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소개

[경인일보=김성호기자]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소주나 막걸리 등 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술은 각 지역별로 무수히 많은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중 인천시민에게 유달리 사랑받는 술이 있다. '소성주'라는 이름의 막걸리가 바로 그것.

'소성(塑性)'이란 남·북국시대 신라 경덕왕때 처음 붙여진 인천의 옛 지명이다.

인천시 부평구 청천2동에 위치한 인천탁주합동제조 제1공장(이하·인천탁주)은 바로 그 소성주를 전국에 공급하고 있다. 인천탁주는 지난 1938년 대화주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70여년에 이르고 있으며 1974년 5월 시대적 상황으로 인천지역 11개 탁주양조장이 연합해 설립됐다.정부가 1지역 1탁주공장 정책을 펴 주세를 효율적으로 거둬들이려고 내린 조치 때문이다.

인천탁주는 지난 1990년 전국 탁주업계 최초로 쌀 막걸리 '소성주'를 개발했다. 지금의 대표 브랜드다. 인천탁주의 소성주는 최근 불고 있는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인천지역 막걸리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좋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막걸리는 싸구려 술로 홀대받았다. 국세청이 최근 발표한 연도별 주요 주류 출고현황에 따르면 지난 1972년 막걸리는 전체 주류 출고량의 81.4%라는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다. 이쯤되면 '술' 하면 '막걸리'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수준이다. 반면 소주는 11.3%, 맥주는 5%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도에 들어서는 막걸리와 맥주가 서로 자리를 바꾸며 맥주가 차지하는 부분이 49%, 막걸리는 8.4%로 줄어들어 10%대 이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막걸리의 내리막은 계속되며 최근 5년동안 5%대를 유지하며 근근이 버텨왔다.

하지만 최근들어 막걸리를 찾는 발길이 점차 늘면서 2010년 1분기에는 약 12%대로 늘어났다. 이제는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특급호텔과 백화점 심지어 항공기 기내 서비스 시장까지 진출하는 등 다시한번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인천의 소성주도 다시 한번 부활의 날갯짓을 펴고 있는 것이다.

소성주는 효모를 96시간 증식해 배양하고 다시 4~6일이 지나면 제조한다. 막걸리의 맛은 숙성온도와 기간에 좌우된다. 소성주는 오랜기간 쌓아온 인천탁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적의 조건에서 제대로 발효시킨 생효모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소성주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막걸리와 달리 단맛을 거의 느낄 수 없다. 대신 신맛이 강하고 막걸리의 특성인 감칠맛과 상쾌한 청량미가 잘 어우러진 술이다.

인천탁주는 1992년 막걸리를 6개월 이상 장기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테트라팩'에 담은 멸균탁주 '농주(農酒)'를 출시하기도 했다. 93년에는 미국 LA와 시카고의 국제식품쇼에도 출품했으며 94년에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음료대회 주류분야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등 세계속에서 인천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사진/김범준기자 bjk@kyeongin.com

1990년대 말에 찾아온 IMF로 경제적인 어려움, 개인건강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고가주에서 저가주, 고도주에서 저도주로의 변화는 막걸리 부활을 예고했다.

이같은 변화를 감지한 인천탁주는 주류시장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최신 컴퓨터 제어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자동제국기'와 '주입기' 등의 시설을 도입하며 현대화와 자동화에 주력해 막걸리의 품질 향상과 다양화에 매진하고 있다. 인천탁주는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가는 인천의 막걸리 명가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한다.

※ 인터뷰 / 정규성 인천탁주대표

할아버지·아버지 땀이 깃든 곳… 혹시 무너질까 오로지 한길만

"한우물만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별다른 재주가 없는 제가 할 수 있는건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올해로 창업 72년을 넘어선 인천탁주합동제조 제1공장(이하·인천탁주)의 정규성(54) 사장은 회사가 오래도록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묻자 솔직한 답변을 들려줬다.

인천탁주의 설립연도는 1974년. 정부가 인천지역 양조장을 통합하는 조치를 시행하며 11개에 달하던 양조장은 현재의 인천탁주로 모였다.

11개 회사중 가장 오래된 회사인 대화주조(주)의 설립연도가 1938년이다. 다음으로 인천양조(주)가 1941년 생겨났다. 11개 회사중 50년을 넘긴 업체가 6곳이나 된다. 인천탁주는 장수기업들이 모여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 사진/김범준기자 bjk@kyeongin.com

정규성 사장은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대화주조(주)를 물려받은 건 지난 1988년. IMF로 기억되는 1997년에 인천탁주의 사장직을 맡게됐다. 인천탁주는 11개 업체에서 차례로 사장을 맡아 운영되는 형태다.

'그래도 뭔가 비결이 있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규성 사장은 "특별한 경영비법 같은건 애시당초 없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살림만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잘라 말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선친의 가르침대로 기본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돈이 새어 나가는 곳부터 찾아봤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던 각종 모임들을 모조리 정리했다. 즐기던 골프도 그만뒀다.

탁월한 경영으로 회사의 수익을 늘리기에는 당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고 고백했다. 무리한 사세 확장보다는 살아남는 것, 생존 자체가 무엇보다 급했다.

트라우마 때문일까? 정 사장은 "부모가 어렵게 키워놓은 회사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다"고 말했다.

수백억원대 자산가가 어느날 갑자기 막노동을 하고있는 경우도 봤다고 덧붙였다. 솔직히 그 자신도 그런 운명을 밟게 될까 너무 두려웠다. 그럴때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그는 "막걸리 공장 하나 못 끌어가면 분명 바보가 틀림없을 거다"고 자책했다. 부모님이 물려준 것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어딜가더라도 성공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기반이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한 사업마저도 실패한다면 더이상 갈곳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그의 책임감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부모에게 회사를 물려받는 것에 대해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에 대해 정규성 사장은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대를 이어 가업을 지켜가며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이런 작은 전통과 역사가 사라진다면 세상의 이야깃거리 하나가 없어지는게 아닐까요?"라며 되물었다.

오히려 그는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를 더 걱정했다. 지금의 인천탁주가 가지고 있는 자본력과 마케팅기법으로는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하루에도 몇번씩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면 구조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정 사장은 막걸리의 재미는 다양성에 있는데 대기업이 진출에 성공해 소수의 브랜드가 전체 시장을 지배하는 재미없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문화속에서 질좋은 여러가지 막걸리가 소비자에게 공급되길 바라는 욕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