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최해민·김혜민기자]2차 산업의 한계, 외환금융 위기와 함께 한반도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벤처사업이 10여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기술집약이라는 고부가가치성을 무기로 '뜨던' 벤처들이 판로 없는 기술이라는 한계점에 부딪혀 한때 거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지난 세월동안 진화를 거듭한 벤처사업은 여전히 건실해 있었다. 경기지역 벤처사업 중심에 있었던 테크노파크(TP)들도 그간 새로이 진화하는 벤처업체들을 떠안은 채 요람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고, 세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중소규모 벤처기업들은 거품 논란을 거울삼아 판로를 개척하며 다시 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벤처 10년, 벤처의 태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시 찾아온 벤처붐을 세밀히 짚어본다. <편집자주> ■ 굴곡 많았던 벤처사업
벤처기업협회는 개인 또는 소수의 창업인이 위험성은 크지만 성공할 경우 높은 기대 수익이 예상되는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독자적인 기반 위에서 사업화하려는 신생중소기업으로 벤처기업을 정의하고 있다. 첨단 기술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업에 도전하는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이라고 볼 수 있는 벤처기업, 경기부흥이 한창이던 1990년대 중반 벤처기업은 전성기를 맞았다.
'한집 건너 벤처사장'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벤처가 붐이 인 것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조차 '자원이나 자본이 부족한 국내 현실에 반해 인적 자원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만큼 '기술집약형'이라는 요소가 국내 현실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별다른 자본없이 사무실과 컴퓨터만 있다면, 창업이 가능했던 벤처기업은 IMF 외환금융위기가 닥친 뒤인 1998년 2천여개이던 것이 2000년 한 해 동안만 2천500여개가 늘어날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고용시장의 불안이 벤처 창업의 길을 열어줬고, 외국 자본의 유연성이 창업의 기초가 되는 듯했다.
정부에서도 나서 벤처붐을 조성하는데 이바지했다. 얼어붙은 고용시장을 녹이기 위해 벤처창업 지원을 위한 각종 사업도 큰 폭으로 증가했고, 초기자본 지원이나 테크노파크 설립 등 벤처를 위한 환경도 조성되기 시작했다.
중대 규모 업체 간부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창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로도 얼마든지 '사장'소릴 들을 수 있는 게 바로 벤처였기 때문이다.
벤처 붐 당시 다니던 대기업에서 나와 소규모 벤처기업으로 이직했던 엔지니어 A씨는 "벤처중에서도 IT업계가 벤처 붐을 주도했었다"며 "아이디어와 컴퓨터 한 대만 갖고 업체를 차린 뒤 자본을 투자받아 사업에 성공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기술집약 사업이라도 실질적인 판로없인 불가능한 법, 기술이 있어도 팔 곳 없는 벤처업체들이 하나둘씩 문 닫기 시작하는가 하면, 벤처창업을 빌미로 한 각종 사기 범죄까지 판 치면서 국고는 누출되고 벤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A씨는 "벤처업체는 우후죽순 늘어났지만 어느 곳 하나 경영 원칙이 없었다"며 "특히 IT업계 벤처 창업자들은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었지 업체 재무구조를 살피는 법도 모른채 창업에 뛰어들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벤처기업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도 속속 나왔다. 벤처기업 육성이라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에 따라 지원금을 받기 위해 종이회사를 차린 뒤 보조금만 챙겨 달아나는가 하면 폭력조직이나 경제범들이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해 주가를 조작한 뒤 잇속을 챙겨 먹튀하는 범죄들이 대다수였다.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 벤처기업 경영에 뛰어들었다 도산하면서 자살을 선택하는 사업가들도 줄을 이었다. 이로써 벤처사업은 거품 논란에 휩싸였다. 판로 없이, 경영 철학 없이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분석도 속속 나왔다. 그렇지만 인적 자원을 주무기로 한 벤처기업은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육성 정책에 힘을 얻은 벤처기업들은 삼성과 LG 등 휴대폰,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 세계 시장에 견줄만한 대기업과 손을 잡고 협력업체로서 자리를 굳건히 하기 시작했고, 국내 경쟁력있는 산업 분야에서 그 힘을 발휘하면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
■ 경기지역 벤처의 메카, 경기 테크노파크
경기테크노파크(이하 경기TP)는 벤처붐이 조성되던 1998년 11월 안산시 사동 한양대학교 부지내 17만여㎡에 개원했다. 중앙정부가 25%(240억여원), 경기도가 20%(200억여원), 안산시가 55%(530억여원), 민간이 0.3%(3억여원)를 출연한 TP는 기술혁신거점 기관과 역량 강화를 통해 국내 최고의 첨단기술사업화 전문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산업기술단지 지원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설립된 경기TP는 지금까지 지역산업 혁신주체간 연계 등 지역혁신 거점 기능을 수행해 오면서 지역내 기술혁신역량 조사 및 평가·관리를 하고 있다.
또한 창업교육, 연구개발, 기술교육훈련, 시험분석, 기술경영지도, 지적재산권 확보 지원 등을 통해 벤처기업 등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취약한 영역을 보완해 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기술 진단, 중단기 기술지원, 시험분석 지원 등 모두 600여건의 기업 애로사항을 해소해 줬으며 지식경제부 지역혁신 거점 육성평가 위원회의 평가결과, 전국 17개 TP 중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전국 TP 중 최초로 기술개발지원 ISO9001인증을 획득했으며, 중소기업 지원사업의 표준 모델을 제시,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지난 상반기 현재, 경기TP 입주기업 현황을 보면 전자정보 통신 분야가 36개사로 가장 많으며 바이오 분야 19개사, 로봇 10개사, 자동차 부품 6개사, 기타 18개사 등이다. 7년 전인 2003년과 비교할 때 전자정보 통신, 로봇, 바이오 분야 업체가 크게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첨단 산업 분야가 기술혁신 거점의 핵심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 TP역할=경기TP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개발지원은 최근 있었던 '제5회 기업사랑 우수 혁신사례' 공모전 결과 대상을 수상한 것과 같이 우수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3천595종의 연구장비와 3천614명의 인력이 확보돼 있으며, 홈페이지와 플랫폼도 구축, 산학연이 보유한 인력·장비·정보 등 연구자원을 활용해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의 애로사항을 다방면에서 해결하고 있다.
현대 산업은 원천기술 확보와 이에 따른 지적재산권 획득이 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만큼 경기 TP는 도내 중소기업의 지적재산권 확보를 위한 선행기술 조사, 지적재산권 출원지원 등에 힘써 왔으며, 그 사업 추진성과 또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또한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중복 연구나 중복 투자를 사전에 차단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과제의 기술 특징을 원천기술과 비교, 기술의 가치를 사전 평가함으로써 지역 전략산업 육성과 발굴에도 힘써오고 있다. 특정 분야에 몰입하다보면 주변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기에 경기TP는 기술공급자와 기술수요자간 기술이전 중개 알선 등을 통해 공공 R&D 성과물의 확산과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지원에 힘쓰고 있다.
▲경기 TP 새로운 도약=2010년 경기TP는 지역 기술혁신의 거점화, 지식기반 선도기업 육성, 지역산업 경쟁력 강화, 경기TP 글로벌화 등 4대 목표를 세우고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TP는 갖가지 주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중소기업 기술혁신 역량 강화를 위한 기술개발지원으로 찾아가서 도와 주는 '기술닥터사업'은 TP가 국·공립연구소, 도내 기술(경영)지원기관, 산학협력단, 과학기술관련 기관 등 51개 기관·단체와 연계, 도내 중소 벤처기업(약 500개)을 대상으로 현장 기술지원, 시험분석, 유관기관 연계 지원 등을 돕는 사업이다.
단 1장의 신청서 지원으로 중소기업 기술애로현장에 51개 참여기관 고급인력(기술닥터)이 3일안에 방문(연계)하고, 1:1현장애로사항을 해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첨단 기술의 사업화를 위한 '기술사업화 지원'으로 경기지식재산센터는 특허스타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도내 중소기업의 지식재산권 확보를 위한 선행기술조사, 지식재산권 출원 지원, 성장 잠재력이 있는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특허선행기술조사, 특허출원 등을 통해 지역대표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다.
'지역혁신기관 연계 협력 활성화'를 통한 효율적 중소기업 지원으로는 지역내 연구 기반 조성을 위해 구축된 지역혁신센터(RIC) 등 연구기관의 고가 연구장비를 중소기업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경기도 지원기관 연구기자재 편람을 제작, 배포(e-book 병행 제작)하고, 중소기업에게 장비 이용수수료를 최대 80%까지 지원, 첨단 공용장비 운영과 시험분석 지원을 통해 중소기업 및 대학, 연구기관의 연구 개발과 생산 활동을 지원한다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TP는 고가의 시험분석 장비 운영을 통한 중소기업의 원가 절감 효과를 유도하고 중소기업, 대학, 연구기관의 중복 투자를 방지할 수 있다.
성공적인 'e-비즈니스를 위한 지원'도 병행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IT시스템, 즉 인터넷 회선, 네트워크, 서버, 방화벽, 스토리지, 솔루션 등을 통합·구축, 저렴한 비용으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One-Stop IT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입주 기업에 쇼핑몰 창업 지원을 통해 쇼핑몰 창업 활성화와 중소기업의 온라인 마케팅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경기테크노파크 중심의 '안산사이언스밸리 활성화'는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의 핵심 사업이 된다. 경기TP는 지경부의 산단지원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기관으로 설립 목적에 의해 경기도내 전 산·학·연·관의 기술혁신 네트워크를 구축, 지역혁신 거점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안산사이언스밸리는 경기TP를 중심으로 반경 1㎞내에 한양대학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등 국내 최고 산학연관의 근거리 기술혁신 네트워크로서 2010년 안산사이언스밸리 활성화 지원사업이 신규 사업으로 진행중이다.
사이언스밸리 활성화 지원사업은 안산시가 2억2천만원의 예산을 들이고, TP가 주관해 ASV 혁신기관인 한양대, KERI, KITECH, KTL, LG연구소 등이 참여한다. 주관자들은 혁신기관 협의회 운영, 협력사업 발굴 및 중장기 발전 방안 도출, 연차보고서 작성 및 홍보, 커뮤니티 활성화 등을 통해 사이언스밸리를 활성화하게 된다.
이를 통해 혁신기관 협의회 운영으로 협력사업 발굴 및 중장기적인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연구개발 환경, 사업성과 등을 정리한 연차보고서를 작성, 국내외에 홍보한다. 또한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 전략산업 중심의 안산사이언스밸리 활성화 포럼 개최, 국내외 방문객에게 ASV 기관투어 실시, 기업인을 위한 산학연 Gateway 운영 및 네트워킹 활성화, 전문가 교류 협의회(클러스터) 운영 및 클러스터 임직원 교육 등을 실시한다.
■ 벤처 르네상스, 다시 뜨는 벤처
그렇게 벤처는 시들해지고 있는가 했지만 최근들어 벤처는 다시 일어서고 있다. 지난 6월 현재, 벤처기업은 2만600여개로 집계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만5천400여개였던 것이 1년새 무려 3천700개 가량 늘어난 것이다. 벤처 신드롬이 일었던 2000년 한 해 동안 늘어난 벤처기업 수도 이보다는 덜한 2천500여개였다.
특히 지난해 9월 기준 벤처캐피탈협회에 신규 결성된 벤처투자조합수는 모두 48개로 결성 금액만 7천619억원에 이르며, 이는 2008년 같은 기간 33개 투자조합이 5천145억원의 펀드를 결성한 것과 비교할 때 어마어마한 발전을 보인 것이다. 더구나 연간 매출액 1천억원이 넘는 1천억 클럽 벤처기업 수도 2006년 102개였지만 2007년엔 152개, 2008년에는 202개로 늘었다. 한게임, 네이버로 유명한 NHN은 벤처기업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같은 벤처 르네상스는 정부의 과감한 지원정책과 휴대폰, 컴퓨터 등 첨단기기와 연관된 벤처업계가 뒷심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스마트폰이나 3D, 바이오 분야로 주력 산업 환경이 변화된 것은 과거 신드롬 때보다 벤처시장의 파이가 커질 것이란 예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 우려의 목소리도
최근 안철수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장이던 시절인 1999년을 회고하며 "벤처기업 95%가 망하고, 투자자들은 돈을 날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곤욕을 치렀었다고 전했다. 상황은 그로 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안 교수의 말대로 흘렀고, 벤처 거품이 빠지면서 많은 사업가들이 피해를 봤다.
10여년이 지나 다시 벤처열풍이 번지면서 안 교수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안 교수는 "벤처기업이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했으며, 구조적인 문제점도 고쳐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나 대기업의 수직적 하청구조 등은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욱 나빠졌다고 진단한 안 교수는 정부가 업체에 대한 자금 지원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조처를 통해 시장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 개선, 인프라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안 교수의 말을 정리하자면 국내 벤처기업이 성공하기 어려운 요인은 종사자들의 실력 부족, 산업 지원 인프라 부실, 대기업과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 등이라는 것. 대내외 시장 여건의 변화와 벤처기업의 자생력 강화없이는 진정한 '벤처 붐'이 올 수 없다는 말이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선 벤처업계 관계자들도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단기간의 이익 창출보단 기술을 중심으로한 기업가치 평가에 따른 자금지원 등 시장활성화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적 자원이 전부인 국내 산업현실에 10년만에 다시 불어온 벤처의 바람이 온풍이 되도록 구조적인 개선이 시급한 때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