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55·나그네집 원장) 목사는 이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후회는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뿐"이라며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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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그네집은 나의 운명
충남 홍성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 3급인 장애인이다.
그는 어린 시설 외롭고 힘들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장애인체전을 구경하러 다니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김 목사는 자신말고도 '외로운 장애인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항상 자신보다는 더 힘들고 외로운 이웃들을 생각하는 김 목사는 10대 후반 어린 나이에 서울의 한 액세서리 공장에 취업하게 된다. 워낙 생활이 어려웠던 터라 친구와 함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장애인이란 핸디캡을 극복해 나가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했다. 그러나 갑자기 김 목사에게 힘겨운 상황이 찾아왔다. 어려움을 함께 하던 장애인 친구가 자살을 한 것이다. 김 목사가 잠시 몸이 아파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김 목사에게 돌아온 것은 자살한 친구의 유언장이었고 유언장에는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그러나 죽음은 평등하다"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 목사는 친구의 유언을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세상은 변할 수 있고 장애인들도 노력만 한다면 언제든지 재활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 목사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하남시에 '나그네집'을 설립하게 된다. 그때 김 목사의 나이는 겨우 20대 후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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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갈 데 없던 나그네집
김 목사가 지난 세월 나그네집을 꾸려온 과정을 생각하면 정말 파란만장했다. 미사리의 작은 축사를 개조해 겨우 터전을 마련했지만 개발에 밀리고 주민들에 밀려 갖은 핍박과 설움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미사리에서의 삶은 나은 편이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장애인들이 편하게 쉴 수 있었던 때가 그 당시였기 때문이다.
몇년전 미사리에 있는 나그네집 터가 택지개발이 되면서 이들의 안식처는 위기에 봉착한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보상금으로는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 수도 없었다. 간신히 지인의 소개로 하남시의 한 식당을 월세로 얻었지만 이마저도 주위의 반대로 또 다시 이사를 가야 했다. 이마저도 보증금 5천만원을 사기 당하고…. 이후 다섯 차례의 떠돌이 생활이 이어졌다. 살만 하면 쫓겨나고, 또 살만 하면 쫓겨나고…. 찬송가를 부르면 이웃들이 인근 파출소로 신고를 하고, 이들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도로를 막아서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것은 장애인들이었지 그들은 아니었다. 그저 어디 조용한 곳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고 싶었다. 김 목사는 그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렇게 해서 하남시 하사창동에 지금의 새 보금자리를 얻게 됐다. 물론 지금도 이웃들과의 어려움도 많지만 그래도 발뻗고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자체에 김 목사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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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김 목사는 "요즈음 민간인 장애인 보호시설이라고 하면 먼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인권의 사각지대', '원장의 횡포', '지원금 횡령' 등…. 이런 소식이 들리면 한 순간에 나그네집에 대한 후원은 끊긴다. 간혹 자식같은 장애인 식구들에게 혼이라도 한번 칠 때면 무엇보다 오해를 살까봐 걱정이 앞선다.
김 목사는 과거보다 지금의 현실이 더 어렵다고 설명한다.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들을 따로 분류해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다.

결국 광주시 퇴촌의 한 주택을 구입해 지체장애인 20여명이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 여기에서도 동네 주민들의 반대와 시설 인허가 문제 등 또다시 험난한 일정들이 김 목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설이 법적 조건에 맞춰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김 목사는 "법은 행동이고 도덕은 양심"이라고 주장한다. 법은 최소한의 법이 돼야 함에도 현실적으로 힘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관할 시청과 협조조차 안되고 있는 현실때문에 현재 김 목사와 장애인들은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3일 '나그네집'에서 만난 김 목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아침 일찍 장애인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김 목사는 크지 않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그저 장애인들이 스스로 산에 올라 다리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스스로 식사를 할 줄 알고 대소변을 가릴 줄 아는 아주 기초적인 생활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이 될 수 있는 후원이 가장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까지 사회의 약자로 오해만 받으며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김 목사는 나그네집 식구들을 위해, 세상은 평등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전국에 있는 대학을 돌아다니며 '재활학' 강의에 나서고 있다. 후원 문의:(031)791-9049. 홈페이지(www.nagnezi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