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영준기자]펑크 레이블 '문화사기단'의 중심 인물이었던 이규영은 여자 친구가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음악인으로서의 생활을 접고 고향인 인천으로 귀향한다. '록음악도 전기도 짜릿하긴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전기 관련 국가공인 1급 자격증을 따고 성실한 가장이 된 것도 잠시. 그는 뜬금없이 부평의 모텔촌 한 가운데에 인디레이블 '루비살롱'을 열고, 풍운아같은 밴드를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그들은 과연 그들의 바람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레이블이 될 수 있을까….

(네이버 영화정보·다큐멘터리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줄거리 중에서)

인천의 라이브클럽 '루비살롱'의 탄생과 그 곳을 근거지로 삼은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 '타바코 쥬스'의 이야기를 거친 화면에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감독·백승화, 2009년)은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각종 영화제에 초청됐다.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이기도 한 백승화 감독은 영화를 위해 종군기자가 된 심정으로 밴드들과 뒹굴면서 1년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어떤 극영화보다 드라마틱했다. 실제로 3~4년 사이에 급격히 성장해 주목받고 있는 인디 레이블 루비살롱의 대표 이규영(35)씨를 지난 19일 서울 홍대 근처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루비살롱 소속 뮤지션 '국카스텐'

루비살롱의 본거지는 인천이지만, 소속 밴드들이 주로 홍대 주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 대표의 일정은 토·일요일 공연때엔 인천으로 가고, 평일에는 주로 서울에서 레이블 활동을 하고 있다. 홍대쪽에서 레이블 활동을 하며 얻은 노하우를 인천에서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현란한 간판으로 가득한 모텔촌 안의 오아시스같은 공간

인천 부평동에 있는 클럽이자 레이블 '루비살롱'을 찾아가는 길은 간단치 않다. 좁은 골목길을 수차례 꺾어 모텔촌을 지나가야 한다. 하지만 서울과 인천의 록 마니아들은 루비살롱에 몰려들고 있다. 루비살롱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속 문구인 '현란한 간판으로 가득한 모텔촌 안의 오아시스같은 공간'에서 록으로 흠뻑 젖고 돌아가는 것이다.

이 대표는 "과거 인천 백운역 근처에 '락캠프'라는 록 클럽이 있었어요. 9년을 버틴 인천 유일의 클럽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아쉬웠던지…. 당시 작업실 겸 합주실을 찾고 있었는데,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은 호프집 자리에 루비살롱을 세웠습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때가 2006년이었는데, 내 연습 공간이자 자체 레이블 제작이나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한데 공연장이 생기니까 오는 밴드들이 있고, 그 밴드들이 음반도 내고 싶어했죠. 예전에 문화사기단하면서 갖고 있는 루트가 있어 밴드들을 소개시켜 주다가 아예 제작까지 하게 됐네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일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 인디밴드 멤버로

인천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초·중등학교 시절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는 팝송을 들으며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고등학교 재학중에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전문적으로 한 밴드는 아니었어요. 음악 내적인 부분보다는 이성 친구를 꼬시는 등의 외적인 부분에 더 집중했던 것 같네요"라며 웃음지었다. 본격적인 음악 활동에 대한 계획은 군 생활을 하면서 세웠다. "제대하자마자 음악 학원에 등록했어요. 모자란 부분을 남에게서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죠."

곧 인디 밴드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 대표는 '노 브레인'이 소속되어 있던 인디 레이블 '문화사기단'에서 '푸펑충'과 '글로벌 코포레이션' 등의 밴드를 조직해 활동했고, 록밴드 '락 타이거스'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2003년 이 대표는 락 타이거스 활동중에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생기고 주변을 돌아보니 있는 것이라곤 빚 뿐이었다. 처음엔 음악 활동을 병행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3년정도 빚 갚고 애 키우고 돈 버는 데에만 집중했다.

"3년동안 5가지 일을 했어요. 지하상가에서 옷 가게를 하고, 전기관련 자격증을 따서 전기 공사하는 곳에서 일도 하고, 공연기획사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산하 연구기관에도 몸 담았었죠."

잠시 외도(?)를 했지만 이 대표는 당시의 경험이 현재 루비살롱을 운영하는데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 다양함을 추구하다

"어릴적부터 잡다하게 많은 것들을 좋아했어요. 음악도 여러 악기들에 대한 관심이 두루두루 있어서 이것저것 다 해봤죠. 생계를 잇기 위한 일을 했을 때에도 여러 가지 했고, 루비살롱의 소속 멤버들의 음악도 매우 다양합니다."

루비살롱의 차별점은 음악 스타일이나 장르가 아니라 '공연 실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공연 실력만으로 소문이 퍼진 '갤럭시 익스프레스'(현재 독립해 나감)를 비롯해 노 브레인의 기타리스트였던 차승우가 조직한 '문 샤이너스', 인천 출신의 '써드 스톤' 등이 루비살롱에서 공연을 하고 음반도 냈다. 때문에 루비살롱이 록음악 전문 레이블로 소문이 났지만 소속 뮤지션들의 구성은 훨씬 다양하다. 팝에서 일렉트로닉 음악, 보사노바까지 망라되어 있다.

이 대표는 "우선 내가 좋아야 한다"고 소속 뮤지션들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 답했다. 이어서 "공연을 잘 해야 해요. 공연은 내공이 없으면 안되죠"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내가 다양한 것들을 좋아하다보니 소속 뮤지션들도 다양해졌다. 때문에 레이블의 색깔이 드러나진 않지만, 그게 루비살롱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목표

지난해부터 루비살롱 소속 밴드의 해외 진출이 이어졌다. 당시 소속 밴드이던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프랑스와 대만의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했으며, 국카스텐이 중국 상하이와 일본 클럽가에서 공연했다. 검정치마는 호주의 TV쇼에 출연했다. 이처럼 이 대표는 신인 밴드를 발굴해 스타가 되기 직전까지 지원하는 진정한 독립 제작사로 거듭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좋아하는 게 많다 보니, 내 자신이 또 무엇을 하고 싶어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 회사에 딸린 식구들도 있고, 대표가 경거망동하면 안되겠죠. 신생 밴드가 제대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커가는 걸 도와주고 싶습니다."

▲ 루비살롱 소속 뮤지션 '타바코 쥬스'

그는 인천 음악판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소속 밴드 중 써드 스톤은 인천 출신 멤버들로 구성된 인천 밴드입니다. 요즘은 인천 음악에 대한 사명감도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인천 밴드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