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스포츠 위상을 알리다-'장창선'
한국 스포츠가 세계 다양한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불과 얼마되지 않는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개최하며 중국과 일본에 이어 아시아권에서 스포츠를 이끄는 3대 국가로 도약했지만 60년대는 그렇지 못했다.
고교야구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60년대. 현재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 스포츠를 탄생시킨 야구와 축구, 농구, 배구 등은 일부 종목에서 실업리그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 종목조차도 세계 무대의 높은 벽에 부딪혀 스포츠 한국으로서의 위상을 알리지 못했다.
1960년대 잠들어 있던 한국 스포츠를 깨운 사람이 바로 태릉선수촌장을 지냈던 장창선(67)씨다. 장창선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레슬링 자유형 플라이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지만 1966년 미국 톨레도에서 열린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스포츠 세계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세계를 제패한 것은 장창선이 처음이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생이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지만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경인일보는 1966년 6월 21일자 지면에 '체육 한국을 과시', '시내는 또 하나의 경축의 '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경인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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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지역 스포츠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 '조재형'과 '홍수환'
보릿고개는 전년도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 지은 보리가 여물기 전 식량 사정이 좋지않아 굶주리며 보냈던 시기를 말한다. 보통 5~6월을 말하는데 일제 식민지 시기의 식량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안정되기 전까지 보릿고개는 서민들을 힘들게 했다. 경제뿐 아니라 이 시기는 정치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이 시기 반가운 소식 중 하나는 스포츠 스타들의 선전이다. 특히 이 시기를 살아온 경인지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회자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조재형과 권투 세계챔피언 홍수환이다.
경인일보는 1973년 11월 23일자 1면을 통해 조재형이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5일째인 22일 2시간27분30초로 결승선을 통과해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경인일보는 경기장 현장에 특파원을 파견하지 못해 외신을 인용해 발 빠르게 조재형의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 1974년도에는 전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던 홍수환의 밴텀급 세계챔피언 획득 사실을 경인지역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경인일보는 1974년 7월4일자 1면에 홍수환의 사진과 함께 '홍수환 세계챔피언 함락'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홍수환의 세계챔피언 소식을 비중있게 다뤘다. 비록 외신 기사를 번역하기는 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세계권투선수권쟁탈전 현장의 분위기와 홍수환의 챔피언 타이틀 획득까지의 역경을 전했다. 특히 대회를 준비하며 겪은 어려움 등을 사실적으로 전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수도권 시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 고난의 1960~1970년대 여성 스포츠인의 대표주자 '백옥자'
장창선을 비롯해 조재형과 홍수환 등 보릿고개 시절 경인일보를 통해 수도권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남자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면 여성 스포츠 스타는 누가 있었을까. 경인일보에 처음으로 비중있게 실린 첫 여자 스포츠 스타는 백옥자(60·여)다. 1970년 12월 14일자 경인일보의 전신인 연합신문 3면에는 '백옥자 투포환서 대회신'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백옥자는 18개국 2천500여명의 선수가 출전한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에 투포환 국가대표로 출전해 대회 5일째에 14m75로 대회신기록(종전 14m48)을 새롭게 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여곡절이 많은 이 대회에서 한국은 백옥자의 활약을 바탕으로 금 18개, 은 13개, 동 23개 등을 획득해 일본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수도권 시민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1960~1970년대 여자 스포츠 스타는 탁구 대표팀이다. 유고연방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 출전한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등은 중국을 3-1로 꺾고 한국 구기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비록 경인지역 선수들은 아니지만 경인일보는 1973년 4월 10일자 1면 톱기사로 한국 스포츠사에 잊지 못할 대기록을 세운 세 선수의 활약상을 세세하게 보도했다. 특히 현지 사정으로 인해 경기 사진을 구하기 힘들어 세 선수의 얼굴 사진을 어렵게 입수해 게재했다. 또 1면에 비중있게 실은 것은 물론 3면 우측 상단에는 '한국의 영광이자 2천만 여성의 자랑'이라는 긴 제목의 간단한 기사를 통해 수도권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인일보는 당시 지방지로는 이례적으로 세 선수의 경기 내용뿐 아니라 경기별 스코어까지 게재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