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선회기자]"지금이야말로 '다산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산(茶山)에 대해 배우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절대 일류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난 22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오늘날 읽는 다산 정약용의 편지'를 주제로 특강을 펼친 박석무(68) 한국고전번역원장은 "다산의 정신은 어떠한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은 불굴의 정신이며 다산운동이란 한마디로 말해 비리와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열변을 토했다.

박 원장이 다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그의 삶의 이력이 다산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 원장은 대학원 졸업논문으로 다산의 법사상과 법률관에 대해 쓰면서 다산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이때는 다산에 대해 머리로만 이해하는 수준이었다. 가슴으로 다산을 받아들인 것은 그 자신이 사회의 격랑에 휩싸이면서부터였다. 유신반대와 학생운동으로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던 그는 어둡고 불안한 감옥생활에서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손에서 다산 관련서적을 놓지 않았다. 18년 유배생활 속에서 학문을 성숙시킨 다산처럼 그의 다산 연구도 감옥 안에서 영글었던 것. 이때의 결실이 1979년 출간돼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200여년 전 정약용이 척박한 남도 땅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사랑하는 아들과 둘째 형, 그리고 아끼는 제자들에게 보낸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다산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 학연(學淵)과 학유(學游)가 실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엄격하게 격려했어요. 특히 권세가들에게 귀양살이에서 풀려나도록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라고 권유하는 아들에게 다산은 '사소한 일을 가지고 절조를 잃어버려서야 되겠느냐'며 매섭게 질책합니다. 불의와 조금도 타협할 줄 모르는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우리 국민들이 다산의 이런 정신을 배워야 하는 것이에요."

박 원장은 다산에 대해 '세상에 다시 나오기 어려운 불세출의 학자'라고 평하면서도 국민들이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도 살펴주길 당부했다. "다산이 손대지 않은 학문 분야는 사실상 없었고, 손댔다 하면 그 분야에서 정점에 올랐어요. 명실공히 당대 최고의 사상가·정치가·행정가이자 의사·지리학자·과학기술자였죠. 그가 쓴 책만 해도 500권이나 됩니다. 하지만 다산도 세상에 다시 없는 대학자이기 전에 누군가의 엄한 아버지였고, 속정 깊은 동생이었으며, 올바른 스승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