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 인천대공원 백범 동상 앞에서는 어김없이 백범의 61주기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왜 이곳에 동상이 서 있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인천대공원 자리와 백범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인천은 일제 식민 수탈의 관문도시로 성장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독립·민족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그 중심에 백범이 있다. 백범은 인천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근대의식을 깨쳤고,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가 구성되기 전에 중구 자유공원(옛 만국공원)에서 임시정부 관련 회의도 열었다. 또 장사꾼이라고 할 수 있는 객주 수십명이 백범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강화도의 한 인물은 백범 석방을 위해 가산을 탕진했다고 할 정도다.
백범과 인천의 연관성은 두 차례의 옥살이와 축항공사 노역, 강화에서의 교육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점은 백범의 인물됨을 알아 본 인천 사람들이 집단으로 그의 석방운동과 '민족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백범 동상 이전설의 설득력이 있다. 백범의 상징성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는 곳에 동상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구 선생과 '백범일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양윤모 인하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이 대공원 현 부지에 있는 것은 맞지 않다고 여긴다"면서 "백범 동상이 가야 할 가장 좋은 자리는 중구 '개항장'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는 백범과 연관이 있는 인천역, 인천항 등지를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박사는 또 "한 인물의 동상이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고 세우는 것이란 점에서 보면 그 인물을 기릴 수 있는 곳에 세우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인천학연구원 김창수 상임연구위원은 "백범의 동상은 그와 관련된 중구 일대가 가장 적합하다"면서 "인천은 식민도시로 근대를 통과해 나왔지만 그 인천이 민족운동과 깊이 관련돼 있다는 점도 조명할 필요가 크다"고 강조했다.
백범과 인연을 맺은 강화 출신 인물인 유완무에 대해 논문을 쓴 이희환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는 "백범 김구 선생과 인천과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백범 동상이 지금처럼 인천의 구석에 쓸쓸히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하루 빨리 동상을 보면 백범의 발자취가 연상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대공원 백범 동상은 1998년 인천시민 모금운동을 통해 건립됐지만, 당시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해 현재의 장소에 세워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