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범준기자 bjk@kyeongin.com

[경인일보=오지희기자]올해 지방선거의 핫 이슈는 친환경 무상급식이었다. 새로운 화두가 등장할 때 늘 그러했듯 이목이 집중됐고, 연일 언론매체는 뜨겁게 달궈졌다.

하지만 친환경 무상급식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중요한 화두였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깊이 고심해왔는지 새삼 알 수 있다. 그리고 왜 이제 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는지도 이해가 쉽게 된다.

그 역사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바로, 김정택(60·인천시 강화군)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다. 평범한 농부이기도 한 그의 이름 뒤에는 강화도 환경농업농민회 정책실장, 인천의제21 로컬푸드소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직함이 붙는다. 이러한 직함이 따르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 농산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어린 아이들에게 바른 먹을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 평생을 산 그의 인생이 답이 된다. ┃편집자 주

■ 운동이 삶의 이유가 된 사람

"학생운동, 빈민운동, 노동운동 등 안해 본 게 없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은 농촌을 살리는데 쏟으려고 합니다."

김 대표가 살아온 삶은 '운동'으로 정의된다.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 시간이 무려 40년이다. 운동이 아닌 다른 말로는 그의 인생을 설명하기 힘들다.

성공회대를 졸업하고 청계천에서 산업 선교활동과 노동운동을 한 그가 농민운동과 인연을 맺은 건 1996년도다. 당시 그는 노동운동과 함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요가, 호흡법, 식이요법을 시민들에게 전수하는 활동을 인천에서 하고 있었다. 식이요법을 지도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먹을거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생산 과정을 알아야만 바른 식이요법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해 10월 강화도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서울이 고향인 그가 첫 농토로 강화를 정한 것은 수도권 근교의 농촌을 도시인들이 자주 찾는 가까운 마을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먹을거리와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촌과 도시가 자유롭게 교류하고, 조화로운 삶을 이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평범한 농사꾼인 그가 농민운동가로 바뀐 건 바로 WTO가 체결되면서 우리 농업에 어둠이 닥쳐 온 2000년대 초반이다.


WTO체결에 뿔이 난 전국의 농민, 농민단체, 환경단체가 뭉쳐 벌인 일이 하나 있다. 바로 100인 100일 걷기 운동. 제주에서 서울까지 100여명의 농민과 환경단체, 농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100일 동안 전국을 걸으며 벌인 농업회생운동이었다.

그 중심에도 역시 그가 있었다. 100일 걷기 운동을 통해 그는 도시민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농촌이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학교급식 지원조례운동이었다. 당시, 도시민이 농업문제에 공감대를 갖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명분은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것 외엔 없었다. 2002년, 아이들에게 친환경 우리 농산물을 먹이자는 목소리가 강화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2003년부터 지자체들이 조례를 제정해 지역 우수 농산물이 아이들 밥상에 올라가고, 지역 농민들이 보다 안심하고 농산물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 후 그는 친환경농산물의 재배면적을 늘리는 일, 지자체의 지원예산을 높이는 일에 앞장섰다.

■ 친환경 무상급식, 함께여야 가능한 일

강화에 친환경농법을 처음 선보인 것도 김 대표다. 1996년 청둥오리 벼농사를 시작하면서 강화도 환경농업농민회를 꾸렸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당시 강화 쌀은 '잘 팔리는 쌀'로 통했다. 농민들이 새로운 농법을 고민할 필요도, 판로를 걱정할 이유도 없는 시기였다. 때문에 친환경농법이 농민들로부터 환영받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굳이 손이 많이 가는 친환경농법을 하지 않겠다던 이들이 마음을 바꾼 건 청둥오리에 이어 등장한 우렁이 농법이 인기를 끌면서다. 값이 싼 우렁이가 강력한 제초제 역할을 하는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1997년 7명, 1만6천500㎡로 시작한 친환경 농사는 이제 강화에서 참여하는 가구 수가 600가구를 넘었고, 면적은 990만㎡에 달한다.

친환경농법으로 전환하는 농민이 많아지자 이번에는 소비가 문제가 됐다. 갑작스레 친환경 쌀의 공급이 많아지자 농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때 아이디어를 낸 이도 바로 김 대표다. 과거 김 대표의 아내는 인천에서 어린이집(당시 탁아소)을 운영했었다. 아내는 항상 아이들에게 좋은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했다. 여기서 그는 답을 찾았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친환경 쌀과 관행농법 쌀의 차이점을 알리며 학교급식에 하나둘 친환경 쌀을 납품하는 구조를 만들어갔다. 지금은 강화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쌀이 일부 개인소비자와 계약 재배된 것을 제외하면 전량이 학교 급식에 사용된다. 서울 강남지역 엄마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강남 학교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남보다 앞서 친환경농산물을 학교에 공급하는 활동을 해 온 그이기에 지금 화두가 되는 친환경무상급식을 바라보는 시각은 남다르다. 친환경무상급식이 공론화되는 점은 반갑지만 그는 행정기관의 자세는 아쉽다고 말한다.

예산지원으로만 그치려는 점을 그는 가장 문제시 삼았다. 김 대표는 식단부터 변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자체는 친환경농산물의 생산을 늘리는 정책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와 시민사회단체, 교육청이 생산·공급·식단구성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협의체 구성도 시급하다고 했다. 농업문제를 단순히 농민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농민이 있어야, 농업이 살아야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식량문제는 공공의 문제"라며 "식생활 교육도 병행해야 친환경무상급식이 바르게 자리잡을 수 있다"고 했다.

 
 

■ 먹을거리가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김 대표는 1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인천시내로 나온다. 급식지원을 처음 주장한 그답게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다. 그는 현재 학교급식시민모임, 인천의제21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왜 친환경무상급식을 해야 하는지, 지역농산물을 우선 소비해야 하는지를 알리고 교육한다.

그는 먹을거리를 평등하게 나눠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유지된다고 믿는다. 세계 식량시장은 다국적기업이 FTA, WTO를 유리하게 이용해서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이 5%밖에 안 된다. 먹을거리문제가 나라의 경쟁력을 가르는, 국민을 지키는 핵심문제가 된 만큼 먹을거리 자립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친환경무상급식과 함께 떠오른 로컬푸드 운동과 도시사람을 농촌에 끌어들이는 귀농, 귀촌이다.

두 가지 대안 모두 사람사이의 관계 맺기가 가장 중요하다. 원활한 관계 맺기를 위해 지자체가 정책을 만들고, 분위기를 형성할 것을 그는 주문한다.

그는 인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발 사업비를 조금만 농촌에 투자하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갯벌위에서만 신화가 탄생하지는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는 "친환경무상급식, 로컬푸드 운동, 귀농이 자리를 잡으면 지역 안에서 먹을거리자치, 교육자치가 실현될 것"이라고 했다. 내 입이 즐거우면서 나를 이롭게 하고, 환경을 살리는 친환경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세상을 평화롭게 할 것이라고 믿는 김 대표. 농민운동에 이어 이번에는 믿음 전파운동에 나설 모양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그의 운동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