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때 일본에 강제 징용된 한국 민간인의 연금기록이 처음으로 대량 확인됨으로써 이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한.일 양국의 외교 현안으로 부상했다.

   일본 정부는 연금기록으로 강제 노역이 확인된 일부 한국인에게 말그대로 일본의 껌 값도 안되는 수준인 '99엔'을 지급해 한국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따라서 독도 문제에 이어 징용 민간인에 대한 보상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부가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과거사 문제 정리와 향후 한일 외교관계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도 공식 문서로 징용자의 연금기록이 확인된 만큼 자체 보상과 별도로 일본 정부에 '납득할만한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 4천700여명 연금기록 확인 = 한국 정부에 징용 피해자로 연금기록 확인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16만명이다.

   우리 정부는 이 가운데 1차로 4만명에 대한 조사를 일본에 요청했고, 이번에 연금기록이 확인된 사람은 4천727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나머지 징용 민간인의 연금기록 확인 요청도 서둘 것으로 예상된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일제에 의해 징용된 한국인은 모두 7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연금기록 확인을 신청하지 않은 징용자에 대한 확인작업도 이뤄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금기록 확인을 요청한 16만명 가운데 90% 정도는 강제 노역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확인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4년 일본 강점기의 징병.징용 실태 조사를 위한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한뒤 2005년부터 일본과 전시 징용자의 후생연금 등을 둘러싼 협의를 벌여왔다.

   한국은 징용 민간인의 연금 명단 제공을 여러차례 요구했으나 일본은 "연금 기록에 출신지와 징용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며 회피해왔다.

   그러나 2007년 일본 사회보험청이 후생연금기록 전체의 확인 작업을 위해 옛 연금대장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하면서 이름과 성별,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가입여부와 연금번호를 간단하게 검색할 수 있게 돼 한국이 요구한 데이터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 日 연금탈퇴 보상 '99엔' = 문제는 연금기록이 확인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다.

   우리 정부는 2008년부터 징용이 확인된 민간인 본인에게는 80만원의 의료지원금, 유족에게는 2천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연금기록이 확인된 피해자도 정부의 지원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연금기록 자체로 징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관건은 일본 정부의 보상이다. 일본은 후생연금보험법에 의해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내 기업과 광산 등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한국으로 귀국한 사람들에게 연금탈퇴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나 지급액이 껌 값 수준도 안 돼 당사자들은 물론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일본 사회보험청은 이달 중순 광주시에 살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78)를 포함한 여성 7명(징용 당시 13∼14세로 일본 나고야시 미쓰비시중공업 등에서 강제 노역했음)에 대해 99엔의 연금탈퇴수당을 지급했으나 어이없는 액수 때문에 당사자들이 수령을 거부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일본 정부는 현행 후생연금보험법상 당시의 화폐가치로 연금탈퇴수당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동안의 물가 상승이나 금리, 화폐 가치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전혀 설득력 없는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이번에 징용이 확인된 한국인들이 모두 연금탈퇴 수당 대상자가 될지도 불투명하다. 일본 사회보험청은 "각 개인의 연금 가입 기간은 조사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 하토야마 '友愛' 시험대 = 사실 연금기록이 확인된 강제 노역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보상'이 아니라 당연히 일본 정부가 지급해야할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들은 강제 노역에 시달리면서 급여에서 보험금이 원천 징수됐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연금 탈퇴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99엔'은 답이 아니다. 지난 65년여간의 물가인상과 금리, 화폐가치 변화 등을 현실에 맞게 고려하고, 여기에 보상 위로금을 더해 합리적인 보상 수준이 결정돼야 한다.

   이를 위해 하토야마 정부는 현행 후생연금보험법이 문제가 된다면 당장 개정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일본에 나머지 강제 징용자 연금기록 확인과 적절한 보상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토야마 정부는 출범 이후 우애(友愛)와 공생(共生)을 모토로한 '동아시아공동체'구상을 밝혀왔다. "과거를 직시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최근 고교의 지리.역사 해설서에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 땅으로 규정한 자민당 정권의 입장을 그대로 유지해 민주당 정권이 지향하는 '우애와 공생'이 말뿐이며 전 정권과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시 징용된 후생연금 가입자는 한국인 외에 중국인과 대만인 등 아시아인들이 많다. 따라서 이번에 연금 기록이 확인된 한국인 징용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일본 민주당 정권의 '과거사 정리'의 출발점이자 하토야마 총리가 내세운 '우애'의 새로운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