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종화기자]여행 기사를 준비하며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한적한 시골길, 산 언저리를 걷는 길, 시원한 바다나 강가를 거닐 수 있는 길, 문화재를 보며 거닐 수 있는 길 등 다양한 길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잊고 지나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 주변에도 사색을 하거나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산책하듯 거닐며 즐길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 책에서 만난 길 화성 '성곽길'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성(城)이 있다. 또 최근에는 그 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광 코스가 개발되고 있다. 얼마 전 다녀온 서산 아라메길 또한 해미읍성을 중요한 트레킹 포인트로 두고 개발된 곳이다.

수원 화성도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재미있는 코스가 될 수도 있지만 도심이라는 이유 때문에 코스 개발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화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9년 군 제대 즈음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효형출판사)이다. 정조가 서울에서부터 행차해 오는 길을 묘사한 행차도(반차도)를 해석한 이 책을 보며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많은 생각을 했었고, 당시 갓 조성된 화성 안 거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화성 성곽길만 순례했을 뿐 오늘 소개할 행궁동과 같이 성곽 안의 모습을 거닐며 즐기지는 못했었다.

 
 

■ 어린 시절 추억을 찾아 되새겨 보는 길

행궁동 길은 수원 화성과는 사뭇 다른 길이다. 수원 화성이 조선 중기 성곽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길이라면 행궁동은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행궁동 길 또한 고교 시절 지나다니던 길이었지만 트레킹이 유행하는 요즘 거니는 행궁동은 번잡하지 않고 소박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 화홍천 주변에는 낮은 높이의 집이 자리하고 있고, 가끔 차량이 지나다니지만 사람들이 삼삼오오 여유 있게 거니는 길이다. 거닐다 지치면 잠시 들러 쉴 수 있는 화성 성곽이 있는 점도 이곳의 매력이다. 수십년까지는 아니지만 10여년이 넘은 집들이 빼곡히 자리한 동네의 좁은 골목길을 거닐 때는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함께 숨바꼭질하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또 지금은 대형 유통매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찾아 보기 힘든 문구사, 다리미가 많지 않았던 시절 서민들이 이용하던 다림방, 여인숙 등의 간판이 남아 있어 산업화가 한창이던 20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 추억이 예술과 만나다 '행궁동 길'

이런 소박하고 아담한 길이라고만 생각했었던 행궁동 길이 새롭게 변하고 있다. 자연도 계절이 변하면 다른 모습을 보여주듯 행궁동도 시대에 맞는 옷을 입는다. 새롭게 변하는 행궁동의 모습을 알게 된 것은 2개월여 전 만난 '대안공간 눈' 이윤숙 대표로부터였다.

수원에서 이름 있는 입시 전문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이 대표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던 행궁동 길에 예술을 접목시켜 추억을 되새기며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길로 만들고 있었다. 당시 이 대표는 '대안공간 눈' 주변 골목길에 국화와 해바라기를 심고 예술인들과 함께 주민들이 원하는 소재의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완성된 작품은 아니었지만 시멘트가 드러나 있던 벽과 담장에 그려지던 그림은 작품성을 떠나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 때문에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최근 담장과 벽화에 그린 그림들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길을 찾아 산책에 나섰다.

 
 

■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길

보름여 전에 인천에서 수원까지 찾아 온 지인과 함께 행궁동 길 산책에 나섰다. 그 분이 원한 것은 화성 성곽 순례였지만 가을과 어우러진 좁은 골목길, 가로등의 침침한 불빛에 비친 행궁동 길이 사뭇 운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턱대고 모시고 갔었다. 장안문부터 화홍문까지 거닐며 성곽길의 운치를 즐긴 후 곧바로 행궁동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으슥해 보이는 길 중간중간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며 그 분은 "새로운 시도네?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림들인가요?"라며 동그란 눈을 한 채 물어 봤다. 그림 대부분이 그림이 그려진 벽과 담장의 소유주가 원하는 소재로 그렸다고 말하자 "바로 이게 참여 예술이구만"이라고 말하며 박수를 쳤다. 작가들이 우체통에 그린 그림과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써서 만든 나무로 된 문패를 보고 예쁘다며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행궁동 길을 거닐고 난 후 낮과 밤의 모습을 즐기기 위해 가끔씩 산책을 나가고 있다. 또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어떤 모습을 하고 기다릴지 기대되는 길이 행궁동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