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까닭에 신문사들은 앞다퉈 유명 작가들의 연재소설을 게재하고, '신춘문예'를 개최해 우수한 문인들을 발굴, 육성하려고 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그 작가는 꼭 경력사항에 'OO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이력을 넣었고, 이는 신문사의 사세(社勢)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경기·인천의 유일한 신문이었던 경인일보는 1960년 신춘문예를 개최하며 현재까지 많은 문인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1966년에는 경인지역 언론사 최초로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 신문 연재소설의 인기
경인일보에 실렸던 최초의 연재소설은 김광주씨의 '奇遊記(기유기)'였다. 1966년 2월 18일부터 연재됐던 이 소설은 중원(中原)과 서장(西藏)을 무대로 전개되는 무협담이었다. 여기서 작가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이 이야기는 소위 중국 고전중에서 흔히 유명하다는 어떤 명작을 옮겨 놓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허구와 공상과 가상의 극(極)을 다하는 통쾌무비(痛快無比)한 무협담 속에서 비록 시대는 다르고 하지만 인간에게 영원히 공통되지 않을 수 없는 은혜, 원한, 보복, 애정의 파란을 더듬으면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호흡이 과연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의 인물들과 얼마만큼 차이가 있는 존재들이냐하는 점은 오로지 독자제현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겨볼 생각입니다."(1966년 2월 17일자 1면)
기유기의 연재 이후 잠깐 주춤했다가 1969년부터는 매해 새로운 연재소설이 지면을 장식한다. 춘무(1969), 탈주(1970), 흑풍(1971), 밀실의 열쇠(1972), 성난 비상종(1973) 등의 소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1977년에는 한 신문에 소설 '목타는 山河'와 강용준 씨의 '雅歌(아가)'가 동시에 연재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도 신문 연재 소설의 인기는 꾸준했다. 도깨비 눈물(1981), 사랑의 반(1983), 여협(1985), 지새는 안개(1986), 유감동(1987) 등의 작품이 이어졌으며, 1990년대에는 삼별초(1992), 북문(1995), 별이 쏟아지는 사랑(1998)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컴퓨터와 TV, 휴대전화 등의 발달로 시청각 미디어가 널리 대중속으로 파고들자 순수문학은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그래도 연재소설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경인일보는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출신인 김현영(1997년 당선) 작가와 젊은 감각의 소설 컴백홈(2002)을 내놨고, 이후로도 광야(2003), 생명의 늪(2004) 등을 이어갔지만 시들어가는 독자들의 관심은 막기 어려웠다. 결국 2007년 12월 28일 배명희 씨의 소설 '숨쉬지 마세요' 177회 연재를 끝으로 경인일보의 소설연재는 막을 내린다.
# 경인일보 신춘문예의 역사
1960년 경인일보의 전신인 인천신문에서는 '신춘문예' 작품을 응모한다는 사고가 게재된다. 그 당시 응모 부문은 시, 시조, 단편소설이었다. 당선 상금은 시부문 1만원, 시조부문 1만원, 소설부문은 5만원. 심사위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 김동리씨와 시인 박두진씨가 맡았고, 1961년 2월 25일 드디어 첫 당선작들을 발표한다. 그러나 같은해 5·16군사정변이 발생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혼란해진 탓인지 신춘문예는 한동안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사라지는 듯했던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지난 1986년 다시 부활하고 이때부터 사실상 제1회 신춘문예 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6회 신춘문예까지는 소설, 시, 시조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됐으며, 7~9회때는 시조 대신 동화부문이 편성되기도 했다. 그러다 1996년 제10회 행사때부터 소설과 시 두 부문으로 나뉘어 2010년 제24회까지 이어왔다.
신문 연재 소설이 상대적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덜 받는 것에 비해 각 대학에서는 문예창작과들이 여럿 생겨나고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신춘문예에 꾸준히 도전하면서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매년 30%에 가까운 작품 증가세를 보였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문학시장에 확실한 문학지킴이로 자리잡은 것이다.
우수한 심사위원들도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지켜나가는데 한 몫을 담당했다. 김동리, 조병화, 박재삼, 구인환, 하근찬, 신경림, 정진규, 이호철, 이창동, 현길언, 박범신, 공선옥, 김윤배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소설가와 시인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신춘문예의 권위를 높였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공통적으로 문단으로의 진입은 물론 자신들의 첫 소설과 시집을 출간하는데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이 굉장히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현재 모교(서일대)에서 강의하며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지금 목표는 내년에 단편 소설집을 내는 것이다. 현재 구상이 끝난 작품도 몇 개 있고 지금 구상중인 것도 있다. 사실 지금 내가 시간강사 자리를 얻게된 것도 경인일보 신춘문예 덕분이다. 개교 이래로 우리 학교 출신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 처음이라 학교에서 파격적으로 대우를 해 준 것 같다. 나를 보고 신춘문예 도전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학교 후배들도 있어 더욱 뿌듯하다. 소설은 사람이 사람 사는 '일', 사람이 사는 '모습'을 글로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을 잊지 않고 글을 써 줬으면 좋겠다."(2010년 1월 1일자 21면 2009년 소설 당선자 이연희 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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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종사씨의 역사소설 '목타는 산하'(1974년 3월 2일자 2면) 2 경인일보 최초의 연재소설 '기유기' 게재 안내글(1966년 2월 17일) 3 4 제1회 신춘문예 당선작 소개지면(1987년 1월 1일자 2면) 5 최초의 경인일보 신춘문예 사고(1960년 12월 12일자 2면) 6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김현영씨의 소설 '컴백홈' 연재 사고(2002년 8월 29일자 1 |
# 우리 시대는 문학적이다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의 내용이 궁금해 다음날 새벽같이 신문을 찾고, '등단'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수히 원고지를 찢어버렸을 사람들에게 경인일보는 하나의 안식처였고, 동기를 제공하는 원천이었다. 1994년 12월 경인일보사는 역대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작품을 모아 '우리 시대는 文學的이다'라는 책을 출간한다. 350쪽 분량의 이 책에는 1987년부터 1994년까지의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과 소설가, 아동문학가 23인의 작품 126편이 수록돼 있다. '우리 시대는 문학적이다'라는 이 말 한마디 속에는 문학의 참된 가치를 공유했던 세대들의 강한 결의가 담겨 있다.
2010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김진기씨의 사례가 그것을 잘 증명해 준다. 73세의 나이에 '차우차우'라는 시를 통해 등단하게 된 그는 전국 신춘문예의 최고령 당선자로 이름을 알리며 공중파 방송에 소개되는 등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신문사 기자와 사업활동을 해왔던 그는 평생 문학의 끈을 놓지 않았고 언제나 문학가 지망생이었던 것이다.
"남들은 그 나이에 무슨 시 공부냐 하며 핀잔 반 충고 반 던지곤 했다. 그러나 아득한 꿈은 나를 지금에야 불러냈다. 대학에서 4년간 국문학 공부를 한 나는 배고픈 시인의 길을 버리고 현실을 좇아 취업을 택했다. 다시 여유를 찾아 시에 매달리게 된 것은 문학의 애착이 아까워서였다. 그러나 시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이 쪽은 결코 만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수없이 망설였다. 아직도 정확한 길은 모른다. 남들이 하루 5시간을 자면 나는 4시간을 자야 하고 남들이 하루에 시 10편을 읽으면 나는 15편을 읽어야 한다. 나는 지금에 머무르지 않겠다. 뒤돌아보지 않겠다." (2010년 1월 1일자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