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의정부/최재훈기자]"아저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활짝 웃으며 인사를 던지고는 뛰어들어가는 아이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뛰어들어가는 아이처럼 가볍고 신이 나있다. 지난 9일 오후 의정부시 금오동에 자리잡은 '의정부 나눔공부방' 앞. 허술한 주택들이 늘어선 곳에 자리한 허름한 2층 건물에 공부방을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다. 인근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와 비교되는 동네는 초라하다. 오래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빡빡한 살림을 꾸려가느라 지치고 힘든 이들이다. 하지만 유독 이곳 공부방 앞은 활기가 느껴진다.

삐거덕 거리는 현관문을 열고 2층을 올라가면 신발장에 잘 정돈된 아이들의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문을 열고 공부방을 들어서자 벽과 천장에 각종 상장들이 '주욱' 붙어있는게 한눈에 들어온다.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우루루 일어나 두손을 앞으로 모으고 일제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너무 활기있는 모습에 일순 당황스럽다. 그러자 나눔공부방 시설장인 김흥식(58)씨가 쫓아나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김씨는 지난 2003년부터 이곳 나눔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부인이자 교사인 이은정(52)씨와 함께 경북 울산에서 15년간 보습학원을 운영했던 그들은 50대에 접어들어 아름다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 꽃동네를 찾아왔다. 의정부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꼽히는 금오동 꽃동네는 어려운 가정이 많은 곳이었다. 김씨는 꽃동네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결손가정 아이들과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좋은 밥과 좋은 학습여건, 그리고 다양한 문화활동 기회를 주고 싶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불우한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또 가정 형편이 어렵지 않은 아이들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받고 있는 학교 밖 교육에서 우리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감을 갖도록 해 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은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었다. 많지 않은 돈으로 어렵게 공간을 마련해 공부방을 열었고, 주변의 어려운 가정 아이들을 설득해 일단 시작은 했지만 의욕처럼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툭하면 사고를 일으켰다. 가출, 도벽, 거짓말, 폭행 등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 김씨 부부를 괴롭혔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괴롭고 위태로운 날들이었지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고, 아이들 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킬수록 김씨는 마음을 더욱 굳게 다잡았다.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데 집중했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아이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더니 한 사람씩 책과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거짓말이 줄었고, 사람들 앞에 당당해지고, 스스로 공부를 시작해 성적이 저절로 오르게 되었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변해가던 지난 2007년, 김씨는 여기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공부방 아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김씨의 도전은 바로 공부방 TV 옆에 페트(PET)병으로 만든 작은 저금통을 놓는 것이었다. 이 저금통을 놓고 김씨는 아이들에게 "도움만 받지 말고, 용돈을 모아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했다. 김씨의 제안에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김씨는 아이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없이 공부방 곳곳에 아프리카의 굶는 아이들 사진을 붙였다. 아이들이 아프리카 상황을 물었고 김 교사는 동전 하나로 아프리카 친구들이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하나 둘 용돈을 아끼면서 페트병에 동전을 넣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페트병 저금'은 벌써 3년째를 맞이했다. 한 해에 모이는 돈은 20여만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돈은 아프리카 소말리아 어린이들에게 모기장을 보내는 운동에 사용됐고, 화재로 공부방을 잃은 해송지역아동센터 등에도 전달됐다.

▲ 김흥식 나눔공부방 시설장이 천장을 도배하다시피한 아이들의 상장을 가리키고 있다.

"저금통에 동전이 쌓이는 것을 보며 아이들이 가슴에 새로운 생각을 갖기 시작했어요. 자신만 착해지는 것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남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또 작은 변화에 기뻐하고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이 된다는 중요한 사실도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작고 초라한 저금통이 아이들의 생각과 생활 태도를 바꾸는 매개체가 된 것이지요. 아이들 말대로 '요술 저금통'이 된 것이지요."

이제 저금통은 공부방 아이들 서른아홉명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장 보람을 느끼는 존재가 되었다.

희망이 넘쳐나는 김흥식씨의 나눔공부방은 이제 초등학생 21명, 중학생 10명, 고등학생 8명 등 총 39명의 학생들이 '가족'이 되어있다. 적지 않은 인원이다.

"살림을 꾸려가기가 쉽지 않지요. 지역아동센터로 등록돼 있어 보조금을 받기는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데다가 후원도 부족해 어려움을 해소하지는 못해요. 부족한 부분은 예전에 모아놓은 것으로 보태고 있는 형편이지요. 하지만 부쩍부쩍 성적이 오르고 희망을 키워가는 아이들을 보면 더 큰 어려움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씨 부부의 노력 덕분에 공부방 아이들의 변화는 주변에서도 알아주는 화젯거리가 됐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성적이 평균 10점 이상 오르면 받는 '학력 진보상'을 비롯해 으뜸상, 글짓기상 등 숱한 상장을 받아왔다. 공부방 벽과 천장은 아이들의 상장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과외를 받아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영재교육원에 공부방 아이들이 3명이나 합격했고, 공부 잘해야 간다는 고등학교에도 여러명이 합격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은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금오환경지킴이라는 이름으로 2주에 한번씩 동네 청소에 나서고 있고, 동네 경로잔치에서 장기자랑 공연도 펼쳐 주민들로부터 칭찬도 받았다.

김씨의 부인 이은정씨는 "주변에서 공부방 아이들의 표정이 밝고, 명랑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다고 칭찬할 때는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리 공부방에서 성적이 오른 학생들의 이야기가 소문이 퍼지면서 학원 대신 보내고 싶다는 학부모까지 있을 정도"라고 말하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인 김씨는 "우리 공부방 아이들이 반듯하고 정직하게 자라기를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며 "자신이 진정 소중한 사람임을 언제 어디서라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이라도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