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전두현기자 dhjeon@kyeongin.com

[경인일보=이천/서인범기자]"공간미술 아세요?"(기자) "…."(시민)

"그럼 세종대왕 동상, 이순신장군 동상 만든 곳 아세요?"(기자) "아, 거기요. 여기서 직진하다 우측 길로 쭉 들어가면 돼요."(시민)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던 '이순신장군 동상'이 보수를 위해 42년 만에 외출을 했다.

이순신장군 동상이 보수를 위해 옮겨지던 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동상으로 쏠렸고 무진동차에 실려 작업장으로 운송되는 과정은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엄중한 호위 속에 진행됐다.

보수작업을 담당하게 될 이천시 설성면의 작업장에도 단연 관심이 모였고, '공간미술'은 또 한 번 그 이름을 드러냈다. 지난해 10월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세종대왕 동상 제작에 이어 또다시 집중 조명을 받은 것이다.

어느 사이인가 사람들은 공간미술이란 곳은 몰라도 세종대왕 동상, 이순신장군 동상 등 국내 대표적 동상을 만드는 곳이 이천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주물작업장이 지역 홍보까지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이다.

국내 최고의 조형물 제작 및 보수복원 업체인 공간미술의 박상규(45) 대표는 "지역적 배려 없이는 이렇게 자리잡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말을 꺼냈다.

막중한 임무를 맡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박 대표가 잠시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본인이나 회사 홍보가 목적이라기보다 이천시를 알릴 수 있다는 데 흔쾌히 시간을 냈다.

인터뷰 관련 서두의 말을 꺼내며 박 대표를 선생님으로 칭했다. "저, 박 선생님은…"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저는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리기엔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냥 대표로 불러주세요."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에서 오늘의 그를 만든 성공 키워드를 어렴풋하게나마 찾아낼 수 있었다. 인터뷰 도중 조그만 단어의 모순도 허용하지 않는 철두철미함이 곳곳에서 배어나왔다.

박 대표가 주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고흥의 시골출신인 그는 주물 및 청동을 이용해 작품제작을 전문으로 해오던 사촌형을 통해 이쪽과 자연스럽게 대면하게 됐다.


당시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사촌형은 그가 서울로 올라올 때면 공장을 놀이터 삼아 놀게 해줬고, 그곳에서 사촌형의 친구들(지금은 관련 분야의 교수나 조각가, 기술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들이다)과 함께 지내며 친숙하게 됐다.

"형들을 보면 어린 마음에도 꼭 훌륭한 작가가 돼야겠다는 결심이 절로 섰다"는 박 대표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취업도 알루미늄, 경금속 쪽을 택해 일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순천공고를 졸업하자마자 그해(1984년)부터 (주)일진금속을 시작으로 삼익물산, 동신미술 등 관련분야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스승 격인 사촌형의 부름으로 본격적으로 주물작품에 전력하게 됐고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하지만 사촌형의 죽음으로 새로운 기로에 접어들게 됐고, 2000년 김포에 '공간미술'을 창업했다.

"당시 5년 이내 낙후된 주물산업을 혁신적으로 개혁해 주물계를 평정하겠다는 집념 하나로 일해 왔다"는 박 대표는 "하루 두 시간여 새우잠을 자며 연구 및 작품활동을 해왔다"고 회고했다.


김포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나가나 싶더니 2004년 신도시개발이란 복병을 만났다.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고, 당시 지인을 통해 이천시 이전을 제안받아 2008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게 됐다.

"2007년 공장 이전을 위한 부지조성 중 조병돈 이천시장의 도움으로 도로확장 등 기반시설 및 신축 등에 많은 도움을 얻게 됐다"는 박 대표는 이런 이천시에 보답코자 설성면 입구에 이천시의 상징물인 쌀을 형상화한 '명덕의 문'을 제작, 기증하기도 했다.

2008년 이후 그의 작업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됐다. 전남 완도군에 우뚝 서 있는 장보고동상(38m)을 만들었고, 지난해엔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했다. 세종대왕 동상의 경우, 현존하는 동상 중 청동의 배합 등이 현대적으로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이순신장군 동상 보수작업에도 영향을 끼쳤고, 공간미술의 기술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14일 옮겨져온 이순신장군 동상은 진단을 마치고 보수 작업이 한창이다.

"동상을 가져와 진단처리를 한 결과,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많아졌다"는 박 대표는 "그러나 제대로 고쳐야 한다는 사명감에 전문가들과 밤샘작업도 마다않고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짙은 녹색을 띠었던 동상은 현재 일주일간 고압으로 모래를 쏘아 청소하는 샌딩작업을 마쳐 주물의 원래 형태인 밝은 고동색으로 변해 있다.

1968년 동상 제조 당시 기술력이 부족해 일정한 농도로 청동을 만들지 못해 생긴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지만, 국내 최고 기술을 가진 보수·복원 전문가들이 하나하나 치유해 나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동상 등 조형물이 이곳에서 탄생하다 보니 공간미술은 규모도 규모지만, 일단 이곳에서 작업을 했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준과 제품 보증까지 인정받게 되는 위치에 이르렀다.

박 대표는 "솔직히 이곳에서 작업하는 작가라면 국내에서 소위 '톱클래스'라고 할 수 있다"며 "그렇지만 여러 이유로 제대로 작업을 못하는 작가 등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 문화산업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사실 모든 분야에서 기초가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며 "조각작품만 인정하고 지원하지 정작 그 기초가 되는 주물분야에 대해선 등한시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제 우리도 문화수출을 하고, 위상을 높이고 있는 만큼 문화 쪽에도 기초분야부터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오는 12월 22일이면 광화문 광장에 보수작업을 마친 이순신장군 동상이 당당히 서게 된다. 그때 동상과 함께 동상을 다시 세운 우리 주물산업에 대한 관심도 대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길 내심 그는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