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글·사진/유중하 연세대 중문학과 교수]지난 4월10일 자장면 세 곱빼기를 먹은 이야기로부터 첫 회를 출발한 자장면의 뿌리를 찾는 여행,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개월여의 일정을 마무리할 때가 온 듯하다. 세 차례의 중국 여행을 통해 베이징, 상하이, 옌타이, 웨이하이, 지난, 린칭, 취푸, 린이, 소우광, 웨이산 등 적지 않은 도시를 떠돌던 어느 날 로밍(roaming)해간 핸드폰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로밍이라는 말을 되새겼다. 로밍은 사전의 뜻풀이에 의하면 정처 없이 떠돈다는 뜻이지만 그냥 내 식으로 '싸'돌아다닌다고 풀이하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문득 눈앞에 어른거리는 전경 하나. 선추안(深玔)에서 시작된 중국의 개방은 연안을 따라 북상한다. 상하이를 거쳤고 앞으로 칭다오와 웨이하이와 옌타이를 지나게 될 것이다. 그 동선을 따라 도시의 1인당 가처분 소득 1만달러 시대가 북상 중이다. 아울러 싸돌아다닌 산둥도 성 전체가 1인당 1만달러 시대에 불원간 진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구 1억에 한반도의 덩치만한 땅 덩어리를 가진 산둥은 모르긴 몰라도 아마 한반도 경제의 덩치와 맞먹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날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다고 보면 그리 틀리지 않다. 현금의 인천으로부터 뱃길로 하루 거리, 인천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인 이곳은 앞으로 더욱 당겨질 것이며, 황해 바다를 잇는 카페리는 물론 근자에 신문지상을 장식한 '한중해저터널'도 어쩌면 공상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전경이 어른거린 것은 인천대교를 지나면서다. 인천의 랜드마크인 인천대교는 송도와 영종도를 잇는 다리다. 그런데 이 다리보다 더욱 거대한 다리가 인천에 있다. 그것은 인천에 사는 산둥 출신의 화교다. 그들로 하여금 한반도와 산둥반도를 잇게 한다면…. 20세기 내내 한국에서는 이국인으로, 대만에서는 한국인으로, 대륙에서는 대만인으로 찬밥 신세 취급을 당해온 그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기구하다는 말 그 자체이다. 산둥에서 건너와 일제와 6·25를 겪고 분단된 나라에 사는 동안, 그들은 이산과 분단과 재산침탈을 겹쳐서 겪은 존재들이다. 이들의 신세와 처지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본 연재의 모두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20세기 華僑를 21세기에는 '華橋'로 바꾼다면….

그런데 이런 문자 바꾸기 놀이는 중국인들에게는 그리 낯선 장난이 아니다. 이를테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을 맡았던 장이머우(張藝謀)는 영화 '영웅'에서 칼싸움을 맹인 악사의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사위로 바꾼다. 칼싸움이 아니라 칼춤인 것. 이런 콘셉트는 서양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武(싸움)와 舞(춤)가 같은 발음으로 소리 나는 현상을 이용한, 오랜 전통을 가진 중국 특유의 문자놀이다. 20세기 華僑→21세기 '華橋'로의 변신도 바로 이 점에서 훈수를 받은 것. 그렇게 되면 인천은 쌍다리를 갖춘 도시가 된다. 영종도와 송도를 잇는 인천대교와 한반도와 산둥을 잇는 '華橋'라는 두 개의 다리를 가진 도시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대만 출신 작가 바이시엔용(白先勇)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My Rice Noodle Shop'(花橋榮記)이다. 꿰이린(桂林)에서 타이완으로 건너간 실향민 쌀국수 장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고향인 꿰이린의 '花橋'(꽃 다리)라는 이름의 다리를 배경으로 한다. 그 쌀국수 집의 손님들은 물론 거의가 꿰이린 출신으로 각기 고향을 등진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다. 이들이 먹는 쌀국수인 미펀(米粉)은 타이완과 대륙의 고향을 링크시켜주는 실과 같은 몫을 맡은 음식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자장면의 면발을 늘이는 장면이 떠오른다. 수타면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중국 음식점에 가면 면발을 늘이는 이들을 가리켜 '라미엔'(拉麵)이라 부른다. 반죽을 양 손으로 늘이기 적절한 1.2m 길이로 먼저 가닥을 지은 다음 거기에 약간의 기름을 바른다. 그걸 두 팔로 늘이면서 꼬고, 꼬면서 늘이기를 열서너 차례하면…. 기름막이 밀가루 반죽에 입혀진 면발이 마치 나노(10-9) 굵기로 새끼줄처럼 꼬아진다. 그 면발은 얼핏 보면 한 가닥이지만 실은 셀 수 없이 많은 가닥이 하나로 꼬아진 실 뭉치나 다름없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흰 밀가루를 뿌리고 나서 본격적인 가닥 짓기를 열두어 차례…. 자장면 한 그릇에 담긴 면에는 2의 30제곱 m를 넘게 헤아리는 가는 실이 감추어져 있다. 자장면의 마술이다. 자장면 한 그릇에 담긴 가는 면의 실타래는 한반도와 산둥을 잇고도 남는 길이가 된다. 이런 기술 혹은 마술의 원산지가 바로 황해 바다 건너 옌타이의 푸산(福山)이다. 옌타이 사람들은 '라미엔' 기술의 발상지가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화교 가운데 많은 수가 바로 그곳 푸산 혹은 바로 인근의 무핑(牟平)을 중심으로 하는 일대의 쟈오둥(膠東) 출신이다.

하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림은 이걸로 그치지 않는다. 뭔가 동심원처럼 생긴 그림. 식탁 위로 요리가 올려진 '좐반'(轉盤·둥근 유리판)이 빙빙거리면서 돈다. 자장면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짬뽕이 그리고 그 옆에는 우동이 올려져 있다. 여름이라면 냉면을 올려도 안 될 것 없다. 이 때 우동이 자신의 원적을 일본이라고 하고, 짬뽕이 자신의 원적을 나가사키라고 하면서 아우성을 친다. 냉면도 원적을 한국이라고 하면서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국적을 따지는 것은 20세기식이다. 우동은 본디 중국의 웬뚠(온)이 일본으로 건너가 우동이 되었다. 그 일본식 우동이 중국으로 다시 건너가면서 우둥(烏冬)이 되기도 했다. 이주(localization)와 재이주(relocalization)를 겪으면서 우동의 재료나 맛도 달라졌다. 유식한 말로 하이브리드, 한자어로는 혼종(混種). 식탁에 올려진 메뉴의 이름으로 비유하자면 짬뽕이 된 것이다. 우리가 중국음식점에서 먹는 국수 종류야말로 이른바 다문화(multiculture) 현상의 표징이다. 이런 하이브리드와는 달리 또 하나의 그림이 숨어 있다. 그것은 허브다. 인천을 비롯한 한반도의 화교들은 중국에서는 자장면을 날라 왔고 일본에서는 우동과 짬뽕을, 그걸로 모자라서 '다꾸앙'도 날라왔다. 말하자면 한국의 중국음식점 식탁이야말로 한중일의 허브인 것이다.

이제 자장면을 찾아 나선 여정을 마치면서 변변치 못한 '썰'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리는 것은 자장면을 드시되, '화교'라는 존재를 한번쯤 떠올리면서 검은 국수를 목으로 넘겨보시라는 것이다. 한번쯤 목이 메어 화교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이른바 '톨레랑스'를 그들에게 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일본인들의 재일 동포 차별에 대해 낯을 들고 이야기를 할 자격을 갖출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자격이야말로 모름지기, 21세기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국격'(國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