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73번째 맞대결이지만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이후 양국이 조광래감독과 알베르토 자케로니(이탈리아) 감독에게 새로 대표팀 지휘봉을 맡긴 뒤로는 첫 격돌이다.
한국은 조광래 감독 취임 이후 A매치에서 1승1패, 일본은 자케로니 감독의 공식데뷔전이었던 지난 8일 아르헨티나와 친선경기 1-0 승리를 포함해 최근 3연승 중이다.
자존심 건 한국과 일본의 친선경기에서 주목할 만한 관전포인트를 살펴본다.
◇조광래-자케로니 지략 대결 승자는
이청용(볼턴)이 '만화 축구'라는 표현을 쓸 만큼 조광래 감독은 선수들의 유기적 움직임과 완벽한 호흡을 강조한다. 대표팀 소집 때마다 선수별로 전술적 움직임을 세세하게 적은 일명 'X-파일'을 나눠줘 숙지토록 하고 훈련을 진행했다.
자케로니 감독은 한국 원정길에 오르기 전 아르헨티나와 친선경기를 준비하면서수비 강화에 집중했다.
포백을 기본으로 수비수-미드필더들이 구축한 견고한 지역방어와 최전방 공격수들의 적극전인 수비 가담으로 일본은 결국 강호 아르헨티나의 공세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승리를 챙겼다.
일본 언론은 이탈리아의 '빗장수비(카테나치오)'를 빗대어 이탈리아 출신 새 감독의 수비 전술에 '자케나치오'라는 신조어를 갖다 붙이며 대표팀의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조광래 감독은 이번 일본과 격돌을 앞두고 '포어 리베로(Fore Libero)' 시스템의 활용을 예고했다.
포어 리베로 시스템은 중앙 수비수 세 명 중 하나를 최전방 수비진영보다 앞서 배치해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까지 소화하도록 한 변형 스리백의 일종으로, 미드필드에서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역할은 조용형(알 라이안)이 맡을 가능성이 큰데, 조용형이 전진 배치되면서수비라인은 스리백에서 포백처럼 가동되게 된다.
하지만 조 감독은 일본의 전력 탐색을 위해 일본-아르헨티나와 경기를 직접 관전하고서는 다시 고민 중이다. 조 감독은 "일본이 미드필드에서 패스 횟수를 줄이고빠른 전진 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더라. 측면 공격수들은 중앙으로 미리 빠르게 침투하면서 플레이를 하고 오히려 (처진 스트라이커인) 혼다 게이스케(CSKS모스크바)가 측면으로 움직인다"면서 "이럴 땐 오히려 스리백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일단 스리백과 포백을 병행해 준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한국과 대결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할 때처럼 수비에 방점을 둔 경기 운영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조 감독의 전술 선택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경기 중 상대의 전술 변화에 얼마나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조광래 감독은 "이번 한·일전의 관전포인트는 우선 미드필드 싸움이 될 것이다. 누가 미드필드에서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세밀한 패스를 바탕으로 한 미드필드 플레이가 강했다. 일본대표팀에는 엔도 야스히토(감바 오사카), 나카무라 겐고(가와사키), 아베 유키(레스터시티), 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 등 재능있는 미드필더들이 많다.
중원 장악을 위해 조 감독이 내놓은 대책이 주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포지션 변화다.
조 감독은 일본과 경기에서 박지성을 측면이 아닌 중앙 미드필더로 내보낸다.
박지성을 2선으로 끌어내려 중원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동시에 박지성에게는 포지션 변화로 컨디션 회복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조 감독의 복안이다. 전방에 세 명의 공격수가 있지만 2선에서 침투하면 박지성도 쉽게 공격하면서 팀 전체의 공격력도 배가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밝혔던 박지성도 "이번 한·일전이 경기력 회복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K-리그 득점 1위 유병수, 마지막 기회 살릴까
조광래 감독은 이번에 유병수(인천)와 함께 최성국(광주상무), 김신욱(울산) 등K-리그에서 활약하는 공격수 3인방을 불러들였다. 당장 선발 출전은 아니지만 조커로 쓸 수 있는 자원들이다. "K-리그를 통해 꾸준히 지켜봤는데 컨디션도 좋고 플레이도 잘하고 있다"는 것이 조 감독이 이들을 뽑은 이유였다.
유병수는 지난해 6월 오만과 친선경기에서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부름을받고 생애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게다가 교체인원이 12명이나 돼 A매치로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대표선수로서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유병수는 올해 정규리그에서 20골을 넣어 에닝요(전북.13골)와 오르티고사(울산.12골) 등 쟁쟁한 외국인 골잡이들을 제치고 득점왕을 눈앞에 뒀다. 태극마크도 다시 달게 됐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마지막 기회"라고 귀띔할 만큼 유병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이번에 확실하게 조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2008년 10월 이후 2년 만에 대표팀에 뽑힌 '리틀 마라도나' 최성국과 프로 2년차의 장신(196㎝) 공격수 김신욱도 조광래 감독의 재평가를 받으려고 일본과 격돌을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