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아이티 점령' 논란 속에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티에 병력을 본격 배치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해병대 병력 2천200명을 포함 아이티와 연안 지역에 1만1천명의 병력을 전개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현재 아이티에서 활동하는 평화유지군 병력 9천명 외에 3천500명을 추가로 파병하기로 결의했다.

   현재까지 아이티 정부가 집계한 사망자수는 7만5천명으로 시신 발굴과 구조작업이 진행되면서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군 대통령궁 주변 장악
AP, AF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블랙호크 헬리콥터 편대에 나눠탄 미군 제82 공중강습사단 병력 100여명은 19일(현지시각) 강진으로 붕괴한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궁 주변에 내려 이 일대를 장악했다.

   완전무장한 미군 병력은 수천명의 난민들이 텐트를 치고 거주하고 있는 대통령궁에 내려 수색을 마친 뒤, 대통령궁 옆의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이곳에서 물과 음식 등 생필품을 현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빌 스미스 상사는 AFP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병원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이티 정부와 협조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교전수칙이 있지만, 현재는 인도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병대 상륙..미군 전개병력 1만1천명
일단의 미 해병대원들도 아이티 남서부 해안에 상륙했다.

   미 국방부는 해병대 22사단이 포르토프랭스 서쪽 해안에 상륙 거점을 마련했다면서 아이티에 급파한 2천200명의 해병대 병력 가운데 800명을 상륙시켰다고 밝혔다.

   이로써 현재 1만1천여명의 미군 병력이 아이티에 배치됐으며, 일부는 육지에서 실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나머지 병력은 연안의 함선에 대기한 채 후방 지원작업을 벌이고 있다.

   함선에 남은 병력은 헬리콥터와 수륙양용 상륙선을 통해 정수장치와 식수 및 연료 탱크, 발전기, 의약품, 구호 차량 등을 육지로 옮길 계획을 마련 중이다.

   또한 미군은 지진으로 일부가 파괴된 포르토프랭스공항의 물동량이 한계치에 이르렀다고 판단, 구호품 수송을 위해 아이티 남부도시 자크멜에 활주로를 마련하는 한편, 도미니카공화국의 산 이시드로의 공항 시설을 이용할 계획이다.

   한편,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구호작전 참여를 위해 병력을 이미 파병했거나 아이티로 이동시키고 있다.

   캐나다는 2척의 군함과 2천명의 병력을 포르토프랭스 남부의 자크멜, 레오간 등에 파병했으며, 이탈리아, 스페인, 베네수엘라 등이 병력을 아이티 재건을 돕기 위해 해군 함대를 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점령군' 논란..사르코지는 "美와 긴밀히 협조"
미국은 이번 아이티 임무가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전개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대대적이고도 신속한 미군의 구호작전을 '점령군'처럼 보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대통령궁 인근의 난민캠프에 있던 피오도르 데상주는 AP와 인터뷰에서 "대통령궁은 우리의 얼굴이고 자존심인데 미군이 이곳을 점령해 버렸다"고 말했다.

   미국이 아이티의 강진 피해를 돕기 위해 대규모 병력 파병 계획을 밝히면서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미국이 카리브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 일어왔다.

   대표적 반미론자인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이 구호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티를 점령하려고 한다며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비난한 바 있다.

   미군이 포르토프랭스 공항의 관제권을 접수한 것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던 프랑스는 미국과 갈등 관계로 비치는 것을 우려, 사르코지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AP, AFP에 따르면 19일 프랑스의 라 레위니옹 섬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르코지는 아이티의 구호와 재건을 위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보여준 신속한 행동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알랭 주아양데 협력담당 국무장관은 전날 한 라디오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역할은 아이티를 돕는 것이지 점령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날을 세운 바 있다..

   ◇ 안보리 3천500명 추가파병 결의
아이티의 치안 불안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유엔은 평화유지군의 추가 파병을 결의했다.

   안전보장이사회는 19일 아이티의 구호활동 지원과 치안 유지를 위해 1천500명의 경찰력과 2천명의 평화유지군 등 총 3천500명의 병력 추가 파병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추가 파병안은 아이티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제안한 것이다.

   현재 아이티에는 9천여명의 군과 경찰인력이 유엔 아이티안정화지원단(MINUSTAH)으로 활동 중이며, 이날 추가 파병안이 통과됨으로써 MINUSTAH의 병력 규모는 총 1만2천651명으로 증강됐다.

   이들은 앞으로 6개월간 주둔하면서 인도적 지원 물자의 호송 작업 등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15개 안보리 이사국들은 결의에서 아이티 사태에 대해 가장 깊은 유감과 위로를 보내면서, "아이티의 상황이 긴박하며 질서 회복과 재건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아이티 정부와 국민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의안이 통과된 뒤 반 총장은 "신속한 안보리의 결정에 감사한다"며 "이는 전세계가 아이티와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능한 한 빨리 병력을 증강시켜 필요한 모든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최대한 빨리 병력 증강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달 안보리 의장국을 맡은 중국의 장예수이(張業遂) 유엔대사는 아이티의 치안 부재와 지원 물자 배포 차질 등을 거론하며 "현재 아이티의 구조.구호 작업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유엔이 아이티 구조.구호 작업에서 선도적인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들이 유엔군에 합류하게 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도미니카 공화국이 800명의 전투부대 파견계획을 밝혀 왔다고 유엔 관계자들은 전했다.

   지진 발생 일주일이 지난 19일 현재 구호품을 기다리다 지친 시민들이 약탈자로 변해가고 있으며, 일부 시민들은 떼를 지어 시내의 붕괴한 가게들에서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무력 진압되는 등 아이티의 치안은 크게 불안한 상태다.

   ◇사망자 7만5천명
아이티 정부는 지진 사태로 사망이 확인된 사람들만 7만5천명으로 집계됐다고 19일 발표했다.

   아이티 내무부는 이어 이번 지진으로 25만명이 다치고 수백만명이 거처를 잃었다면서 이재민을 위한 숙소와 식량, 식수, 의약품 등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