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오류동역이지만, 이야깃거리가 늘 궁색한 스토리텔러에게 경인선의 여섯 번째 정거장 오류동역은 그냥 지나치고 싶은 정차역이다. 서 너 줄의 문장으로 역사의 페이지를 다 채울 수 있을 만큼 이야기가 가난한 곳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축력과 도보를 이용하던 경인가도 시대. 장죽 물고 버드나무에 기대어 또는 주막거리에서 장국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겠으나 그저 스치고 지나갈뿐 머물지 않는 바람처럼 정작 전해지는 이야기는 별로 없는 빈손이다. 오류동역은 이야기들을 저장하고 쌓는 곳이 아니라 교환되고 흘러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경인가도시대 오류동은 잠시 지친 몸을 추스르고 허기도 채우던 휴식의 공간이요 중간 기착지였다. 임오군란 때 청으로 납치됐던 대원군도 머물렀다고 하는 오류2동 경인로의 주막거리 객사가 바로 그 증거이다. 경부선이 지나는 수원과 오산 사이에 자리잡은 떡점거리 병점(餠店)이 점심 및 요깃거리로 떡을 판데서 유래한 중간 기착지였듯이 오류동 역시 잠시 쉬어가던 휴게소였으며, 상인과 나그네들이 모여 물건 값도 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던 정보네트워크의 공간이자 경인가도 시대의 홍익매점 같은 곳이었다.
그런 오류에 기차역이 들어선 것은 이 같은 지역적 특성과 함께 참외의 집산지였다는 경제적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옛날부터 경기지역은 저마다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이를 교환하는 거대한 지역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는바, 오류동 참외는 소사(부천) 복숭아·시흥 수박·성환 배 등과 함께 유명한 지역 특산물이었다. 그러니까 오류동역이 들어선 것은 이곳이 전통적 교통로였던 경인가도의 중간 기착지였고, 경인지역을 대표하는 참외 산지라는 지역경제의 특성이 고려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경인가도 시대의 이야기와 경인선 철도시대의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고일의 '인천석금'에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겨울철 컴컴할 때 첫차를 타면 무럭무럭 나는 스팀과 밝은 전등이 학생들을 위로해 주었다. 또 봄날이 오면 교차되는 오류동에 만개한 벚꽃이 공부에 시달리던 뇌수를 기쁘게 만들었다. 이른 여름과 가을에는 축현역 연못가의 아카시아 숲에서 영시(英詩)를 암송하는 취미도 기차통학생이 아니면 맛볼 수 없었다." 기차통학은 힘들긴 했지만 그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는 것인데, 기차가 오류동역쯤에 당도하면 학생들은 지각 걱정에서 한 시름 놓고 오류동역의 벚꽃을 보면서 이야기의 물꼬도 트고 조심스레 로맨스도 꽃을 피우기도 했을 것이다. 향토사가들은 이때의 경인선 로맨스로 인천양조 최병순 사장의 외동딸 최정순 씨와 임영균 씨, 그리고 미스 통학생으로 꼽히던 함진수 씨와 내리교회 목사님의 자제 홍은균 씨의 이야기를 첫손에 꼽는다.
영시와 로맨스 다음으로 통학생들의 으뜸가는 화제는 단연 추리소설이었을 것이다. 추리소설이야말로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짜릿한 로맨스 등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철도문학, 이른바 가장 대중적인 레일로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추리소설은 경인선과 인연이 깊다.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인 이해조의 '쌍옥적'(1908)의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김주사가 화륜선과 경인선을 이용하여 서울~인천~목포를 다녀오는 '쌍옥적'의 한 장면이다. 짤막한 대목이지만, 당시의 교통망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구절이다. 개통된 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경인선은 신소설에 등장할 만큼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알다시피 추리소설은 증기문명과 합리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19세기 중반의 선진 자본주의 문화의 산물이다.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부르주아들의 자신감 그리고 신문·철도·전신 같이 사건과 사건, 사건과 독자 사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추리소설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 1809~1849)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1841)에서도 미스터리한 범죄를 알려주는 것은 신문이며, 코난 도일(A. Conan Doyle, 1859~1930)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범죄에 대한 조사와 추적은 철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경인선에서 시작된 희대의 범죄를 추적하고 해결하는 정탐소설 '쌍옥적'에서 탐정의 역할을 하는 순검들은 갑오개혁 이후에 등장한 근대적 경찰의 맹아로 경무청 소속의 관리들이다. 이와 같이 경인선은 도시공간과 일상생활문화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로맨스의 터전이었고 한국 근대 추리소설 같은 장르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인선에서 이 같은 낭만적 그림은 이제 없다. 그저 MP3를 들으며 졸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메시지를 날리고 게임에 열중하는 엄지족(Thumb Tribe)과 메트로(Metro)형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들이 대세를 이루는 사막의 풍경을 목격하게 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