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대회 콩쿠르 등 각종 대회 개최
1960년대 문화계는 그야말로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나라 전체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데다 경제난을 극심하게 겪고 있었고, 4·19나 5·16 등 그야말로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국민들은 먹고사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경인일보는 경기·인천지역의 문화인들과 함께 뜻을 모아 미술대회, 문예대회, 콩쿠르 등 문화행사들을 개최하며 조금씩 문화의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제1회 도내초중고등학교학생무용콩쿨대회' '제1회 초대작가전' '제1회 경기예술제' 등 경인일보가 주최·후원하는 행사는 대부분 최초로 시도하는 것들로 '제1회'라는 말이 어김없이 들어갔다. 이후 활기를 띠기 시작한 문화계는 '난파음악제' '화홍문화제' 등 굵직한 문화행사를 자생적으로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미술인들끼리 협회를 결성하고 소규모 갤러리에서 개최하는 전시회 관련기사가 많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때까지만 해도 경기·인천 지역에 변변한 갤러리들이 없어 백화점이나 다방에 조그맣게 갤러리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은 수원크로바 백화점에 있었던 크로바화랑이 문을 닫는다는 기사인데 기사를 쓴 이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지난 15년간 수원지역의 문화창달에 크게 기여해온 크로바화랑이 완전히 폐쇄된다. 크로바화랑은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전시회를 일절 개최하지 않았으며, 현재 일반상가매장으로 전용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중략)그동안 중심가에 위치해 많은 관람객을 모았던 이 화랑이 기업의 영리목적이라는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는데 많은 미술인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1990년 3월 21일자 문화면)
# 문예회관, 박물관, 미술관 개관 러시
올림픽을 치르면서 국가 경제력이 향상되자 경기·인천 지역에도 본격적으로 문화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인천에는 1982년 11월 22일 '인천문화회관'이 문을 열었다. 당시 기사에 '대지 1천5백19평에 연건평 1천1백78평의 지하2층, 지상4층의 대형건물'이라는 묘사를 보면 당시의 경제규모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로부터 거의 10년 후 1991년 6월 27일에는 경기도문화예술회관(현 경기도문화의전당)이 건립됐다. "도문화예술회관은 우리민족 전통양식인 성곽의 입체경사와 누각의 처마곡선이미지로 완벽한 조명시설을 갖춘 대공연장(1천9백4석) 소공연장(5백54석)을 비롯, 야외공연장, 지하전시장, 연습실, 6개국어동시 통역시설을 갖춘 국제회의장이 들어섰다.(1991년 6월 2일자 1면)"

비로소 경기·인천 지역 모두 문예회관이 들어서자 이번에는 1996년 6월 21일 자치단체 최초로 건립된 '경기도박물관'이 선을 보인다. 용인에 위치한 경기도박물관 건립은 1988년 1월 건립계획 수립 후 총 7년 10개월에 걸쳐 269억8천5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당시 도 박물관은 3천630여㎡의 자연사실, 고고미술실, 문헌자료실, 민속생활실, 서화실, 기증유물실과 기획전시실, 야외 전시장을 갖췄다.
1999년 12월 21일에는 북수원에 '수원시미술전시관'이 들어서 미술인들의 숨통을 다소나마 트이게 해줬으며, 이후 2000년대에 들어 경기도에는 대규모의 인력과 자본이 투입된 안산의 경기도 미술관,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 남양주 실학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등이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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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화성(華城) 복원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1974년 10월 15일 경기도는 총공사비 14억7천900만원을 들여 전쟁과 재난으로 이지러진 수원성곽을 4년에 걸쳐 원형대로 복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1974년 10월 16일자 신문에는 참혹하게 부서져 있는 수원 동문의 공심돈이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로부터 8개월 후 수원성(華城)의 기공식을 알리는 기사가 나오고, 1979년 11월 29일 드디어 수원성 복원이 말끔하게 이뤄졌다는 기사가 1면 톱을 장식한다. "故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75년 6월7일에 착공한 수원성곽 복원 정화사업이 지난 10월안에 완공되어 29일 10시 30분 수원 장안공원에서 준공식을 가졌다.(1979년 11월 29일자 1면)"
사실 이 복원사업에는 당초 책정했던 것보다 두 배가 넘는 33억원의 예산이 들어갔으며 만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당시의 경제상황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파격적인 공사였던 것이다. 복원지시를 내렸던 박정희 대통령은 서거 직후여서 수원성곽이 복원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1996년에는 화성행궁 복원이 수원시에 의해 추진된다. "1794년 정조대왕에 의해 건립, 1910년 일제에 의해 파괴됐던 화성행궁이 86년만에 복원된다. 수원시는 18일 화성행궁복원 기공식을 갖고 9백억원을 들여 2010년까지 44채 5백77칸을 복원하고 이곳을 성역화해 관광지로 개발키로 했다. (1996년 7월 18일자 1면)"
수원성 복원과 화성행궁의 복원이 초석이 돼서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룬다. "수원성(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3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제21차 총회를 열고 사적 3호인 수원성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1997년 12월 4일자 18면)"

2007년 7월에는 수원화성의 건축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겹경사를 맞는다. "화성 건설이 끝난지 5년만인 순조 1년(1801년)에 편찬된 화성성역의궤에는 화성 건설계획에서부터 진행상황, 공사비, 공사실명제, 공역 참가자 작업일수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2007년 7월 3일자 1면)"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9년 6월,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데 이 중 31기의 왕릉을 보유하고 있는 경기도는 유산지정의 최대 수혜지가 됐다. 경인일보는 이에 발빠른 대응으로 2009년 9월 1일부터 올 7월까지 11개월간 기획시리즈 '왕을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했으며 이제 최종회 한 번을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