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임승재·오지희기자]"풍년이 들어도 걱정입니다. 쌀값이 20년 전으로 내려갔어요. 계속 농사를 지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입니다."
인천 강화도 농민들이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례없는 풍년이 예고되고 있지만 농민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재고가 넘쳐나고 쌀값이 폭락하면서 곧 수확이 이뤄지는 햅쌀의 수매가 하락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3면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추수를 앞두고 강화도 화도면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을 만나봤다.
쌀작목연합회장인 유윤규(60·덕포리)씨는 "아직도 창고마다 지난해 생산된 쌀로 넘쳐난다"며 "요즘 도매업자들에게 파는 쌀 값이 20년전 가격인 80㎏짜리 한 가마니당 13만원대까지 내려가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현재 강화쌀의 시중 소비자가격은 20㎏ 기준으로 4만원선을 밑돌고 있다. 지난해 가을 생산된 강화쌀이 시장에 처음 공급됐을 당시보다 17%나 떨어진 가격이다. 햅쌀이 출하되면 재고 쌀 가격은 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유씨는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적자를 보는 게 현실이다"며 "농약과 비료 등 자재값은 해마다 오르고 있는데 쌀 값은 폭락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박상돈(58·흥왕리)씨는 "쌀이 남아도니 브랜드가 어떻고 미질이 어떻고 따지고 하는 것도 다 옛날 얘기가 됐다"며 "낮은 가격에 품종까지 개량된 엄청난 양의 지방 쌀들이 시중에 풀리면서 경기미(인천 등 수도권 생산 쌀)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했다.
이종광(54·여차리)씨는 정부의 쌀 정책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씨는 "쌀값이 폭락하고 재고가 쌓이는 것은 소비가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북한에 쌀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올해 국내 쌀 재고량이 적정 재고량인 72만t의 두배인 140만t(지난해 10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농민들은 올들어 재고량이 크게 증가한 것은 지난해 풍작으로 쌀 생산량이 늘어난데다 정부가 연간 40만t씩 보내던 대북 쌀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재고 처리를 못하면 방법이 없다"며 "북에 쌀을 줄 수 없다면 아프리카같이 못사는 나라에라도 지원을 하든가 해서 재고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김욱기(64·사기리)씨도 "정부가 묵은 쌀을 가축용 사료로 사용한다는데 옥수수나 수수는 몰라도 뭔가 격에 안맞는 궁여지책일 뿐이다"고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