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문성호기자]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사는 수도권은 돈을 쏟아부어 덩치는 커졌지만 오히려 살기는 더 불편해졌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공룡으로 비유되는 수도권의 집중은 우리나라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했지만 서울 중심의 양적 팽창은 경기도와 인천을 서울의 위성도시로 전락시켜 버렸다. 또한 용인, 고양, 파주시 등 경기도지역에서 성행한 '묻지마 아파트 개발'은 마구잡이 개발로 도시기능이 뒤틀렸고 지역 간 빈익빈 부익부도 그만큼 심화됐다. 이로 인한 교통,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제 논리가 다음 세대에는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수도권의 개발은 신도시개발사업과 불가분의 관계로 일컬어진다.

"정부에서 서두르고 있는 대도시인구집중 방지를 위한 방안이 최근 구체화되어 대통령에게 곧 보고한 다음 국무회의에서 확정될 것 같다. 30일 관계당국에서 밝혀진 최종안에 의하면 도시의 인구 팽창을 막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육성하기 위해 관공서, 금융기관, 대학교 등 공공시설 일부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등 다음과 같은 대책을 강구한다는 것이다…."(1970년 3월 31일자 1면)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신도시가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이후로 공업화 및 경제개발정책의 본격 가동과 더불어 '대도시 인구 집중 방지책'(1964년) 및 '수도권 과밀 억제에 관한 기본지침'(1970년대)에 따라 대체로 국토 및 지역개발, 대도시 문제해결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에 따라 현대적 의미의 최초 신도시인 광주대단지(성남)가 건설됐다.

"분양지 무상불하를 요구하는 성남단지 주민들의 궐기대회는 도가 지나쳐 폭동으로 변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말았다. …이들 단지의 주민들은 『1백원 땅을 1만원에 파는 것을 결사반대한다.』등 푸랑카드와 피켓을 들고 궐기대회를 개최 이 자리에 참석키로 했던 양택록 시장이 11시10분이 넘도록 오지 않고 시청직원이 양해를 구하는데서 비롯됐다.…"(1971년 8월 11일자 사회면)

서울특별시는 1968년 당시 서울의 인구 및 산업의 분산 수용을 위한 위성도시 건설을 목적으로 6개년에 걸쳐 총 56억원을 투자해 인구 35만명을 포용하는 사회복지·교육·문화 시설을 갖춘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광주대단지사업종합계획'을 수립했지만 그로 인한 위기감도 팽배해 갔고 결국 그해 8월 10일 오전 11시40분께 회의가 열리고 있던 성남출장소를 1만5천여명의 주민이 포위하고 투석·방화하는 광주대단지 5만여 주민 난동이 발생했다.

정부는 이듬해인 1972년 8월 서울의 개발제한지역과 같은 방법으로 관리하기 위해 수원시 이목동·율전동·파장동·상하광교리·송죽동·속원리·시흥군 안양읍·의왕면·남면·수암면, 화성군 반월면, 용인군 수지면 등 도내 1개시·3개군·7개읍면 지역 일부의 86.8㎢를 개발제한구역지구로 지정했고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서울 강남 신시가지와 함께 과천과 화성군(현 화성시) 반월 등의 제1기 신도시가 개발됐다.

또한 1970년 중후반 무렵부터 인천과 수원에 아파트 붐이 일기 시작했다. 1978년도를 기준으로 인천시내에서만 37개동(洞) 1천564개 동의 민간 아파트가 신청됐고 경수간 전철복선 공사가 착공되면서 아파트 붐이 일기 시작한 수원시도 520가구 건립 및 3천100가구 조성을 위한 대지공사가 착공되기도 했었다.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이 발표된 1980년대에는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한 공영개발로 성남 분당, 고양 일산, 안양 평촌, 부천 중동, 군포 산본 등 수도권 5개 지역에 제2기 신도시가 건립되면서 본격적인 신도시 개발의 서막이 올려졌다.

"영세서민들의 주거안정과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을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임대보증금이 없는 영구임대아파트 1만세대가 건립된다. 성남시는 생활환경이 어려운 영세민과 근로가족을 위해 총사업비 1천600억원(토지대금 제외)을 투입, 5개년 계획으로 시영아파트 1만세대분을 건립해 극빈영세민 등의 주택난을 완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1990년 2월 16일자 1면)

수도권의 제2기 5개 신도시 개발은 매우 짧은 기간에 100만명 이상이라는 많은 수의 인구가 신도시로 이주함으로써 서울의 인구분산을 이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주택공급위주의 개발정책과 단기간의 신도시 건설은 자족성의 실패와 수도권 광역교통문제 등을 유발시켰고, 지역성을 무시한 도시건설이 획일적인 도시경관이라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었다. 또한 대규모 신도시 일시개발에 대한 비판에 따라 소규모 분산적 택지개발과 준농림지 개발 허용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하면서 무임승차(Free-riding)에 의한 기반시설 부족 등 심각한 난개발을 초래했다. 다시 말해 신도시 주변지역의 관리정책 부족으로 준농림지역 등 비도시지역의 무분별한 개발과 정부기관의 방임으로 난개발됨으로써 각종 도시문제를 야기시켰으며 기존 도시들이 갖고 있던 문제들은 신도시가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남 판교, 화성 동탄(1·2), 김포 한강, 파주 운정, 광교, 양주, 위례, 고덕국제화, 인천검단 등 1980~90년대 신도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전환 및 소규모 분산적 개발을 대체하는 '계획도시' 개념의 신도시 건설이 추진되게 됐지만 특혜시비가 끊이지 않는 등 여전히 폐해가 나타났다.


단국대학교는 2003년 1월 용인캠퍼스 부지인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일대 100만㎡를 공동주택 신축이 가능하도록 용도변경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총리실, 교육부 등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들이 뒤를 봐준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 대학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졌고, 그해 4월에는 한국토지공사가 화성 동탄신도시 시범단지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간부결재를 누락시키는 등 특혜시비에 휘말렸다.

특히, 2004년 상반기 동안 대규모 택지개발에 따른 토지보상금이 경기도에만 6조여원이 풀려 나갔다. 천문학적 보상금과 투기성 자금이 재투자와 대토(代土)에 몰리면서 도내 전체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 ㎡당 10만원선에 불과하던 도로변 농지가 불과 2~3년 만에 150만~200만원선으로 폭등했고 그나마 매물을 구경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땅값은 계속 뛰는 등 도내 전역이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땅 투기장으로 변하면서 그로 인한 피해는 경기도를 떠나거나 빈민으로 전락하는 등 고스란히 농민들 몫으로 돌아갔다.

또한 각종 개발정책에 편승하거나 허황된 소문을 퍼뜨려 지가상승을 부추기는 기획부동산까지 기승을 부렸다. 이들 기획부동산은 헐값에 사들인 대규모 토지를 수십 개~수백 개로 분할해 팔아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도주하는가 하면, 각종 규제에 묶여 개발이나 양도가 어려운 토지를 그럴 듯한 말로 속여 파는 등 '범죄적' 행태도 일삼았다.

이후 비도시지역의 소규모 난개발을 막기 위해 개발행위허가제가 도입됐지만 제도적 허점과 자치단체의 운영 미숙, 이러한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부동산업자로 인해 비도시지역의 논과 밭·임야가 무차별적으로 개발되는 등 오히려 난개발을 부추기는 꼴이 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