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연합뉴스) 이탈리아 언론인 2천여 명이 1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언론규제법을 비난하며 시위를 했다.

   전국언론연맹(FNSI) 회원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인들은 이날 로마 나보나 광장에 모여 이미 상원을 통과한 규제법이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제한하는 '언론 재갈법'이 될 것이라며 규탄하고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지시에 따라 정부가 내놓은 이 법안은 도청이나 비디오 카메라 감시,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자료를 수사나 보도에 활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이를 위한할 때는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판사와 검사들은 도청 자료를 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한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는 뜻에서 1일 법정의 문을 닫고 비공개 재판을 강행했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만약 도청 자료를 재판 증거로 채택할 경우에는 월급을 삭감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국치안판사협회는 회원들 가운데 80% 이상이 정부 조치가 "불합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항의 차원에서 법원 문을 닫고 비공개 재판을 강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2009년 국가예산의 5.3%에 이른 적자를 2012년에는 3% 이하로 줄이겠다며 이를 위해 치안판사 초임을 25% 삭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가 반발에 부딪혀 재고하겠다고 물러서기도 했다.

   판사들은 정부 당국이 탈세자들에게는 작년 사면조치를 취하는 등 관대한 태도를 보이면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판사들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탈리아에선 수사 당국과 언론 뿐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도청하는 등 세계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도청이 일반화 돼 있다면서 인권 및 사생활 보호, 범죄 악용 및 수사기관.언론의 남용을 예방하기 위해 이 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기자협회 등 언론계와 검찰 등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수사의 증거나 기사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자주 활용되는 전화 도청 자료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범죄나 마피아 관련 수사를 하거나 보도할 때 큰 제약이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새 법안은 개별 상황과 무관하게 포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이탈리아 언론은 형사사건을 보도할 때 수사 기록을 언급할 수 없게 된다. 재판이 진행된 이후에야 관련 기관에서 공개한 도청이나 녹음.녹화 자료만 보도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점을 들어 대다수 언론인과 검찰은 이 법안의 실질적인 목적은 총리 등 권력층 비리 수사와 보도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고위 관리와 정치인등의 마피아와의 거래나 부패.추문이 많은 경우 도청으로 드러나고 언론에 보도됐으며, 특히 지난해 이탈리아를 들썩이게 했던 총리의 미녀들과의 섹스 스캔들 보도 역시 녹음이 큰 역할을 한 것에 권력이 불편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 법안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 비비안 레딩 사법기본권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20일 "EU는 이탈리아에서의 언론 자유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올해 프리덤 하우스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서 이탈리아를 세계 72위로 평가하고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제한적으로 언론 자유가 있는 국가'로 분류하자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발끈한 바 있다. 재벌인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주요 방송.신문사들도 소유하고 있으며 언론에 대한 통제 및 잦은 소송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