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남시 교산동에서 발굴된 건물지. 이 건물지가 백제의 왕궁이었다는 주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경인일보=하남/조영상기자]"BC 6년 현재 하남시 춘궁동 일대를 도읍으로 정하고 '하남위례성'이라고 불렀음. 370년 백제 근초고왕 25년까지 백제의 도읍지였다."(하남시 홈페이지) "서기전 18년 백제 시조 온조왕이 도읍지로 정한 하남위례성의 옛터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지역이다."(성남시 홈페이지)

"BC 6년 위례성(현 서울)에서 서부면 춘궁리(현 하남시)에 도읍을 옮기고 '하남위례성 (河南慰禮城)'이라 불렀음. 370년 근초고왕 25년까지 376년간 백제의 도읍지…."(광주시 홈페이지)

성남·광주·하남이 힘을 합쳐 한성백제 하남위례성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 성남·광주·하남시 통합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통합시의 역사성 정체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하남위례성' 논란에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남위례성 논란은 1990년대 후반 하남시 이성산성 발굴 이후 하남시측이 끈질기게 역사찾기에 나서면서 한국 고대사 학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온 문제다. 아직 주류 사학계에서는 서울 송파구 일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하남위례성이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으나, 최근들어 하남시 춘궁동 일대가 하남위례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 천왕사 목탑지 전경. 이곳에서 황룡사 목탑보다 더 큰 목탑이 2기나 발굴되었다.

■ 사학계, 송파구 일대 도읍지 주장

서울시 송파구 일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백제의 도읍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그 곳에서 다양한 백제 유적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몽촌토성에서는 백제 유물로 추정되는 토기, 돌절구, 낚시바늘, 무기 등과 움집터, 독무덤 등이 출토됐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3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백제시대때 이용한 성이라는 의견이 많다. 지난 10여년간 발굴 조사된 풍납토성이 처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1925년 대홍수때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제 초두 2점과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면서부터다. 몇차례의 발굴이 진행됐지만 1996년 토성 동북쪽 지역 조사에서 백제 전기 것으로 추정되는 집터와 유물이 발견됐다. 이후 개발지역 중심으로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가 진행되며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왕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초석(礎石)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그 설득력에 힘이 빠지고 있다.

 
 
▲ 전방후원분으로 세계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하남시 민둥산 고분.

■ 하남 춘궁동 도읍지 주장

하남시 춘궁동이 하남위례성이었다는 주장은 왕궁의 규모와 최근 발굴이 속속 진행돼온 초대형 유적지들에 의해 힘을 얻고 있다. 춘궁동 도읍지를 주장하는 측이 우선 내세우는 것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삼국시대에 함께 경쟁하던 고구려와 신라의 도읍지와 비교해 그 규모면에서 너무 초라하다는 것이다. 몽촌토성(22만1천100㎡)과 이보다 넓은 풍납토성(56만1천㎡)의 규모는 같은 시기 고구려의 장안성(1천181만4천㎡)이나 신라의 왕경(1천592만2천㎡)에 비하면 너무 작다는 것이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고 급박하게 도읍을 옮긴 공주의 웅진성도 660만㎡가 넘는 것을 보면 동시대 다른 왕성과 비교하기에는 초라한 크기다.

이에 반해 하남시 춘궁동과 교산동 일대에는 최근에도 백제의 도읍지로 추정될만한 유물과 유적들이 발견 또는 발굴되고 있다.

▲ 화강암으로 쌓은 이성산성. 세계 유일한 60도 각도의 석성으로 이곳 정상에서 다양한 형태의 건물지가 발견됐다.

대표적인 유적은 춘궁동 이성산에 있는 이성산성이다. 높이 209m의 포곡형 석축 산성인 이성산성은 면적은 16만여㎡로 한강에 접한 여러 성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중요한 산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난 1986년부터 2003년까지 10여차례 발굴 조사가 이뤄져 장방형, 8, 9, 12각 등의 건물지와 2개소의 저수지, 신앙 유적 등이 발견됐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한 원년(BC18년) 동명묘를 세웠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으며, 이후 나라에 우환이나 왕이 등극한 정월에 왕이 직접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등장하는데 이성산성의 유적지가 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성산 정상에서 나라의 신에 대한 제를 지낼 수 있는 8~9각, 그리고 12각 건물지가 발견된 반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는 아직 이같은 유적지를 찾아내지 못했다.

또다른 유적지는 하남시 춘궁동 왕궁지(터) 남쪽에 위치한 천왕사지(天王寺址)와 동사지(桐寺址)다. 이곳에서는 신라의 황룡사 목탑보다 규모가 더 큰 것으로 추정되는 3개의 목탑지가 발견됐다. 경주 황룡사 목탑의 높이가 83m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큰 규모의 목탑지는 강력한 세력을 가진 국가의 수도임을 추측하는데 무리가 없다.

아울러 하남시에서는 지난 2005년 초대형 고분(古墳)이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가 사학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나서 "하남시의 민둥산 고분은 고분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 고분에 대한 사학계의 관심은 여전하다. 특히 이 고분은 규모가 수백m에 달하는데다가 고분의 형태가 한성백제시대와 시기를 같이 하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어서 실체가 밝혀질 경우 하남위례성 논란을 정리하는데 막대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인터뷰 / 한종섭 (사)백제문화연구회장

곳곳에서 드러나는 백제의 숨결… 식민사학 영향 일방적 외면 섭섭

서울시 양천구의 한 조그만 연구실에서 만난 백제문화연구회 한종섭(67·사진) 회장은 마치 '돈키호테'처럼 보였다.

지난 수십년간 백제의 첫 도읍지를 찾아 오직 '외길' 인생을 산 그의 연구실에는 온통 백제와 관련된 자료들로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학계와 공무원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며 그의 고집스런 주장을 내동댕이쳐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 회장은 "하남시에서 거대한 고대도시 유적이 발견돼도 이성산성을 신라의 성이나 고구려라고 하면서 백제왕도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백제 도읍지와 관련 하남시 일대를 배척하는 현 고고사학 주류계의 판단에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하남 이성산성을 포함한 모든 곳이 백제의 영역이라는 것은 명확하지만 백제의 왕도와 관련 식민사학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학계의 서글픈 현실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하남시 문화재 전문위원이기도 했던 한 회장은 "더 이상 백제왕도 위치에 대한 논란은 종식되었음이 얼마 전 하남시 학술대회에서 다수에 의하여 결론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