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최규원기자]경인일보가 창간한 지 50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에 빗대면 5번을 변한 세월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제는 그 보다 빠른 변화를 겪어왔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경기도 역시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사실상 1년에 한번 아니 몇달에 한번씩 사이클이 변할 정도로 급변의 시대를 지내고 있다. 창간 초기 경인일보는 2면 체제로 지면의 대부분이 사회를 반영하는 사건기사가 주를 이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물가'에 대한 정보는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60~70년대 가장 중요한 경제기사 아니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오로지 서민들의 주식인 '쌀'과 관련된 기사가 주를 이뤘다. 경인일보가 물가의 지표로 삼은 최초의 품목은 쌀, 보리쌀, 콩, 밀가루, 쇠고기, 돼지고기, 계란, 멸치, 배추, 무, 참기름, 간장, 설탕, 황목, 목탄, 금, 은 등 17개였다. 현재의 단위와는 다르지만, 이들 품목이 당시의 가장 큰 서민들의 먹거리요 관심품목이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또 시간 흐름에 따라 옥양목, 포플린, 연탄, 시멘트, 함석, 세탁비누, 밀가루, 베니어합판, 마른 명태 등도 물가의 지표로 등장했다.

# 60~70년대 주요 경제 이슈는 '벼농사', '김장' 등 서민생활과 밀접

경인일보(당시 인천신문) 창간 후 가장 먼저 내보낸 경제기사는 1960년 9월 5일자 버스비 인상과 관련된 내용이다. 당시 버스요금 20환을 30환으로 인상 결정을 내리자 학생들이 반발, 버스 운영업체와 협의를 벌였다는 내용이다.

최초의 통계기사로 분류될 수 있는 기사는 총세대수 관련 내용이다. 1960년 경기도의 총인구는 36만5천883명, 6만8천329세대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세입자는 2만3천9세대, 가구 소유자는 4만4천289명으로 2010년 현재 인구 천만시대를 지나고 있는 지금의 경기도와는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지금도 실업이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지만, 60년대 당시에도 취업은 시대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단적인 예로 '미군 노者(근로자) 四百80名이나 지원'이란 제목아래 미8군단 산하에 비치될 한국인 노무자 120명 모집에 480명이 몰려 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기사가 크게 실렸다. 또 같은해 10월 '맥 빠진 얼굴 그 이름은 실업자'라는 사진기사도 눈에 띈다.

▲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지난달 김장배추 가격 파동으로 큰 홍역을 알았던 '김장'은 60~70년대 '벼 농사'와 더불어 최대 이슈였다.

1960년 10월 3일 '입모아 '김장걱정' 5인 가족에 3만환은 가져야', 11월 21일 '김장을 중심으로 한 시민생활 타진'이란 기사를 통해 김장철에도 불구하고 김장 못하는 건 가벼운 서민 '주머니 탓' 이라고 지적했다. 1961년 1월 18일 1면에서도 '쌀값 가마당 소매시세 2만환 호가, 정부대책 마련 시급', 이어 다음날인 19일 쌀값 폭등에 정부미 방출, 같은달 24일에도 '쌀값 안정선 에로, 시세 매당 300환 상승' 등 김장 및 쌀에 대한 기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서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입학금 납부율 현황, 당시 버스와 함께 가장 친숙했던 교통편인 항임(뱃삯), 버스, 전철 여객 운임 인상 등의 기사와 환율 급등에 따른 유류, 쌀값과 같은 친서민 물품의 영향에 대한 기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밖에 눈에 띄는 경제관련 주요 기사로는 '100세 이상 노인 62명(1975년 10월 16일)', '부가가치세 7월 1일부터 시행(1977년 6월 8일)', '토지거래 허가신고제 실시(1978년 8월 9일)', '인천인구 100만 돌파(1979년 12월 12일)' 등이 있다.

그리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패턴의 '부도어음 시황표'라는 고정란이 눈에 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공공기관은 물론 사람들에게 어음은 현금만큼 가치가 있던 시절의 단편적 모습을 반영한 것이리라.

60년대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인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경제기사들의 패턴이 바뀌기 시작했다. 쿠데타 이후 경제 관련 기사는 물가하락, 쌀값 안정화, 전기료 균일화 등의 기사들로 메워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형태의 기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는 동안 '잘먹고 잘살자'는 경제모토에 맞물리는 것으로 70년대 경제기사를 관통하고 있다.

 
 

# 유가 파동으로 시작된 80년, 신도시 등 대한민국의 개발 서막을 열다

1980년 연초부터 환율·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1월 석유값 50% 인상 등 유가 파동으로 새로운 10년을 맞이한다. 또 개발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경기도내 시군 개편 등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며 경기도의 본격적인 인구증가가 시작된다.

1980년 3월 과천 신도시 착공, 같은 해 4월 남양주군 신설, 81년 7월 인천직할시, 광명 송탄 동두천 시승격, 9월 동수원 개발, 85년 3월 인천남동공단 착공, 같은해 5월 중부고속도로 기공, 87년 시화지구 개발 착공, 88년 1월 송탄 공단 착공, 89년 1월 하남 미금 군포 등 시승격, 같은해 4월 지금도 각광받고 있는 최초의 수도권 신도시인 분당과 일산 신도시 건설에 돌입했다.

79년 12월 인천 인구가 100만을 돌파했으나 경기도는 각종 개발사업 추진에 따라 87년 경기도 인구 500만을 돌파했다.

이밖에도 80년 7월 17일자 지면에 게재된 '100원짜리의 쓰임새'는 당시 100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자세한 분석 등으로 그 동안 각종 지표로만 현상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참신한 시도였다.

 
 

# 1990년에서 현재

1990년에도 경기도와 인천의 개발 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에 경인일보는 90년 창간을 맞아 총 20회에 걸쳐 개발에 따른 난개발 등 후폭풍을 앓고 있는 경기·인천지역의 토지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땅투기에 따른 토지 훼손, 특혜의혹 등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정부의 수도권 개발 계획은 요지부동이었다. 90년 6월 신공항 영종도 부지 확정, 91년 2월 서해안 고속도로 착공, 같은해 7월 용산미군기지 송탄평택 이전 합의, 11월 판교~구리, 신갈~안산 고속도로 준공, 92년 자유로 개통, 11월 영종 신공항 기공, 같은달 과천~의왕 고속도로 개통 등으로 현재 수도권의 모습을 거의 갖추고 있다. 새마을 운동 이후 내수경기를 비롯한 무역 흑자 등을 바탕으로 80년대부터 비약적 경제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은 91년 12월 이동통신가입자 100만 돌파, 93년 11월 경기도내 차량 100만대 돌파, 97년 원·달러 환율 1천원 돌파, 2005년 12월 경기도 인구 서울 추월 등이 대표적 경제지표 관련 기사들이다.

더욱이 인터넷 등 전산이 본격화된 90년대 중·후반부터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인구, 무역관련 통계지표는 물론이고 코스피, 코스닥, 환율 등의 주요 경제지표도 고정란으로 매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경인일보 50년 가운데 경제면이 차지하는 분량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많지 않다고 비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인일보는 독자의 요구(needs)를 반영, 요일별로 기업, 공항·항만, 금융·IT, 유통, 부동산 면을 개설,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계청, 국토해양부 등에서 발표하는 각종 경제관련 지표를 수시로 지면에 반영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이들 지표의 변화는 지면으로 소화하기 어려워 경제 관련 지표가 부족했던 80년까지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사실 2010년 대한민국의 경제는 경기와 인천이 주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등 각종 신문물의 등장으로 지금도 경제와 관련된 새로운 용어와 각종 지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또 50년 후 또 다른 지표를 만날 수 있는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