정. 지엔빙은 우리말로는 전병이고 일본어로는 센베이다. 같은 한자인데 음식도 다르고 발음도 다르다.

다시 상 위로 '러차이'(熱菜·량차이의 반대로 불로 요리한 요리)가 층층이 쌓여 올려진다. 상 위로 린이의 자오파이차이(招牌菜·유명 메뉴)인 차오지(炒鷄·닭볶음)가 올라오자 '신차이 라이러, 짜이이뻬이'(새 요리가 올라왔으니 다시 한 잔). 이렇게 두 잔 째로 넘어가는데 드디어 주식이자 그날의 주인공인 만두가 올라온다. 지엔쟈오즈(煎餃子), 우리 식으로 하면 군만두다. 그런데 생김새가 문자 그대로 가관(可觀·볼만한 모양새)이다. 만두를 프라이팬에 그냥 구운 것이 아니라, 묽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프라이팬에 바르듯이 넓적하게 편 다음 그 위에 만두를 얹어 구워낸 것. 그 모양새를 볼작시면, 접시 위의 만두가 각기 따로 떨어져 노는 모양새가 아니라 얇게 구운 밀가루판 위에 얹혀져 있다. 게다가 접시에 올려 낼 때도 밀가루 붙인 판이 겉으로 향하게 올려져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생김새가 마치 꽃이 핀듯한 모양새를 방불케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입에서 '야, 이건 꽃이 핀 것 같은데'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다시 이상한 모양새의 음식이 상 위로 올라오자 손 회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이게 뭔지 알아요?" 만두가 꽃처럼 생겨먹었다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내 입 안으로 삼켜지고 말았고, 왕뽀 씨가 대신 대답을 한다. "이게 바로 린이 명물 지엔빙(煎餠)이에요. 한 번 먹어봐요." 이름하여 지엔빙 옆에는 굵은 대파의 흰 뿌리가 시꺼먼 장하고 같이 놓인다. 손 회장이 조폭같은 손으로 지엔빙이라는 놈을 두 장을 겹쳐 손바닥 위에 얹더니 상위에 놓인 요리를 젓가락으로 그 위에 아무렇게나 얹은 다음 다시 파를 얹고 이어서 장을 바른다. 내가 이게 춘장인가 하고 묻자 왕뽀씨가 "아뇨. 두반장이에요." 춘장이면 어떻고 두반장이면 어떤가. 이미 바이주는 큰 잔으로 석잔짼데. 손 회장이 지엔빙을, 우리로 치면 김밥말듯이 둘둘 말아 우적 한 입 베어먹는다. "먹어 봐요. 맛이 괜찮아요"하여 나도 김밥말이, 아니 전병말이에 돌입하여 전병 두 장을 겹쳐 손바닥에 깐 다음 총빠오양로우(蔥爆羊肉·얇게 썬 양고기를 대파와 볶은 것)을 얹고 이어서 다시 손가락만큼 굵은 흰 대파를 얹고 다시 두반장을 젓가락으로 찍어다 칠한 다음 둘둘 말아서 입에다 넣기 전에 다시 한 모금 한 다음 우적우적….

▲ 바로 놓여진 군만두. 꽃무늬를 떠올리게 한다.

점심을 마치고 이어지는 행선지는 린이의 강태공 사당이다. 운전은 왕뽀의 안사람이 맡았고, 도중에 길 안내를 위해 강씨 종친 한 분이 차로 마중을 나왔다. 다시 길을 이리저리 돌아 강태공 사당에 이르니 동네 노인네들이 사당 입구에서 장기를 두고 있다. 정겨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디카로 찰칵하고는 사당 안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사당 앞 뜰에서 닭 두어 마리가 풀속을 뒤져 모이를 찾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디카 셔터를 누르자 왕뽀의 안사람이 말을 건넨다. "닭이 신기한가 보네요." 내 대답이 "저 닭도 그냥 닭이 아니거든요"이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다시 돋보기를 끼고 지도를 펼치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밍다오(鷄鳴島)라는 섬이 어디더라." 웨이하이 앞바다에 조그만 섬 지밍다오. 이름을 풀면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섬이라는 뜻이다. 섬 이름을 닭 울음소리로 했는가. 그 섬에 닭이 많아서일까. 아니다. 그 섬에서 닭이 울면 바다 건너 산둥반도에서도 들린다는 뜻일게다. 말하자면 지척이라는 뜻. 닭은 언제 우는가. 새벽을 맞아 여명을 알리는 동방의 기상나팔이 닭이 아닌가. 산둥의 둥(東)과 연결지어지는 코드에 얹힌 닭인 것이다.

이 닭이 다시 고사성어에 얹히면서 나온 이야기가 바로 맹상군의 '계명구도'일테다. 어디 그 뿐인가. 공자가 가장 든든하게 여겼던 제자인 자로(子路)는 본디 노나라 취푸(曲府) 인근의 사수(泗水) 출신의 '조폭'이었다. 조폭답게 복장도 요란해서 머리에 쓰는 관에 수탉의 꽁지 털을 꽂는 패션으로 폼을 잡았단다. 제나라의 경공은 투계를 좋아해서 자신이 기르는 수탉의 깃털에는 겨자를 발라놓고 상대방 수탉이 쪼면 겨자의 매운맛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옛적 제나라의 풍성한 광경을 묘사할 때 나오는 '사기'의 문구가 사람들이 시장을 오가면 어깨가 서로 닿았고 투계하는 곳에는 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고 했던가. 말하자면 닭에도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 아니면 문화콘텐츠가 감추어져 있는게다.

나는 지도의 웨이하이 앞바다의 계명도를 가리켜 보이며 손 회장에게 "이 섬이 바로 계명도인데 다음 웨이하이에 들르면 여기를 한 번 가봅시다"고 하자, 손 회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왜냐고 묻는다. 나는 베이징의 한국문화원장을 지내다가 한국으로 복직한 P형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 '영종도에서 닭이 울면 산둥까지 들린다'는 말을 전하자 "에이, 농담 마슈"라면서 손 회장이 손사래를 치는거다. 내 대답이 "아니, 정말이라니까. 농담인지 아닌지 10년 뒤에 두고 봅시다"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