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전상천·민정주기자]천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 눈 앞에 다시 되살아난 '원효 길'.

원효에게 길은 배움이요, 구도요, 제자를 만나 설법하고 민중을 생명으로 인도하고, 끝낸 열반으로 나아가는 삶 그 자체다.

원효와 함께 가는 길은 우리에게 역사와 문화를 익히고,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깨닫고, 길에서 사람을 만나 대화속에 지혜를 얻고, 즐거움에 영혼의 맑음을 회복하는 여정이다.

경인일보 창간 50주년 탐사기획 '길에서, 원효를 만나다'에선 부처의 가르침과 불교 유산들과만 조우하지 않는다는데 큰 가치가 있다.

▲ 문경서 신라시대 옛길로 알려진 하늘재를 향해 올라가던 중 되돌아본 고갯길. 지금은 신작로가 된 이 옛길을 오르며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원효가 전쟁 등으로 지친 신라 백성들을 그리워하며 생각에 잠겼을 굽잇길.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국내 최초로 탐사한 원효 길에선 경주 석굴암 등 세계문화유산과 각연사를 비롯한 수백여개의 천년사찰에선 옛 사람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여져있는 역사·유물을 만날 수 있다. 또 속리산 등 국립공원에선 유려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라게 되고, 자연의 일부가 된 문경오미자체험촌 등지에선 사람 내음이 물씬 밴 지역 농촌공동체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문화·농촌관광 길이다.

'1천300년이 지난 지금 원효가 또다시 구도의 길을 떠난다면 어떤 길을 걸을까?'

취재팀은 이번 탐사 취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원효대사 순례길' 복원을 위한 용역을 맡고 있는 한국관광개발연구원의 1차 보고서에서 채택한 노선을 뒤쫓았다. 원효가 다녀갔던 길이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고 빈약한 역사자료, 향토학자, 민간전설 등을 짜맞춰 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 취재팀은 당대에 원효가 다시 순례의 길을 떠날 때 지나갔을 행적을 현실에 맞게 재구성했으며, 우리 산천을 더 밀도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남겨진 여지(?)를 충분히 활용했다. 원효 길은 한반도 남쪽을 사선으로 가로질러 696㎞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효가 태어난 경산시부터 시작된 탐사길은 대중불교를 발흥시켰던 원효의 경주, 신라시대 사찰이 곳곳에 산재한 대구,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안동 하회마을을 거쳐 문경 하늘채길, 남한강이 도도히 흐르는 여주 신륵사, 원효가 깨달음을 얻은 평택·화성,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있는 수원까지 대장정이다.

▲ 경산시립박물관 앞에 서 있는 삼성현 중 원효의 동상 전경.

■ 세계문화유산의 길=원효의 발자취를 거슬러 가다보면 우리는 천년의 시간이 지어낸 세계적 문화유산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첫음 만나게 될 세계문화유산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 창건, 774년 혜공왕때 완공된 석굴암. 토함산 깊숙한 곳에 동해를 향해 앉아있는 석굴암은 국보 제24호로 지난 1995년 12월 사적·명승 제1호인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에겐 가장 친숙한 문화재다.

특히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지난 2000년 12월 신라천년(BC 57~AD 935)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불교유적, 왕경(王京) 유적이 잘 보존돼 있어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올 7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 안동 하회는 양반씨족마을의 대표적인 구성 요소인 종가, 살림집, 서원과 서당, 그리고 주변의 농경지와 자연경관 등 유형유산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다 의례와 놀이, 저작, 예술품 등의 정신유산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화성 용주사 인근의 조선 왕릉과 동양 성곽의 백미인 수원 화성행궁 등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어 역사관광 길론 최고로 손꼽힌다.

■ 천년사찰 순례의 길=대중불교를 열었던 원효가 만들거나 그를 모시고 있는 천년고찰은 원효길의 백미다. 많은 사람들이 천년사찰을 만났겠지만 각 절마다 전해지는 전설과 설화들을 엮어보면 원효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있어 문득, 나와 함께하고 있는듯이 느껴질 정도다. 신라 무열왕7년(661년)에 원효가 창건한 경북 경산시 용전리 '반룡사'는 당대의 석학 이인로가 시로 표현했을 만큼 아름답다.

원효와 그의 아들 설총의 사랑이 물씬 배어있는 경주 '분황사, '삼국유사'에 나오는 사찰 중 현존하는 몇 안되는 포항 '오어사', 남한강변의 천년고찰인 여주 '신륵사' 등 경주~평택구간 20개 시·군에 470여개의 사찰이 자리를 잡고 있을 정도다.


■ 국립공원의 길=하늘재는 신라 아달라왕 3년(156)에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고갯길이다.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신라 경순왕의 마의 태자와 덕주 공주가 패망의 한을 품고 이 고개를 넘었다는 전설이 서려 뜻깊다.

해발 525m의 하늘재를 맞대고 월악산 vs 문경새재 도립공원이 위치,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월악산공원은 다양한 탐방코스가 개설, 스스로 길을 정해 산을 돌아볼 수 있고, 야영장은 먼 길을 걸어온 여행자에게 충분한 쉼터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에서 조령(鳥嶺)이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는 문경새재도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가던 선비들이 걸었던 옛길과 맨발 산책이 가능한 새길이 공존,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고, 영화촬영지도 큰 인기다.

■ 농촌공동체의 길=원효 길 여정에서 만나 농촌마을은 여행에서 기대하는 모든 즐거움이 밀집돼 있다. 이는 농촌마을의 구성원 모두가 한 마음이 돼 공동체를 형성, 협력하며 농촌 부흥을 위해 자신들의 산과 들과 열매를 아낌없이 주기에 가능한 것.

원효길을 따라 형성된 전국의 농촌체험마을에 들러 숙박을 청한 뒤 도시인들이 즐길 수 없는 농촌 천국의 맛을 고스란히 선물 봇따리로 챙길 수 있다.

※ '원효길' 로드뷰

"한걸음에 도착한 골굴암 동자승의 해맑은 얼굴"

처서(處暑)에 자리를 뺏길 것이 우려된 여름이 연일 폭염을 내리던 지난 8월22일 오후 2시께,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은 수원서 '길에서, 원효를 만나다' 취재를 위한 대장정에 올랐다.

쌍용차가 협찬해 준 렉스턴 차량에 몸을 실은 특별취재단은 선팅이 안된 차창을 통과한 태양광이 작살처럼 팔뚝에 내리꽂히는 더위를 뒤로 한 채 4시간만에 천년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도착했다.

▲ 경북 경주시 양북면 감은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세워진 2기의 화강석제 석탑 전경.

원효와의 첫 조우를 떠난 취재팀은 석양이 내리던 오후 6시께 경주 골굴암(骨窟庵)까지 논스톱으로 달렸다. 먼 동해를 바라보고있는 마애여래불좌상 등지에선 저녁 예불이 한창이었다. 함월산 중턱에 자리잡은 선무도(禪武道) 총본산인 골굴사(骨窟寺)는 신라불교 문화가 번성하던 6세기께 서역(인도)에서 온 광유(光有)스님 일행이 깎아지른 거대한 석회암 전면에 보물 581호인 마애여래불좌상과 12개 석굴에 가람을 조성, 법당과 요사로 사용하고 있는 유일한 석굴사원이다.

머리를 파르라니 깎은 10대의 어린 스님들이 예불을 드린 뒤 유명 스포츠용품 상표 로고가 그려진 흰 고무신에 의지, 해맑은 얼굴로 쌀을 들고 내려가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발길을 돌려 동해 문무대왕릉을 따라 달려가던 길에서 만난 감은사지 탑과 절터. 어둠이 짙게 내린 감은사지엔 왜병으로부터 신라를 지키려 했던 문무왕의 유지가 찬연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다가 부르는 소리에 길을 따라 내려와 마주한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 용이 돼 왜구를 막겠다던 대왕과 신라백성, 민중을 위해 스스로 파계하기까지 했던 원효는 어쩌면 그리 닮았을까 생각했다. 만파식적의 소리를 머금은 파도소리와 함께 원효가 내뿜는 달빛이 만든 금구술을 휘감은 대왕암에는 금방이라도 문무왕의 화신인 용이 튀어 나와 우리를 껴안을 것 같았다.

누구나 첫 발을 내디딜 때엔 원대한 포부와 희망을 품는 법. 바다는 그 누구의, 아무리 큰 포부라도 모두 넉넉히 품어낼 듯 우리를 향해 아우성 쳤다. 근대 이후 누구도 가기를 자처하지 않은 '원효 길'을 가려는 취재팀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사진/조형기편집위원 hyungphot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