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민재기자]지난 27일 오후 인천시 서구문화회관 국악교실. 곱게 차려입은 2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장구를 두드리며 민요 배우기에 한창이다.

낭랑한 목소리 사이로 남자 목소리가 들려 다시 강의실을 살펴보니 맨 뒷자리에 한복을 입은 아저씨 1명이 눈을 지그시 감고 '소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갈라질듯 갈라지지 않는 목소리와 평범하지 않은 복장을 보니 취미로 국악을 배우는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강의가 끝난 뒤 북이며 장구며 마이크 등을 정리하고 나서야 가장 마지막으로 교실을 떠났다. 그리곤 다음달에 국악대회가 있다며 문화회관 밖의 벤치에 앉아 함경도민요 '신고산 타령'을 연습했다.

▲ /사진 김범준기자 bjk@kyeongin.com

"신고산이 우루루 함흥차 가는 소리에 구고산 큰애기 밤봇짐만 싸누나 어랑 어랑 어허야 어허야 더어야 내 사랑아…."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이 아저씨는 일터에 나가야 한다며 서둘러 서구문화회관을 나섰다. 해질 무렵이 되자 그는 인천시 서구의 한 파출소에 경찰관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위암을 극복하고 서도민요 인간문화재의 전승자가 돼 화제인 인천 서부경찰서 가석파출소 성백종(53) 경사의 화려한 '이중생활'은 이렇게 4년째 계속되고 있다.

해군 하사관과 해경 출신인 성 경사는 1990년 인천지방경찰청 형사기동대로 전직해 제2의 경찰관 생활을 시작했다. 배만 타고 사람과의 접촉이 거의 없는 해경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였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2004년 여름 위암 3기 판정을 받은 것. 당시 의사는 성 경사에게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을 것이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같은해 11월 성 경사는 의사의 말을 뒤로 한 채 위 전체를 드러내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이듬해 1월부터 6개월 동안 한달에 5번씩 항암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115㎏이었던 체중이 75㎏으로 줄고 머리카락은 다 빠져버렸다. 머리카락과 함께 암세포도 사라졌지만 자신감도 사라졌다.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암환자 대부분이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위가 없어 밥 먹는 것조차 고된 일이었다. 치료가 끝나 다시 경찰서로 돌아온 성 경사는 바닷바람이 암 치료에 좋다는 말을 듣고 취미생활도 할겸 매주 바다 낚시를 하러 다녔다. 한 달에 수십만원을 들여 아내 문춘순(51)씨와 영종도에서 2년간 낚시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성 경사는 운명처럼 국악을 만나게 됐다.

"2007년 3월이었습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석남동에서 순찰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국악소리가 들려왔어요. 너무 배우고 싶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국악원으로 들어갔죠."

그는 국악원 강사의 소개로 서구문화회관의 국악교실을 신청했다. 성 경사를 국악의 길로 이끈 이름모를 그 국악원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취미로 국악을 시작했던 성 경사는 '소리'의 매력에 빠져 근무가 없는 날이면 인천과 서울의 명창이란 명창은 다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가르침을 구했다. 이때부터 경찰관과 국악인을 넘나드는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위암이라는 시련은 성 경사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경기민요, 서도민요, 각설이, 시조 등 가리지 않고 연습에 매진했다.


성 경사는 좀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국악을 배우기 위해 지난해 간석동의 성산효대학 국악과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국악과 주임교수인 서도소리 인간문화재 이문주 명창을 만나 최근 이 명창의 전승자가 됐다.

목회자이기도 한 이문주 명창은 지난 1973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김정연 명창에게 발탁돼 1986년 서도민요 이수자가 됐다. 이후 2009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 황해도 평안도 등 관서지방의 향토 가요인 서도민요는 '수심가'를 비롯해 '엮음수심가',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몽금포타령' 등이 대표곡이다.

"경찰관이 인간문화재 전승자가 된 것은 아마 전국에서 최초라고 알고 있어요. 농담이지만 이제 슬슬 인간문화재까지 욕심나네요."

성 경사는 실력을 인정받아 크고 작은 대회에 출전해 상까지 받았다. 이 수상경력으로 보통 2년 걸리는 국악강사 자격증 1급도 1년만에 얻게 됐다. 현재 그는 오는 11월 이문주 명창의 이수자 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수자 시험을 통과하면 이 명창의 뒤를 이어 서도소리 보유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된다.

성 경사는 월요일과 수요일은 서구문화원 국악교실에서 장구와 소리를 배우고, 월요일과 목요일은 성산효대학에서 국악수업을 듣는다. 또 각종 국악대회를 찾아다니면서 수상경력을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다.

성 경사는 지난해 여름 '경기도 여주이천국악대회'에서 단체 3등 수상을 했고 같은해 12월엔 '이문주 명창 국악대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다음달 2일 있는 '안산국악대회'를 준비중이다. 이 무대에서 '궁초댕기'와 '신고산타령'을 부른다.


그는 경찰 임무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수업과 근무가 겹치는 날엔 생각할 것도 없이 지구대로 출근하는 것이 성 경사가 세운 원칙이다. 소리도 중요하지만 다른 직원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당연한 이유에서다. 특히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주민들에게 친근함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이라고 해서 너무 딱딱하게 굴면 안됩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면 노래도 한곡 뽑고, 시원한 막걸리도 사드리고 합니다. 그래서 제 별명이 '얼씨구 경찰관'입니다."

성 경사의 꿈은 소박하다. 서도민요 전승자도 좋고 인간문화재도 좋지만 욕심내지 않고 작은 국악원 하나 차려 이웃 주민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다.

"지금 서구문화원 국악교실에도 암에 걸리신 분들이 몇 분 계세요. 저는 그 분들에게 오히려 남들보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소리내라고 합니다. 소리를 통해 암을 잊고 살았더니 제 몸도 암을 이겨냈습니다. 경찰관 생활을 마치고 나면 소외된 노인들과 이웃들에게 희망의 소리를 들려주는 국악원을 하나 차리고 싶어요." 경찰 근무복과 한복을 갈아입으면서 두 가지 인생을 살고 있는 성백종 경사. 하지만 그는 '경찰관', '서도민요 전승자' 등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상관없이 '얼씨구'라는 추임새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한 명의 '소리꾼'으로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