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박상일기자]안전불감증과 부실한 공사가 불러온 각종 화재와 폭발, 붕괴 사고는 지난 반세기동안 수많은 사고들을 불렀다. 불타고 무너진 사고의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었고, 많은 국민들을 탄식과 안타까움에 빠지게 했다.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대형 사고들은 다른 곳에서도 터져 나왔다. 부실한 안전점검과 조급함 등이 불러온 대형 교통관련 사고들이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터져나온 안타까운 사고들은 여행길이나 귀향길, 귀갓길에 나섰던 많은 사람들을 낯선 곳에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게 했고, 때로는 무고한 인명까지 희생시켰다.

▲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 떨어지면 대형 참사, 비행기 사고

"제트기가 이륙 직후 민가 부근에 추락, 때마침 아침식사 중이던 일가족이 몰살 또는 중상을 입은 참사가 수원에서 일어났다. 10일 아침 10시 25분경 수원시 고색동 15 강○○(39)씨 집앞 약 30야드 지점 밭에 이륙 직후 기관 고장을 일으킨 공군 ○○전투비행단 소속 제트 전폭기가 추락, 조종사와 아침식사중이던 일가족 5명 등 6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1명이 중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하다…."(1967년 7월 11일자 사회면)

민간 여객기가 흔치 않았던 1960년대에는 전투기 사고가 종종 지면에 등장했다. 특히 기관 고장을 일으킨 전투기가 민가에 추락해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잦았다. 일가족 5명이 참변을 당한 1967년의 전투기 추락 사고는 꼭 2년후인 1969년 7월에도 일어났다. F-86 전천후 요격기가 이륙하다가 기관 고장으로 수원시 고색동 민가에 추락한 사고로 민간인 가옥 2채가 전소됐고, 어린이 8명과 어른 1명, 조종사 등 10명의 귀중한 생명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9명의 가족과 이웃을 잃은 고색동 마을은 슬픔에 잠겼다.

"이날 불의의 참변을 당한 고색동 마을은 온통 어두워질 때까지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 바람에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시내에 나왔다가 뒤늦게 달려온 방씨(희생자) 부인 박 여인은 남편과 두 딸을 잃고 어떻게 살겠느냐고 대성통곡을 했다…."(1969년 7월 23일자 사회면)

한꺼번에 수십명 또는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민간인 여객기 사고는 1980년대들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1989년 7월에 일어난 KAL기 트리폴리 추락사고는 짙은 안개속에서 관제소의 경고를 무시한채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다 일어난 대표적 인재(人才)로 기록됐다. 이 사고로 승객과 활주로 인근 현지인 등 총 80명이 사망했고, 139명이 부상을 입었다.

4년 후인 1993년에는 우리나라 땅에서도 대형 여객기 사고가 터진다. 7월 26일 오후 김포공항을 출발해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733편이 전남 해남군에 추락, 68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사고기는 비가 내려 시계(視界)가 좋지않은 상황에서 세 번이나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다가 끝내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뒷산에 추락하고 말았다. 이 사고는 생존 승객 두명이 산아래 마을까지 내려와 신고를 함으로써 뒤늦게 사고 사실이 확인되고 구조 활동이 진행되는 웃지못할 기록도 남겼다.

이어 1997년에는 우리나라 항공기 사고 중 최악의 추락사고가 일어난다. 8월 6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괌으로 향한 KAL 801편이 목적지인 안토니오 비원 팻 공항 인근 언덕에 추락, 승객과 승무원 등 총 228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이 사고는 폭우가 내리는 악천후와 괌 공항의 활공각 지시기 고장 등이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지만, 역시 악조건을 무시한 채 착륙을 강행해 사고를 자초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바다위의 비극, 선박 사고

잊을만 하면 터지는 여객기 추락사고 못지않게 바다에서도 비극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승객을 가득 실은 여객선이나 유람선들이 전복되거나 침몰해 아까운 생명들이 '수장(水葬)'되는 선박 사고들이다.

1963년 2월 6일에는 인천항을 출발해 강화 교동도로 가던 여객선 갑제호가 부천군 북도 인근에서 얼음덩어리와 충돌해 조난을 당한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긴급 출동한 한미 해군 및 공군에 의해 구조됐으나, 어린이 1명과 여성 2명 등 6명은 차가운 겨울바다에서 익사하는 참변을 당했다. 정원 148명인 이 배는 사고 당시 206명의 승객을 태워 사고를 자초했다.

1984년에는 산정호수에서 물놀이 하던 보트가 전복돼 10명이 익사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난다. 정원이 운전자 포함 7명에 불과한 소형 PVC 모터보트에 무려 17명이 승선해 폭풍우 속에서 무리하게 뱃놀이에 나섰다가 당한 사고였다. 이어 1986년 11월에도 강화 해상에서 승객 50명을 태우고 외포리로 가던 카페리가 승선된 골재트럭의 중량을 못이기고 전복돼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1993년에는 한국 해양사고 사상 최대의 사고로 기록된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가 일어난다.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면 격포 앞바다에서 발생한 이 사고는 최종 집계 결과 사망·실종 292명이라는 끔찍한 기록을 남겼다. 서해 페리호는 221명 정원에 무려 362명을 태우고 악천후속에서 무리하게 운항하다가 강풍과 파도에 휩쓸려 침몰, '정원초과 + 악천후속 무리한 운항'이라는 대형사고의 공식을 확인케 했다.

■ 추락하고 추돌하고… 버스·열차사고

"조용한 강변 통곡의 바다로… 27일 하오 5시 30분경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북포리 속칭 섬바위 국도상 커브길에서 서울발 여주행 ○○여객 소속 버스가 핸들핀이 빠지는 바람에 12m가량 경사진 남한강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50여명의 승객중 27일 밤 12시 현재 12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1명이 실종, 39명이 중경상을 입어…."(1969년 7월 28일자 사회면)

경기도 남한강과 북한강을 끼고 나란히 난 도로들은 강변의 수려한 풍경으로 인기가 많은 길이기도 했지만, 버스 추락사고가 잦은 '위험한 길'이기도 했다. 1969년 13명의 사망·실종자를 냈던 추락사고는 2년후인 1971년 5월 10일에는 무려 80명이 익사하는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10일 상오 8시 55분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희곡리 청평댐 상류 1.5㎞의 북한강에서 초만원 시외버스(운전사·임○○·37)가 10m의 벼랑 아래로 추락, 떼죽임을 빚은 사상 초유의 교통사고는 승객 90여명중 15명이 구조되고 75구(남 54, 여 21) 시체를 인양했다…."(1971년 5월 11일자 사회면)

남한강과 북한강변의 버스추락 사고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지난 1996년 4월에는 남한강에서 버스가 추락해 20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사고가 일어났고, 2004년 4월에는 마사회 소속 버스가 북한강에 추락해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하는 참극을 빚기도 했다. 비극적인 사고는 가장 안전한 운송수단으로 꼽히는 열차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1981년 5월 14일 오후에는 부산을 떠나 대구로 가던 급행열차가 경산역 인근에서 앞서가던 특급열차를 추돌해 55명이 사망하고 243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빚어졌다. 이 사고는 앞서가던 특급열차가 건널목에 버려진 오토바이를 들이받고 현장 수습을 위해 후진을 하던 와중에, 뒤따라 오던 보통열차가 안전신호를 무시한 채 과속으로 달려와 특급열차를 들이받으면서 일어났다.

이어 1993년 3월 28일에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던 무궁화 열차가 구포역 인근에서 탈선하면서 객차가 두 동강이 나고 전복돼 78명이 사망하고 190여명이 부상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는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사가 현장 부근에서 지하 굴착공사를 벌이면서 안전조치를 소흘히 해 지반이 침하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밝혀져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