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문성호기자]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 광교산 자락의 경동원에서 60여년간 부모들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한결같이 돌보는 정의순(82) 원장을 만났다.

정 원장의 첫 인상은 아담하게 들어선 경동원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가 처음 자신의 집에서 보육사업을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2년 11월 무렵이다. 부농의 딸로 부족한 것 없이 유년시절을 보낸 정 원장은 난리 중에 남쪽으로 피란을 떠나던 중 부모로서는 가장 가슴이 아픈 어린 남매를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정 원장은 '죽어가는 어린 생명을 살려야 한다'며 수원시 신풍동에 어린 아이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게 됐다.


정 원장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말할 수 없다"면서 더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대신 "하나님의 은총과 인도하심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수원시 신풍동의 보금자리가 모태가 된 경동원은 1954년 1월에 고등동으로 이전했고 1970년 하광교동에 작고한 남편이 손수 벽돌을 찍어 신축한 건물로 옮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당시 아들의 생활 여건이 너무 열악해 보육사업을 그만 두려고 했었다"며 "당시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한번 시작했으면 힘이 닿는 데까지 해야 한다고 전 재산을 털어 땅을 사고 직접 집까지 지었다"고 회고했다.

경동원은 최근까지 3천400여명의 아이들이 정 원장과 보육엄마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속에서 건강하게 자라 이 곳을 떠났지만 현재에도 경동원에는 취학 전 아동 85명이 정 원장과 생활지도사 등 36명과 24시간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


정 원장이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바로 교육이다.

만 3세 이상인 유아는 경동원 바로 옆 경동어린이집과 인근 보육시설에 다닌다. 또 보육엄마들이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각자의 소질과 재능을 파악하도록 하고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아이들이 마음껏 소질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학원에 보내는 것도 절대로 빠뜨리지 않는다.

정 원장 자신도 1년 365일 경동원에 상주하면서 항상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지 보살핀다. 경동원 식구들에게는 손자·손녀들을 잘 보살피는지 며느리에게 시시콜콜 간섭을 하는 시어머니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그가 강조하는 교육중의 하나가 바로 예절교육인 '밥상머리 교육'이다.

'튼튼한 어린이, 명랑한 어린이, 정직한 어린이'의 경동원 원훈처럼 정 원장은 밥을 먹기 전 '이럴 땐 어떻게 하고 저럴 땐 어떻게 한다',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감사해야 한다'는 밥상머리 교육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홀로 독립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또한 절약정신이 몸에 밴 정 원장은 늘 대중교통 수단만을 이용하고 꼭 필요한 물건만을 구입할 정도로 청렴하지만 아이들과 경동원 식구들이 사용하는 물건과 식재료는 최상급만을 구입하도록 하고 경동원 운영도 투명성과 공개성을 고집한다.

정 원장의 투명성과 공개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직원 채용이다. 경동원과 경동어린이집 직원들 중에서 정 원장의 친인척은 경동어린이집 원장, 단 1명 뿐이다.


그는 채용 면접부터 직접 아이들을 가슴으로 보듬을 수 있는지 살펴보고 조금이나마 아니라는 느낌이 있으면 친인척이라도 과감히 탈락시킨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편이다.

게다가 '격일 근무보다 2일 주기의 근무·휴무가 좋다'는 직원들의 선호도를 반영한 것처럼 매년 2차례씩 직원들의 욕구를 조사해 소통과 의견 수렴에도 적극 나서 경동원 운영 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예전보다 시설이나 주변 여건이 좋아졌지만 경동원이 위치한 하광교동은 상수원보호구역에 위치해 있어 추가시설 확장이 어렵고 교통시설과 초·중·고 등 정규교육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정 원장은 취학기를 맞은 어린 천사들을 다른 보육시설로 떠나보내는 이별을 매년 되풀이 한다.

경동원을 거쳐 간 아아들 가운데 어느 아이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정 원장은 "몇 년 전 8살이 돼 취학아동 보육시설로 보내진 한 아이가 우리집에 간다며 장맛비가 장대같이 내리던 날 길거리를 헤매다 쓰러진 것을 파출소 경찰관이 발견해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며 "며칠동안 함께 있으며 예의 바르고 씩씩하게 생활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되돌려 보냈다"고 떠올렸다.

또 아이들을 보살펴온 자원봉사자가 정이 든 아이가 옮기게 될 보육시설로 같이 가고 싶다고 할 때도 그는 "아이를 잘 보살펴 달라"는 고마움과 함께 아낌없이 보내준다.

정 원장은 또 경동원에서 생활을 했던 아이가 청소년이나 성인이 돼 방문을 하면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들의 어린 시절 얘기를 직접 들려주기도 한다.


지난 9월7일 '제11회 사회복지의 날'을 맞아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에서 열린 '2010 전국사회복지대회'에서 정 원장은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과 함께 세월을 보낸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고 생명을 살리고 기르는 일에 동참해 온 직원들의 공로가 크다"며 "아낌없이 후원을 해주고 있는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또 "어린 천사들에게 더좋은 환경을 제공해 줘야 하는데 지원금 규모에 맞춰 운영하다보니 아직 미흡하다"며 "앞으로도 여생을 아이들이 관심과 사랑속에 더욱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마지막 소감을 전했다.