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뤄진 경제 성장은 '대충대충'과 '빨리빨리'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았고, 그 결과 지난 반세기 내내 이땅에는 고개를 떨구게 하는 부끄러운 사고가 이어졌다.
수명·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사고들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안전불감증'은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끔찍한 사고를 일으키며 역사의 페이지마다 상처를 남기고 있다.

# 끔찍한 참사, 화재·폭발사고
"1일 밤 9시 25분경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하천1리 사○○여인 집에서 석유 등잔에 휘발유를 잘못 넣다가 불이나 함께 모여놀던 10세 전후의 같은 동네 어린이 20명 중 17명이 불타 죽고 1명이 중경화상을 입었다. 방안에 있던 어린이들은 출입문이 한개밖에 없어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하고 모두 타죽거나 화상을 입었다…."(1972년 7월 3일자 사회면)
1970년대 초에는 유난히 대형 화재사고가 많았다. 온동네를 슬픔에 빠뜨린 가평 어린이 집단 참사는 1970년대초 연이은 화재사고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앞서 1971년 12월에는 대한민국 화재사고 중 '최악의 사고'로 손꼽히는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사고가 일어나 무려 168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화재는 방송을 통해 국내외에 생생하게 전해졌고, 국민들은 경악과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불과 1년만인 1972년 12월에는 모 방송사의 '10대가수 청백전'이 진행되던 서울시민회관에 대형 화재가 발생한다. 수천명의 관객이 몰려있던 현장은 치솟는 불길로 아수라장이 됐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53명이 또다시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1974년 11월에는 서울 청량리 대왕코너에서 불이 나 나이트클럽 손님과 호텔 투숙객 등 8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불과 3년 사이에 연이어 일어난 이 3건의 화재사고는 1970년대 최악의 화재사고로 기록됐다.
1977년 11월에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형 사고가 터진다. 이리역(지금의 익산역)에서 고성능 폭발물을 가득 실은 한국화약의 화물열차가 폭발해 이리역 일대가 통째로 날아간 사고였다. 59명이 사망하고 1천명이 넘는 부상자를 낸 이 사고는 어처구니 없게도 화약 호송원이 술을 마시고 종이로 된 화약상자 위에 촛불을 켜놓은 채 잠이 들어 일어났다.

폭발과 화재사고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끊이지 않는다. 1981년 8월 13일 저녁에는 안양에서 보신탕집 가스 폭발사고가 일어나 11명이 죽고 20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터진다. 프로판 가스 2통이 연쇄 폭발하면서 2층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무더위에 보신탕집을 찾았던 손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1988년 3월 25일 새벽에는 안양의 섬유공장에서 불이나 1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무허가 공장 기숙사를 덮친 새벽 화마는 화재 무방비 상태속에서 곤히 잠자던 여공 19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5명을 중태에 빠뜨리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 25일 새벽 1시 10분께 안양시 비산동 상업은행 건물 3층 '그린 힐' 봉제공장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 기숙사에서 잠자던 28명중 정경숙양(22) 등 여공 19명이 질식사하고 송은주양(18) 등 5명이 중태에 빠졌다…." (1988년 3월 25일자 사회면)
안양 섬유공장의 불은 철제로 된 출입구를 잠가놓아 더 큰 피해가 났다. 이 사고에도 불구하고 몇년 후 용인에서는 비슷한 사고가 또다시 발생해 소중한 생명들이 무더기로 희생된다. 1995년 8월 21일 새벽에 발생해 37명의 인명피해를 낸 '경기여자기숙학원 기숙사 화재'사고였다. 이어 1999년 6월 30일 새벽에는 어린이들이 단체로 잠들어 있던 청소년 수련시설 '화성 씨랜드'에서 불이나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이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터졌고, 같은해 10월 30일에는 인천 인현동 상가에서 화재가 발생해 이 건물 2층 호프집에 있던 10대 55명이 현장에서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이어졌다.
끔찍한 화재사고는 21세기에도 이어졌다. 2003년 2월 18일에는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기록된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가 발생해 무려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2008년 1월 7일에는 이천의 '코리아 2000' 냉동창고 지하1층에서 공사 도중 폭발에 이은 화재가 발생, 인부 등 40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그해 12월 인근에서 또다시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해 인부 8명이 사망함으로써 물류창고의 허술한 안전을 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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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불감증이 부른 붕괴사고
"8일 하오 2시40분경 인천시 동구 송현동 100번지 동인천역 지하상가 송현동쪽 입구에 있는 3층 콘크리트 40평 건물이 무너져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행인과 건물안에 있던 상인 등 7명이 압사하고 24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사고의 원인은 무너진 건물 자체의 부실과 이 건물의 바로 옆에서 중앙시장 신축을 위한 '파일'공사로 인한 심한 진동에 의한 것으로…."(1970년 8월 10일자 사회면)
멀쩡한 건물이 무너지거나 한창 공사중이던 건축물이 무너져 내리는 붕괴사고는 지난 반세기동안 일일이 세어보기도 어려울 만큼 자주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국민들의 기억에 남는 대형사고들은 대형건물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말 이후에 더욱 많이 일어났다.
"무리한 공기 단축 등 부실공사를 진행하던 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3층 현관돌출부가 콘크리트 포설작업중 무너져내려 5명의 인부가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는 어처구니 없는 참변이 발생했다…."(1988년 8월 1일자 사회면)
이어 1992년 7월 31일에도 역시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던 신행주대교가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신행주대교 사고에서는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조급함이 부른 부실한 공사는 2년후인 1994년 10월 21일 아침 한창 출근과 등교 차량이 오가던 성수대교가 붕괴돼 출근 및 등굣길 승객 32명이 사망하는 어처구니 없는 참사를 부르고 만다. 이어 1995년 6월 29일 저녁에는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의 1개동이 통째로 붕괴되는 상상도 못할 사고가 빚어져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광복 이후 최대의 인명피해를 기록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역시 설계·시공·유지관리의 총체적인 부실로 인한 참사였다. 이 사고로 인해 급격한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있던 부실한 건축과 안전불감증이 여실히 드러나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해야 했으며, 우리나라 긴급구조구난체계의 취약점도 문제로 불거져 이후 소방구난체계 재정비가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