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이병철·박세익기자]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자랑, 발보아파크(Balboa Park)는 오는 2015년이면 100주년을 맞는다. 발보아는 태평양을 처음 발견한 스페인 탐험가의 이름이다. 스페인의 풍취를 담은 이 공원은 그만큼 오랜 역사 유산 위에 서있다. 내부 곳곳에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언제나 쉽게 찾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산책로와 다채로운 문화 콘텐츠를 담은 미국내 가장 큰 도심 '종합문화공원'이다.
발보아는 기획된 공원이 아니다. 샌디에이고 다운타운 동북쪽에 있는 4.9㎢의 발보아파크는 1868년 '시립공원(City Park)'에서 출발했다. 1800년대 후반. '발보아파크의 어머니'로 불리는 원예가 케이트 세션스(Kate Sessions) 등 일부 주민들이 멕시코와 인접한 황무지이자 건설자재 등 쓰레기가 뒹굴던 이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현재 서식중인 식물의 65%를 기후가 유사한 지중해 인근에서 가져다 심었다. 당시에는 시의 허가도 없이 아름다운 분수를 만들기도 했다.
1915년에 중앙아메리카를 관통하는 파나마운하의 개통을 기념하는 캘리포니아박람회를 개최하면서, 본격적으로 도심 대공원으로서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당시 박람회를 위해 임시로 지은 건물들은 허물어질 운명이었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군에서 참전 군인을 수용할 건물이 필요하게돼 철거의 운명을 피해 갔다. 이어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주변의 수목들까지 고스란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샌디에이고 시가 운영중인 발보아파크에는 미술관, 루벤플릿과학센터, 자동차박물관, 인류박물관, 1874년에 세워진 자연사박물관 등 줄잡아 15개 주요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서는 1년내내 전시와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덩달아 공원도 어른과 아이들로 들썩인다.
공원내 '샌디에이고동물원'은 800여종의 동물 4천여마리와 식물 6천500여종이 살고있는 세계적인 동물원이다.
발보아파크에서 컸고,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발보아파크 레인저(공원관리인) 킴 듀클로씨는 "이곳에는 보고 즐기고 쉴 거리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며 "연간 방문객 수는 1천300만명을 넘어선다"고 소개했다.
발보아파크 일대는 1977년부터 국가역사경관지구(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돼 건물과 역사 유적에 대한 보호를 받고 있다.
샌디에이고시 공원·여가국 스캇 리스 부국장은 "공원내에서 펼쳐지는 각종 이벤트는 2년전부터 예약을 받아 계획을 짜놓는다. 예측이 가능하니 수익을 내는 방안도 여러 가지로 연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경설계가이기도 한 그는 "발보아파크는 관광객 유입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 둘러본 철도박물관에선 70대의 자원봉사자들이 기차와 기찻길 등 모형을 제작·운용하고 있었다. 캐서린 하제나우어 문화이벤트 담당과장은 "24개 문화창작팀이 공예품을 판매하기 위해 제작 활동을 하고 있고, 철도박물관의 할아버지들 뿐 아니라 공원관리를 맡고 있는 700여명의 해군 장교 등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공원코디네이터의 관리속에 공원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공원 운영은 민간에도 문이 열려 있다. '발보아파크 얼라이언스, 샌디에이고 재단', '시티 뷰티풀(City Beautiful)'과 같은 여러 비영리 민간단체가 식물원·산책로 표지판·가판대 관리·개인모금 등 업무를 분담해 '민·관협치(거버넌스)'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공원의 중앙주차장과 공업지역 일부를 합쳐 도로를 지하화하고, 공원내 차량 통행을 금지하려는 마스터플랜을 실현하기 위해 기부금을 착실히 모으고 있었다. '공청회→현황 분석·연구→공청회→초기 구상→공청회→중간 마스터플랜→공청회…'의 절차를 거쳐 계획을 수립했다. 샌디에이고시는 자체 자산관리팀을 가동해 공원의 부동산 가치 뿐만 아니라, 수목 등을 모두 자산으로 보고 재정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해 스스로 생존하는 공원으로 유지·관리하는데 심혈을 쏟고 있다.
자산관리팀 짐 앨터 팀장은 "장기적으로 공원을 어떻게 재활용하고, 유지하고, 또 그에 따른 예산을 예측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스캇 리스 담당관은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공원을 자신들의 소유라고 느끼는 것이며, 그래야 공원의 생명력이 더욱 길어진다"고 강조했다.
답사에 동행한 문화소통단체 '숨' 차재근 대표는 "공원과 문화가 어떻게 결합·발전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 인터뷰 / '파크 레인저' 킴 듀클로 씨
"시민이 찾지않는 공원 의미 없어"
"어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제일 먼저 온 곳이 바로 발보아파크였습니다. 그 공원에서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공원이 곧 저의 인생입니다!"
발보아파크 '파크 레인저(Park Ranger)' 킴 듀클로(Kim Duclo·사진)씨. 14년간 발보아파크를 지켜온 베테랑 관리요원인 그는 공원에 대해 누구보다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샌디에이고 시청 동료들은 그가 지역의 '유명인사'이자 '상징적인 존재'라고 했다. 그를 보러 일부러 공원에 오는 시민들이 있을 정도였다.
듀클로씨는 공원안에 있는 '환영만찬장(House of Hospitality)' 건물 구석구석의 페인트 칠과 장식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시민의 힘은 위대하다. 엑스포건물 철거 직전에 건물 내 장식재들이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시민이 맨손으로 건물 철거를 막아냈다"며 "그 낡은 건물을 1990대 초반부터 재건축하면서 복구했고, 음향 조절을 위해 천장 마감재도 새로 했다"고 또박또박 힘줘 말했다.
실제 환영만찬장 앞에는 복원 비용을 기부한 이들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조그맣게 내걸려 있었다. 만찬장 곳곳에는 역사의 흔적을 복원하려 애쓴 그들의 노력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미국내 48개주에서 멸종한 동·식물들이 발보아에는 살고 있다"고 자랑한 듀클로씨는 "1년 강수량이 10㎜ 안팎인 샌디에이고에 최근 폭우가 내려 나무 50그루가 유실돼 너무 안타깝다"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주민들이 공원을 사랑하지 않고, 찾지 않고, 즐기지 않는다면 그 공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요? 내가 기뻐서 하는 일이니, 오시는 분들도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듀클로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