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전상천기자]1960년도에 창간된 경인일보(당시 인천신문)는 경기·인천지역의 기업과 시민, 그리고 정부의 경제정책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다각도로 조명, 전달해 왔다.

1962년 화폐개혁 이후 수원연초제조창 기공 등 기업 역사는 물론 경부고속도로 등 한반도 전역을 물샐틈 없이 연결해 온 물류의 동맥인 도로의 개설 역사까지 한 점의 가감없이 다루고 있다. 특히 경인일보는 4·19 민주혁명으로 자유당 독재정권이 붕괴된 직후인 1960년 민주주의 실현의 기치를 걸고 인천항 인근 물류창고에서 창간된 점을 감안할 때 경제뉴스 전달에 그 어느 매체보다 주력함은 필연적 인연이 있는 듯하다.

▲ 인천개항 100주년 기념식 축하차량 행진장면.(왼쪽), 1970년대 쌀 대신 밀가루로 막걸리를 빚은 수원탁주 제조공장 전경.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경인일보 창간 초기인 196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변천은 크게 경제발전을 앞당기기 위한 계획발전기와 1987년 민주화시기 이후 경제, 1998년 IMF 위기 및 재도약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우선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경제계획발전기엔 화폐개혁과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경제발전을 위한 기본 토대를 놓았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어 199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삼성과 LG, 현대 등 우리나라 굴지의 그룹사들과 중소기업들의 큰 약진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는 힘이다. 이어 한국경제에 쇼크를 안겨준 1988년 IMF 경제위기다. 많은 기업이 부도 등 퇴출당했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쫓기던 때이다. 이어 2000년도부터 한국경제는 다시 재도약의 시기를 맞게 된 원인과 과정, 그 대안을 제시, 지역경제의 주춧돌이 돼 왔다.

# 발전계획경제와 화폐개혁

경인일보는 창간 보름 만인 9월 1일자에 POL(미군유류항) 노조원의 연좌시위를 담은 '살길 찾는 勞者의 絶叫'를 실었다. 당시 인천 POL 작업권을 갖고 있는 평화공사측이 노조의 임금인상을 거부하면서 촉발된 70일간의 시위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이를 시작으로 경인일보는 5·16 쿠데타가 성공한 뒤인 1962년 11월 6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대장 승진과 함께 시작된 국가발전 위주의 계획경제를 집중 보도했다.

당시는 우리나라 경제의 주춧돌이 될 주요 경제정책이 봇물처럼 쏟아진 기간이기도 하다.

우선 같은 해 12월 3일 오랫동안 써왔던 '단기'를 '서기'로 통일해 쓰기로 해 시간을 일치시켰다. 모든 경제행위의 시간이 통일된 시점이기도 하다.

정부는 1962년 1월 13일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발표했고, 3월 24일 최고의장 박정희는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한 뒤 같은 해 6월 10일 제2차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11월 12일 김종필 주도로 한일비밀회담을 통해 무상공여 30억달러, 차관 3억달러를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대일청구권 소송을 마무리했다.

특히 당시 6월 11일자 사회면 머리기사는 '통화개혁단행과 시중의 표정'을 담았다. 당일 보도내용에 따르면 상가는 거의 철시했고, 이날 밤 12시까지 구화폐 신고를 하기 위해 시중은행과 동사무소 앞은 장사진을 이뤘다고 전했다. 또 화폐개혁은 구권과 신권이 10대1로 교환되고, 50환 이하의 구화는 10대1로 당분간 통용토록 했으나 실제 거래는 많지 않았다고 소개한다.

초기엔 경기도가 4억원 규모 재원을 1천69개 기업에 지원하는 중소기업육성 방안을 보도하는 등 경제정책에 대한 밀착보도를 수행했다. 또 1964년 설탕·밀가루·시멘트 등 이른바 삼분사건에 이어 1965년 6대 재벌에 대한 금융 특혜사실이 드러나 조흥과 제일은행장이 경질되는 등 특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어 수원연초제조창 기공(1967년 6월)과 삼성전자 개토식(6월 16일) 등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에 대한 역사를 기록했다. 1960~70년대 농림부와 자치단체 주최로 날짜와 시간을 정해 일시에 쥐잡기 운동을 벌이던 시절이 기억날 것이다. 그런 쥐의 모피를 해외로 수출한다는 경인일보 1972년 2월 5일자 기사가 눈에 띈다. 시흥군 과천면 문원리에 있는 한국모피공업주식회사(회장·조병철)에서 쥐의 모피로 밍크를 능가할 고급 의류지를 생산, 수출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신정부가 1972년에 강제한 기업사채 신고 장면 등은 50년의 역사가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경제뉴스다.

 
 

# 경제의 혈맥, 고속도로 등 SOC건설

경인일보는 1967년 6월 경인철도 복선공사 완공을 보도한 데 이어 1969년 7월 경인고속도로 완전개통, 이어 1968년 2월 서울~수원 1공구 구간을 시작으로 공사가 시작돼 2년 뒤인 1970년 7월 개통된 경부고속도로까지 한반도를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철도 등 SOC 발전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 1973년 11월 21일 경수간 고속화도로가 개통된 데 이어 1974년 8월 경인전철 시대가 개막됐고, 1978년 7월엔 수인선 광궤가 복선화됐다. 1981년엔 수인선이 개통됐고, 중부고속도로는 1985년 5월 착공됐다.

이어 1991년 2월 서해안고속도로가 착공됐으며 1992년 11월 과천~의왕간 고속도로가 시민에 개방되는 등 도로 건설이 충만했다. 특히 2001년 인천공항이 개항됨에 따라 우리나라 항공역사를 다시 쓰기도 했다.

인천항만을 비롯, 항만 및 방조제 건설도 한창이었다. 1974년 5월엔 인천항 갑문식 독(dock)이 준공된 데 이어 아산남양방조제 공사도 성공적으로 끝나는 등 서해안 시대 개막을 위한 준비는 착실히 진행됐다. 1983년엔 인천항 개항 200년을 맞아 대규모 기념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1985년 인천남동산단, 1986년 미사리 조정경기장 준공, 1987년 시화지구 개발 착공, 1988년 송탄공단 조성 등 도내 산업단지 및 체육시설이 잇따라 건설됐다. 특히 19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경기·인천지역의 17개 기업이 퇴출되는 등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대응방안 등을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 수도권 규제와 부동산 투기

경인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77년 3월 전격 시행된 수도권공장 신축 전면 규제다. 1978년엔 공업배치법 시행령이 확정되는 등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근거로 시행된 이 제도는 훗날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더욱 강화돼 사실상 추가 개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2002년부터 부동산 투기 붐이 본격화했다. 아파트값이 폭등하기 시작하면서 빚어진 사회적 문제점을 동탄신도시 특혜 논란, 단국대 용인땅 전형적 투기의혹(2003년), 평택 땅 투기(2004년), 토지보상을 높게 받으려는 토지주를 다룬 생떼공화국, 땅값 부추기는 기획부동산(2005년) 등을 깊이 다뤘다.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2009년 세종시 수정발표 이후 끝내 좌절되기까지 해마다 지역균형발전 및 중점발전전략 논리의 극명한 차에 따른 경제논리를 명확하게 부각시키기도 했다.

# 경제 생활상 엿보기

국내에 1980년 7월 컬러텔레비전 수상기가 첫 시판된 뒤 극장이 사양길에 접어드는 등 생활에 큰 변화가 일었던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83년 바나나, 파인애플 등을 사치품으로 규정해 수입이 금지되는 등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경제기사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세금은 1973년 3월 주민세가 신설된 데 이어 1977년 7월 부가가치세가 뒤따라 시행되는 등 최근 각종 세금의 신설 및 변천사에 주목하고 있다.

경인일보가 1970년대 초 쌀 부족을 해결키 위해 밀가루로 빚은 막걸리기사를 보도하는 등 당시의 생활 경제사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 1973년 지금의 SK 창립주인 고 최종건 회장 장례식 기사 등은 경인지역 주요 경제인사의 동향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경인일보는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경제 변천사를 기록해 온 만큼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경제자료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