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선회기자]지난 10일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음악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재야 사학자 이이화(73) 선생을 만났다. 사학(史學)이라면 약간 고루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이이화 선생의 집은 세련된 현대 건축디자인이 돋보였다. 집 안에 들어서자 '교유명야당(蛟猶明也堂)'이라 쓴 현판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교·유·명·야는 제가 존경하는 네 분을 지칭합니다. '교'는 허균의 호인 교산(蛟山), '유'는 정약용의 당호인 여유당(與猶堂), '명'은 전봉준의 어릴적 이름이었던 명숙(明叔)에서, 그리고 '야'는 저의 아버지(이달·李達)의 호인 야산(也山)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선생이 존경한다는 네 사람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당대의 불평등한 신분질서에 반기를 들고 백성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꿨으며, 전통적인 학문을 고집하기보다 대중에게 좀 더 다가서는 실용적인 학문 전파에 힘썼다.

▲ 이이화 선생의 자택
이이화 선생도 그들을 쏙 빼닮았다. 젊은 날 민족문화추진회,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동학 100주년 기념단체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그는 전 22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 나라 5천년의 통사를 써내려간 '한국사 이야기'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제가 쓴 역사책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라고 봐요. 첫째, 기존 역사에 매몰되지 않고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항상 살아 있어야 합니다. 늘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고 재해석해야지요. 둘째, 저는 우리나라 역사에 매진하지만 그렇다고 외래사조를 무시하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은 프랑스의 생활사를 중시하는 아날학파 (Annales School)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인권, 평등, 더불어 사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가 있다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귀를 기울일 생각입니다. 셋째, 역사를 기술해 나가는 문체와 스타일에 있다고 봅니다. 제가 대학(서라벌예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거든요. 그래서 기존의 역사학자들보다는 좀 더 대중들이 알아 듣기 쉽고 친근한 문체로 역사를 기술합니다."

▲ 한국사 이야기
이렇게 역사에 대한 가치관과 주관이 뚜렷한 이 선생은 오는 20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매주 목요일 '이이화의 정조 이야기'라는 주제로 수원화성운영재단에서 강연을 펼칠 예정이다.

"정조는 개혁정치를 실천한 성군입니다. 불행한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규장각과 장용영을 설치해 학문과 군사적으로 친위세력을 만들어 정권을 안정시켰으며, 인권을 중시하고 직접 백성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새로운 서울을 꿈꾸며 화성을 축조했지요. 그러나 그는 반대세력에 부딪혀 결국 역사에서 절반의 성공만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그의 '제왕학'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많은 분들이 강의에 참석해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