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송수복객원기자]

■ 산행지: 전북 진안 구봉산 (九峰山·1,002m)
■ 산행일시: 2010년 11월 21일 (일)
■ 산악회: m28 클럽 (25명)
■ 호남의 명산들을 두루 볼 수 있는 진안의 숨은 명산

전북 진안 구봉산은 운장산(1천125m)과 마이산(678m)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던 탓에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산이다. 최근에 점차 등산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름에서 말해 주듯이 아홉 개의 봉우리가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흡사 설악산의 용아장성이나 공룡능선을 축소한 형태를 띠고 있다. 산행기점인 운봉리 일대는 해발 300여m로 비교적 고지대이긴 하지만 1봉(656m)까지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한다. 이후 마지막 봉우리인 9봉이 1천2m인 점을 감안하면 대략 700여m를 올라야 하는 셈이므로 체력 소모가 많이 되는 편에 속한다. 단조롭지 않은 산길이라 지루하지 않으며 암봉을 오르내릴 때마다 변하는 주변의 풍경에 경이로움마저 갖게 한다.


특히 주봉인 구봉산 정상에 서면 호남 일대의 유명한 산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북쪽으로 금남정맥의 장군봉과 함께 대둔산이 시야에 들어오며 서쪽의 연석산, 운장산의 아름다운 자태와 남동쪽의 덕유산과 지리산 자락의 웅장한 능선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편 일교차가 심한 늦가을이나 초봄의 경우엔 용담호의 물안개가 일대의 산 아래를 뒤덮는 장관을 연출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높고 깎아지른 능선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 또한 진한 여운을 남겨주기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인 산이다.

■ 박무(薄霧)에 가려진 아쉬운 풍경

장거리 이동으로 인해 지친 모습으로 윗양명 마을에 위치한 구봉산 주차장에 내려서자 비교적 온화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햇살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무거운 재킷을 벗어서 배낭에 넣어두고 가볍게 몸 풀기를 한 후 산행안내판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었다.

처음 마주하게 되는 돌투성이인 텃밭을 바라보며 궁벽하기만한 산촌의 척박한 삶을 살았던 우리네 선조들의 굳은살 투성이의 손길을 느끼며 지나간다.

낙엽 쌓인 고즈넉한 산길을 염두에 두었던 산행객들이 눈앞에 닥친 비탈길로 인해 고된 땀방울을 쏟아내며 힘겹게 능선에 설 즈음 오른편의 1봉이 지척에서 용담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박무로 인해 완전한 조망이 어렵기는 하지만 첩첩이 둘러싸인 산자락들이 산간오지가 이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구절양장의 물길을 따라 길을 내고 척박한 삶이나마 연명하기에 마땅한 땅을 찾아 들었던 우리네 선조들의 발자취가 이어진 길이다.

조선 초기 문신이었던 정흠지(鄭欽之)는 궁벽한 산촌을 돌아보고 "맑은 물 푸른 산 몇 만 겹이냐, 구름과 연기 가리고 서리어 있는 듯 없는 듯 한속이네, 백성들 다만 스스로 밭갈고 우물 파는 것만 알아서 그 순박함은 의구하게 태곳적 풍속일세"라 하였다던가.

발아래 보기 드문 풍경을 기대했던 마음에 조용히 바람이 인다.

 
 

■ 작취미성(昨醉未醒)인 듯 혼미한 정신에 오른 정상

1봉부터 8봉까지 오르내리던 아찔한 벼랑길은 돈내미재에서 끝이 난다.

이쯤 되면 산행이 아니라 고행이 되었을 법도 한데 등산객들은 여전히 성에 차지 않은 듯 마지막 9봉의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밧줄을 잡고 힘깨나 쓰던 가파른 비탈길에 철계단이 놓여 있어서 예전만큼의 고생은 덜었다.

하지만 9봉은 호락호락하게 정상을 내어주지 않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를 만큼 올랐나 싶어 뒤돌아보고 올려다보길 수차례 반복해도 갈길이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심장이 사점(死點)에 이르렀을 무렵에도 여전히 올라야 하므로 거칠게 숨 쉬던 사람들의 입에서 산행코스를 잡은 산행대장에 대한 원망의 말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몇 자 안되는 외로운 성처럼 떠있는 정상에 올라서면 지독했던 오르막도 내려서야 할 가파른 내리막도 모두 잊을 만큼 너른 마음을 품게 하는 훌륭한 풍경이 펼쳐진다.

일광선조(日光先照)의 명산인 구봉산 정상에서 웅립(雄立)해 있는 산군(山群)을 바라보며 갖는 여유로움은 오른 자만의 특권인 것이다.

이윽고 산상만찬을 즐긴 후 남쪽 방향의 능선을 따르다 첫 번째 갈림길인 바랑재에서 좌측의 바랑골로 향하는 급경사를 따라 조심스레 발밑을 살피며 내려간다.

20분 정도 하산하다 만나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안동 김씨의 묘가 있는 곳에서 연꽃처럼 피어있는 1봉부터 8봉까지의 암봉들을 마지막으로 조망하는 것으로 산행은 대강 마무리 지어진다.

산죽 밭을 지나 별장을 지나니 낮달이 가을을 닮은 노을에게서 붉은 빛을 배워가는 중이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구봉산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여전히 쏟아질 듯 흔들거리며 서 있던 암봉들이 손을 흔드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멀어져 가고 있었다.

※ 산행안내

■ 교통

- 대중교통

서울 ~ 진안 1일 2회 (10:10, 15:10)

수원 ~ 전주 1일 10회 (07:50, 09:00, 10:00, 10:30, 11:10, 12:10, 12:40, 14:00, 15:10, 16:20)

전주 ~ 진안 06:05 ~ 21:05 (10~20분 간격)

진안 ~ 윗양명 1일 8회 (06:20, 08:00, 09:00, 11:30, 13:40, 14:50, 17:05, 19:00)

- 자가용

경부고속도로 ~ 대전-통영간고속도로 ~ 금산IC ~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3시간)

■ 등산로

윗양명주차장 ~ 1봉 ~ 5봉 ~ 8봉 ~ 돈내미재 ~ 구봉산(장군봉) ~ 바랑재 ~ 윗양명주차장 (4시간 30분)

윗양명주차장 ~ 1봉 ~ 5봉 ~ 8봉 ~ 돈내미재 ~ 구봉산(장군봉) ~ 바랑재 ~ 865봉 ~ 지댕이재 ~ 윗양명주차장 (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