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문성호기자]"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을 주어줘야 하고 국가에서 제공하지 못한 기회를 기성세대들이 마련해줘야 합니다."

개질제아스콘(PG-CONE), 반강성컬러콘(로하스콘) 등을 제조 공급하며, LED를 이용한 교량 난간 및 가드레일 등 교통안전시설물 전문업체인 (주)수지로드텍을 운영하는 김덕선(44) 대표이사는 '나눔의 행복'을 외치는 '행복 바이러스' 전도사로 불린다.

'행복 바이러스' 전도사라는 애칭에 김 대표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도움덕에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며 "이젠 제가 받았던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차례일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인생을 바꾼 백혈병

2001년 부인의 대장암에 이어 불과 2년만인 2003년 가을 김 대표는 암 보험 가입을 위해 건강검진을 받다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평소 잇몸에 피가 자주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정밀검사 뒤 의사가 진단한 병명은 '급성전골수성백혈병'.

드라마나 소설속의 이야기가 김 대표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벌써 7년전 일이지만 당시 김 대표는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아내와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란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고 전했다.

그는 "병원에 있는 동안 모교인 수원고 학생과 동문들이 10여명씩 네 차례나 찾아와 단체로 헌혈을 해줬다"며 "주위에서 나를 위해 애쓰는 걸 보며 절망하지 않고 생에 대한 의지를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했던 1년간의 치료가 끝나자마자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그의 보답이 시작됐다. 우선 피를 나눠준 모교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내놓았다.

지금은 모교 후배들 뿐 아니라 소년소녀가장 등 환경이 어려운 청소년 17명을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연을 맺어 매달 후원금도 보내고 있다. 불경기였던 지난 겨울엔 돈이 말라 직장 생활하는 아내에게 급하게 빌리기도 했지만 한 번도 후원금을 빼먹은 적은 없다.

 
 
▲ 지난해 12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2009 나눔.봉사 가족 초청 오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기념촬영하는 김덕선 대표(왼쪽부터 첫번째)와 이회견군(아홉번째).

■시차가 없는 효도와 봉사


김 대표는 항암 치료 받을때의 힘든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잊지 못할 아픔은 바로 어머니에게 투병 기간 동안 짜증을 냈던 일이다.

그는 "페트병 한 병 정도의 항암치료제를 체내에 흡수시키고 다섯 시간 정도 지나면 몸이 뜨게되는 느낌을 받는데 공중에 붕 뜨듯이 실제로 몸이 움직인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제 몸을 정성껏 눌러주시며 가라앉혀 주셨다"며 "안간힘을 쓰고 버티던 순간에도 어머니의 손길이 닿으면 자제가 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위대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몸이 아프니깐 어머니에게 짜증만 냈었다"며 "그 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무척 죄송할 뿐"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모교 후배들에게 강의를 할 때면 김 대표는 "효도를 하는 것엔 시차를 두지 말아야 된다"며 "효도처럼 봉사도 돈 벌어서 하겠다고 생각하면은 이미 때를 놓친 것"이라는 조언을 꼭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새로운 기부문화 중용장학재단


김 대표는 "가수 김장훈이 보증금 5천만원짜리 월세집에 살면서도 9년간 무려 30억원을 기부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뻐근했다"며 "내가 조금씩 하고 있는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몇 해 전부터 새로운 형태의 기부를 구상하고 있다. 아예 회사에 '사회환원비'라는 지출 항목을 만들어 매년 연 매출액의 1%를 떼 기부하는 것이다. 순이익이 아닌 매출 규모에 따른 기부라 미리 회사 직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이해를 구해야 했다.

"자신들에게 연말 상여금으로 지급될 수도 있는 돈인데도 흔쾌히 승낙해 준 직원들에게 감사한다"는 김 대표는 "일부에선 오해의 시선을 던질지도 모르지만 많이 가져서 기부를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내가 받은 도움에 대한 보답이자,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다"고 말했다.

 
 

■행복 바이러스 전파

2년 전부터 지원했던 고교 후배 이회견(19) 군이 올해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 입학하게 되는 등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바르게 자라는 모습을 볼때면 자신의 일처럼 기쁘고 뿌듯함을 느낀다는 김 대표도 자신이 7년 전 겪었던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받는 어린 현이를 만날 때마다 한쪽 가슴이 미어진다.

그는 "7년 전 제가 아플 때는 어머니가 계셨지만 현이에게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만 계신다"며 "엄마라는 자리가 비어있는 현이가 아직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모습에서 내 자신의 부족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1명에서 2명, 2명에서 다시 4명으로 행복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 나갈 것으로 기대를 한다.

얼마 전에는 9년동안 함께 일해 왔던 여직원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해 회사를 그만 두고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서는 모습과 회사 남자 직원이 자신의 모습을 보며 몰래 기부활동을 해 왔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행복이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김 대표는 "봉사는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전부"라며 "하지만 일부에서는 돈이 많아서 기부를 한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어 마음이 씁쓸하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또 "봉사를 꼭 돈으로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노약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처럼 작은 실천도 봉사"라며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